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리케이션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만으로는 1~2년 안에 마이데이터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미 스크래핑(데이터 자동추출)기술로 개인자산관리를 해주는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한 가지 기술을 점찍어 놓기보다는 다양한 기술을 선택해 사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24일 국내 스크래핑 엔진 개발업체 대표들은 모두 입을 모아 금융위원회의 '마이데이터 산업 도입방안'이 시대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데이터사업자가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API만으로 규정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API 구축에는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데다 금융사마다 각기 다른 데이터 모듈을 맞추는 작업도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이데이터사업자들에게 API만을 이용할 것을 종용하는 것은, 사업이 꽃 피우기도 전에 API구축만 하다 산업이 사장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업체의 대표는 "금융사의 데이터베이스가 다 똑같으면 API를 통해서 빠르게 데이터를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다"면서 "금융사 간 겹치는 데이터만 쓰게 될 텐데 결국 이는 계좌 잔액 조회 등 뻔한 데이터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보의 범위가 줄어들면서 서비스 자체가 떨어질 것이며 마이데이터산업 활성화에 실효성이 없다. API와 스크래핑 기술이 결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B업체 대표 역시 API 만을 고집하는 정책으론 마이데이터산업의 효과가 떨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B업체 대표는 "API만을 활용하면 금융회사 정보만을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친다. 개인이 보유한 공공정보도 결합돼야 더 정교한 개인맞춤형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며 "예를 들어서 본인의 소득을 정확한 건강보험납부내역, 또는 이사람이 직장생활을 영위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역 등은 금융사에 없다. 개인이 소득을 제대로 입력한다는 보장도 없어 API로 가면 서비스에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C업체의 대표는 금융위가 주장한 '마이데이터사업자에 한해 스크래핑 기술을 금지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공언한 마이데이터 산업 자체는 이미 수많은 스타트업과 은행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더욱 독려하기 위해 정부가 이 같은 정책을 내놨는데 이미 잘 쓰고 있는 기반 기술인 스크래핑을 금지하려 한다"며 "결국 개인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과 은행은 사업을 접어야 할 것이다. 피해는 잘 쓰고 있는 금융소비자가 입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비대면 대출에서 스크래핑 기술을 적용, 대출 절차를 간소화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C업체 대표는 "API로만 간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만큼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1~2년으로 안 만들어진다. 결국 기술이 진보하기보다는 후퇴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들 업체들은 금융위가 마이데이터산업의 선례로 제시한 미국의 개인정보자산관리 스타트업 '민트'를 거론하면서, 규정은 유럽연합을 들이미는 점 역시 의아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에는 API와 스크래핑을 동시에 허용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올해 초 시행된 PSD2(Payment Services Directive 2)에 따라 스크래핑 기술을 일부 금지하고 있다.
스크래핑 엔진 개발업체들은 금융위가 제시하고 있는 보안 의혹을 해소하고, API와 스크래핑이 양립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국내 스크래핑 기술이 세계적으로 독보적인만큼,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A업체 관계자는 "서버에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서버형 스크래핑 기술에 대한 위험성만 금융위는 강조하고 있다"면서 "만약 보안 문제가 된다면 스크래핑 기술 개발사들이 보안 검증을 받을 수 있게끔 하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B업체 관계자 역시 "국내는 스크래핑에 대한 보안 기술이 발전해 있다. 금융위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상래고 본다"며 "스크래핑을 할 경우 동의하지 않는 정보를 가져오느냐 등의 문제도 거론하지만, 고객이 동의하지 않은 정보가 떠돌거나 제3자에게 유출된 적이 없다"고 거론했다. 그는 "고도화로 암호화된 정보를 스크래핑 엔진 기술을 사용하는 업체에 넘기며, 정작 개발업체가 갖고 있는 데이터는 없어 문제될게 없다"고 설명했다.
C업체 측은 "국내 스크래핑 기술은 미국보다 더 발전돼 있다. 선진국에서 국내 엔진을 사가서 그 나라에 판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관련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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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업체 관계자 역시 "금융위가 마이데이터산업에서 스크래핑 기술을 배제해, 국내 개발업체의 판로가 없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결국 해외업체에 이 기술을 팔아서 오히려 해외 업체가 국내에 들어와 더 나은 기술로 마이데이터산업을 독식하는 행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데이터산업은 개인의 신용정보의 체계적 관리를 지원함과 동시에 소비패턴 등의 분석을 통해 개인의 신용관리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데이터사업자(본인신용정보관리업)를 육성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금융위는 개인신용정보를 정보 주체 동의하에 이동할 수 있는 개인정보이동권과 신용정보법상 신용조회업과 구분되는 신용정보산업을 별도로 신설하기 위한 절차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