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 닥쳐올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말(有備無患)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이의 ‘10만 양병론’ 얘기다. 조선의 선조 집권기는 4색 당파가 유난히 치열할 때였다. 김성일과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적국의 수장인 풍신수길(豊臣秀吉)이란 인물을 함께 보고 왔으면서도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다.
집권 여당(동인)인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작고 못생긴 외모만 보고 침략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고, 야당(서인)인 황윤길은 날카로운 눈매에 숨겨진 내면의 야심을 들여다보고 반드시 침략해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팩트는 하나인데 주장은 둘로 나뉘는 형국이다.
당파성에 매몰된 편견이 사실을 왜곡한 전형적인 사건이다. 둘 중 하나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 자명한데도 무능한 왕은 김성일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훗날 온 나라를 전쟁의 화마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새로운 국제사적 변화에 둔감한 채 팩트에 근거한 위기상황을 제대로 진언하지 않은 결과다.
어디 풍신수길뿐이겠는가. 팩트는 파편처럼 또 다른 팩트들을 줄줄이 달고 나오거나 달려나오는 법이다. 이 팩트들의 총합은 다시 거대한 하나의 팩트를 형성하곤 한다. 임진왜란은 이 모든 팩트를 무시한 대가치곤 너무나 처참했다.
그런데도 유비무환의 중요성을 설파한 10만 양병론은 훗날 진위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당파성의 극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당파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국난의 위기가 닥쳤다는 사실이다. 최고 통치자의 무능함은 시너지효과를 낸다. 몽골의 침략이 그러했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구한말이 그랬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의 어떤 상황에 대입해도 그 공식이 똑같이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 세계 각국 '블록체인 킹덤 건설' 앞장... 인터넷은 지금 '헤븐 네트워크'로 진화해 가는 중
다시 블록체인 얘기다. 블록체인은 자본주의의 해법을 제시한 분산경제의 이정표를 담은 기술이자 사상과 철학이다. 이른바 중앙집권적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 체제를 예고한 4차 산업혁명의 결정체다.
이미 이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킹덤(Blockchain Kingdom)’이 건설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 상황이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김철환 교수(한양대)에 따르면 블록체인 킹덤을 지배하는 원리는 ‘헤븐 네트워크(Heaven Network)’다.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툭 던져놓은 헤븐 네트워크의 정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우주의 심연만큼이나 넓고 깊다. 저작권자인 그조차도 상상 못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기술이나 프로토콜의 핵심 원리에 능통한 사람도 많지 않다.
신기한 것은 이 프로토콜이 작동하면서 블록체인 물결이 어느 새 국경을 넘어 유럽을 강타하고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까지 밀려왔다는 사실이다. 헤븐 네트워크는 지금도 변화와 분화를 거듭하면서 증기기관처럼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새로운 블록체인 사상에 매료된 전문가가 먼저 움직였다. 일반 대중도 환호했다. 제도권 밖의 바람이 더 거셌다. 흡사 1990년대 말 인터넷시대의 도래를 연상케 할 정도다.
투기열풍이 불었다. 암호화폐 애기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단계 유통망까지 들썩거렸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블록체인 킹덤의 헤븐 네트워크가 가져올 신세계의 오묘한 원리와 사상에는 눈감은 채 정부여당은 애매모호한 쇄국정책을 선택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중이다.
여당에겐 작금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당파성만 존재하는 모양이다. 흡사 김성일과 황윤길의 상반된 보고를 받고도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다. 팩트를 제대로 파악해 보지도 않고 풍신수길의 외모와 같은 투기현상만 애써 강조한다.
헤븐 네트워크에 열광한 주변국들이 블록체인 킹덤 건설에 나서는 상황인데도 팔짱끼고 구경만 하고 있는 모양새다. 스위스를 비롯해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싱가포르, 홍콩, 몰타, 바하마 등이 대표적이다.
■ 주변국 대규모 블록체인 프로젝트 가동... 10만 양병은 블록체인 시대 향한 첫 걸음
주변 강국 미국과 일본, 중국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대대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유비무환의 경제 체제 구축이 목표다.
실제로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등지에서 3000여개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중국 역시 북경과 상해 등지에서 1000여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프로젝트는 3배 이상이다.
인력으로만 보면 프로젝트당 10명의 인력을 감안할 때 미국은 9만여명, 중국은 3만여명의 전문가, 혹은 그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500여개 기업에 각기 10여명이 근무한다고 가정해도 5000여명에 그친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유력 예측기관들도 향후 블록체인 일자리 수가 현재보다 10~20배 가량 폭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10만 양병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ICO기업(리버스ICO 포함) 500개, 5000여명의 인력이, 내년에는 5000개, 5만여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2020년에는 1만개의 기업에 최소 10만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탐낼 양질의 일자리다.
유비무환을 잊은 필리핀이나 남미 국가들을 보라. 우리나라는 이미 반도체를 제외한 조선, 철강, 자동차, 휴대폰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청년실업률 또한 10%에 육박하고 체감실업률은 21.8%에 달한다.
다시 블록체인 10만 양병론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른바 혁신성장의 돌파구는 현재로선 요원하다. 기득권에 안주해 신산업에 눈감으면 미래는 더욱 암울하다. 해법은 역시 블록체인이다. 10만 양병은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관련기사
- 블록체인 신산업을 키운 정부, 막은 정부2018.09.12
- 규제 프리존이면 어떻고 샌드박스면 어떤가2018.09.12
- "바보야, 이제는 경제야"2018.09.12
- ICO 프리존 만들자2018.09.12
경제 현장은 곧 전쟁터다. ‘블록체인 킹덤’의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유비무환의 정신을 일깨우는 ‘10만 양병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산업의 보고(寶庫)로서의 블록체인은 아직 대체불가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