VR 수술 시뮬레이션이 의료산업 바꾼다

[르포] 서지컬마인드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 의과대 실습 현장

디지털경제입력 :2018/09/13 08:40

“5년, 10년 후면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수술 시뮬레이션이 다양하게 나올 겁니다. 의료산업이 바뀌고 있어요. 그때 우리 학생들은 어떤 수술 시뮬레이션이 적절한지 또 어떤 시뮬레이션이 새로 나와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12일 의과대학생 약 15명들이 서울시 종로구 소재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있었다.

4주간 진행된 이 수업 제목은 ‘해부신체구조의 3D영상 소프트웨어와 3D프린팅 기술 활용 연구 및 실습’이다. 가상현실과 3D프린팅 등 정보기술(IT)로 변모하는 의료산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학교가 마련했다.

김일 서지컬마인드 대표가 12일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자체 개발한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지디넷코리아)

수업에서 쓰인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은 국내 가상현실(VR) 전문 헬스케어기업 서지컬마인드가 자체 개발했다. 김일 서지컬마인드 대표는 직접 현장에 참여해 제품 개발 배경과 특징, 시장 상황, 사업 계획 등을 설명했다.

“숙련된 외과의사가 되려면 1.5만~2만 교육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세계적으로 복지가 강해지면서 교육 시간이 점차 줄고 있습니다. 3~4년차 전공의는 야간 응급실에서 주로 경험을 쌓는다고 하지만 이제는 퇴근 때문에 수술이나 현장 경험이 어렵죠.”

김 대표 말에 대부분 학생과 수업을 이끄는 최형진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국내 안과 레지던트들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경험을 쌓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봉사로 수술하는 과정에서 시력 손상 등 피해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서지컬마인드보다 앞서 백내장 수술 시물레이션 제품 ‘아이시 서지컬(Eyesi® Surgical)’이 시장에 나오긴 했지만 국내엔 학술 목적으로 4대만 들어왔다. 1대당 4억~5억원에 이르는 가격과 높은 유지보수 비용이 부담인데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어렵다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서지컬마인드는 경쟁 제품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사용성, 정밀도도 더 높이며 제품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는 평가다. 김 대표는 제품 개발을 위해 9개월간 백내장 수술에 대해 공부했으며 1년 반 동안 개발 작업을 진행했다. 수업 현장에는 제품 개발에 참여한 서미컬마인드 관계자 2명이 참석해 직접 제품을 시연하며 사용법과 장점을 소개했다.

“영화배우 모션 캡쳐에 사용하는 옵티컬 트래킹 시스템을 활용해 사용자 움직임을 0.5mm 오차 내로 추적합니다. 백내장 수술 절차 14개 중 13개도 구현했으며 더 현실적인 시뮬레이션이 되도록 물리엔진도 개발 중입니다. 안구는 각막 찢을 때 물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리콘으로 만들었습니다. 20년간 해부학을 연구해오신 중앙대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개발했습니다.”

서지컬마인드의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고 있는 서울대 의과대학생. 나머지 학생들은 옆에 배치된 대형 디스플레이를 통해 시뮬레이션 상황을 지켜봤다.(사진=지디넷코리아)

김 대표는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 외 다양한 아이템을 고민 중이다. 신경이나 척추수술은 여러 의사와 간호사가 투입되는데 현재 기술로는 이를 고려한 수술 시물레이션을 구현할 수 없어 먼저 선점할 수 있도록 개발을 고려 중이다. 삼성창원병원의 이비인후과 교수와 함께 유양돌기 절제술 시뮬레이션도 논의 중이다.

김 대표는 “유양돌기 절제술은 신경이 많이 몰려있는 부분을 2시간 동안 드릴로 깎아내며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 신경이 손상돼 미각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며 시뮬레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지컬마인드는 미용 성형, 주사나 스탠드, 내시경 주입을 포함한 인젝션 분야 시뮬레이션 개발도 고려하고 있다. “미용 성형 시뮬레이션은 연말부터 분야를 골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인젝션 분야는 특히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는데 마취학과 교수님 등이 시뮬레이션이 나오면 빨리 사용해보고 싶다는 반응도 받았습니다.”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또 다른 사업모델은 의료인들이 본인의 수술 기술을 찍은 영상을 올려 판매,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수술 가이드 솔루션도 구상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미 유튜브에 본인 수술 동영상을 올려 광고 수익을 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 의료진들이 수술 기술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온다면 본인 방법을 교육시키기 위해 이리 저리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앨 수 있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도 “플랫폼이 나오면 의료업계의 정보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어느 병원의 어느 학과만 공유하는 수술 기술이 있지만 누군가 공개하면 결국 하나 둘씩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AI를 봐도 미국 보스턴 의과대학이나 서울 의과대학 등 세계 의과대학들 모두 결국 언젠가 AI를 수술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임상실험을 누가 먼저 내놓느냐는 경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내다봤다.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아직 과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김 대표가 다양한 의료 분야 시뮬레이션 아이템을 소개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서지컬마인드는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도 상용화 전까지 좀 더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각막을 찢을 때 느낌이 최대한 실제와 같도록 글로벌 시뮬레이션 기업 알테어와도 협력 중이다. 상용화는 연세대 안과에서 제품 활용 후 논문이 나오면 진행될 예정이다.

■ 의료업계에 번지는 IT 바람

김일(왼쪽) 서지컬마인드 대표와 최형진 서울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사진=지디넷코리아)

김 대표와 최 교수는 의료업계에 IT 기술 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당장 이날 수업 역시 서울대 의과대학 학장단이 몇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학생들의 의료산업과 IT 융합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 교수는 “여기 학생들은 모두 3D프린팅과 VR 쪽에 관심이 있어 다른 수업 대신 이 수업을 선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에는 앞서 서지컬마인드에 직접 찾아간 학생도 있었다.

서지컬마인드 관계자들의 백내장 시연을 참관한 서울대 의과대학생 김 양㉓과 정 군㉒은 “수술 훈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특히 (레지던트가) 제대로 된 침습 수술 훈련을 하려면 환자가 필요한데 이런 시뮬레이션은 환자 대상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여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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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돌아가며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을 직접 체험하는 동안 김 대표와 최 교수는 아직 보수적인 국내 의료산업이 VR, AI 등 미래 기술을 받아들이며 혁신하는 시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의료업계는 여전히 보수적이지만 한 번 기술이 도입되면 빠르게 번질 것입니다. 그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의료진들은 언제까지 의료업계가 바뀌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장담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의과대를 다니는 학생들도 전문의가 되는 진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현장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IT로 바꿀 수 있는 분야는 없는지 고민하고 창업에 도전하는 것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해외 유명 헬스케어 기업 역시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