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프리존이면 어떻고 샌드박스면 어떤가

[박승정 칼럼]신산업 규제 혁파 빠를수록 좋다

데스크 칼럼입력 :2018/07/24 11:03    수정: 2018/11/16 11:34

이쯤이면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다. 여야가 첨예하게 맞붙은 규제 프리존법과 규제 샌드박스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반기 국회 원구성도 끝난 참이다. 이미 국회 의장과 각 상임위원장, 소속 상임위원을 선출해 전열도 정비됐다.

여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규제 샌드박스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며 '나쁜 규제' 혁파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침체된 경제의 활로를 뚫어주기 위해 신산업·신기술 분야의 규제를 일괄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산업 중심의 영국식 탈규제 법안인 셈이다.

이미 제출된 관련 법안만도 행정규제기본법, 금융혁신지원법, 산업융합촉진법, 정보통신진흥법, 지역특구법 등 규제혁신 5법이나(?) 된다. 규제혁신으로 4차 산업혁명을 예열시켜 시장에 새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혁신성장의 돌파론이다.

야당도 민생을 앞세워 규제 프리존법을 드라이브하고 있다. 규제 프리존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27개 전략산업을 지정해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다. 일본의 국가 전략특구 제도가 모태다.

규제 프리존법 역시 야당이 집권시절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그레이존 해소법, 기업실증특례법, 신기술기반사업법 등 규제혁신 3종 세트를 포함하고 있다. 지방 중심의 혁신기술을 키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다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지역 신성장론이다.

정부는 수시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규제개혁위원회가 안건 심의를 하고 있는 모습.

■ 여야 신산업 규제 혁신법안 드라이브.... 입법 취지·목표 같은데 정쟁으로 '낮잠'

같은 듯 다른 두 법의 차이는 뭔가. 박근혜정부 시절에 추진된 규제 프리존법은 경제특구를 만들어 신산업 규제를 완화하자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정부 들어 추진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법은 지역 중심이 아닌 산업 중심 규제가 포인트다.

예컨대 민간기업이 특정 분야 규제 완화를 요청하면 소관 부처가 심의해 들어주는 ‘리퀘스트&앤서(request & answer)'가 기본 전제다. 관 중심의 규제개혁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규제를 먼저 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특례 혹은 예외조항을 감안하면 두 법은 사실상 유사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법에 다름 아니다. 지역 중심이냐, 산업 중심이냐의 접근법에 따른 문제일 뿐이다.

입법 취지도 비슷하다. 산업화 이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화로 새 성장 동력의 답을 찾았듯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블록체인 등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시대의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자는데 방점이 있다.

뜯어보면 창조경제와 혁신성장의 바탕은 초록은 동색이다. 신경제의 답은 규제의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같다. 기득권을 혁파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일치한다. 말 그대로 신경제, 신산업은 기존의 낡은 법제도와 규범을 깨뜨려야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런데도 여당과 야당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여당은 창업과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법 통과에 협조하라는 입장이고, 야당은 집권기에 규제 프리존법에 협조하지 않은 여당을 탓하며 사과가 먼저라고 맞선 상황이다.

정략적인 셈법이다. 자존심 싸움도 걸려있다. 여야 모두 민생과 경제를 주장하는데도 입법 상황은 여간 녹록한 게 아니다.

정쟁으로 신산업 규제혁신법안이 국회서 잠자고 있다. 사진은 국회서 열린 '반도체산업 발전 대토론회' 장면.

■ 규제 혁파 1차적 책임은 집권 여당에.... 법안 늦으면 있는 기회도 날아갈 판

그렇다면 여당의 책임 있는 모습을 먼저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집권 여당이 먼저 정치력을 발휘하라는 것이다. 지방 선거도 압승한 참이다. 당장 유감 표명 하나로 야당의 체면을 세워줄 수도 있다.

마침 대통령이 지난 주 의료기기 전시회에서 ‘선 허용, 후 규제’라는 신성장 산업과 관련한 일단의 규제 인식을 드러낸 참이다. 규제를 위한 ‘나쁜 규제’는 없애야 한다는 공세적 입장을 천명한 셈이다. 규제 혁신에 관한 언급만 벌써 한두번이 아니다.

어디 의료기기만 그러하겠는가. 당장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규제는 더욱 첨예하다. 원격의료와 은산분리가 대표적이다.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정책도 그렇다. 이른바 우버법, 드론법, 전기차법, 빅데이터법이라 불리는 규제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타협과 양보의 산물이다. 국가 경영은 여당이 책임져야 하는 법이다. 야당만 탓할 바가 아니라는 얘기다. 집권 여당이 먼저 자세를 낮춰야 한다. 여야뿐만 아니다. 노사정, 민간 대 민간의 이해관계자 간 타협과 조정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흑묘백묘(黑猫白猫)라고 했다. 속도의 시대에 여야 역시 규제 프리존이든 규제 샌드박스든 굳이 명칭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조항은 삽입하면 그만이다. 국가 새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집하지 말고 흔쾌히 손을 맞잡으라는 뜻이다.

초연결 시대의 빠른 기술 흐름과 치열한 시장 경쟁 환경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경쟁 대열에서 뒤처진다. 인터넷은행과 블록체인, 드론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우리를 앞섰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보라. 한때 앞선 문물도 받아들이고 자원도 풍부했지만 산업화에 뒤처지면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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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다. 현실 경제는 여간 녹록치 않다. 여야가 국회서 규제법안을 놓고도 정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패스트팔로 전략(Fast Fallower)과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을 앞세운 세계 각국은 신산업 분야에서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시간은 절대 기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편집인/과학기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