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 한국 수출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도체 하나에 의존한 우리 수출경제 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공급 과잉에 따른 고점 논란과 메모리 쏠림 현상,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 우리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위기 대응과 체질 개선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지디넷코리아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제기되고 있는 현안들을 3회에 걸쳐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반도체 하나가 韓수출 20%...불안한 호황
② 위기의 전조…가격↓·메모리 쏠림·中 굴기
③ '초격차' 선제 투자가 반도체코리아 살린다
메모리반도체 가격 폭등으로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을 맞고 국내 총수출의 20%를 차지한 반도체 산업에도 '위기론'은 여전하다. 반도체 호황이 주춤하면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릴 지 모른다는 우려다.
우려가 기우(杞憂)로 그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벌써 업계 곳곳에선 반도체 위기론을 입증하는 일종의 전조(前兆)가 포착되고 있다.
우선 우려되는 건 D램과 함께 메모리반도체 호황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낸드플래시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낸드는 지난해 9월부터 쭉 같은 가격을 유지하다 올해 하반기부터 가격이 무섭게 내려가고 있다. 지난해 말 고점 논란에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도 가격 반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의 지난해와 올해 가격 동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8월 5.78달러였던 범용 낸드 128기가비트(Gb) 16Gx8 멀티레벨셀(MLC)의 고정 거래가격은 지난달 말 5.27달러로 크게 하락했다. 1년 만에 0.51달러나 꺾인 것. 전달 가격과 비교해도 0.33달러나 떨어졌다. 지난해 8~9월(0.18달러) 사이의 가격 차이와 비교해보면 하락 폭의 기울기도 점점 가팔라지고 있는 셈이다.
낸드플래시 호황의 몰락은 관련 산업계에 벌써 위기감을 주고 있다. 글로벌 낸드 시장 점유율 1위(삼성전자)와 4위(SK하이닉스)가 한국 업체들이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 양사의 시장 점유율 합계는 50%에 육박한다. 이들이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지난 상반기 국가 경제의 약 20%를 지탱했다.
낸드플래시 가격은 올해 연말을 넘어 내년 상반기에도 계속해 하락할 전망이다. 평균판매가격(ASP)이 3분기와 4분기에 각각 10%씩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디램익스체인지는 수요와 공급 모두 불안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메모리 편식(偏食)도 위기론에 한몫을 더한다. 업계의 메모리-시스템반도체 수익 비중 격차가 5년새 10%포인트나 벌어졌기 때문이다. 메모리 호황이 머지않아 끝나면 시스템반도체 수익이 거의 없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큰 위기가 닥칠 수도 있는 셈이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의 자료를 분석했더니 올해 상반기 국내 반도체 업계의 메모리반도체 수익 비중은 60%에 달했지만, 시스템반도체 비중은 3%에 불과했다. 이는 5년 전인 지난 2013년 상반기 수익 비중(메모리 52%·시스템 5%) 대비 격차가 10%포인트 가량 심화된 것이다.
시스템반도체는 데이터 저장에 쓰이는 메모리반도체(D램·낸드플래시)와 달리 사물과 사람을 인지하고 제어하는 데이터 처리 장치다. 주요 제품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이미지센서(CIS) 등이 언급된다.
시스템반도체는 메모리반도체보다 시장이 두 배 이상 크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는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이다. 메모리 시장 규모는 나머지 30%에 불과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메모리 시장 매출은 올해를 정점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스템반도체는 오는 2021년까지 상승세가 유지될 전망이다. 매출 규모도 1천321억 달러(메모리), 4천153억 달러(시스템)로 크게 차이가 난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堀起·일어섬)도 업계를 점점 더 내몰고 있다. 자체 기술로 메모리반도체 개발을 서두르는 한편, 국내 업계에 포진된 고급 인력 빼내기에 혈안이 됐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영 낸드플래시 기업 YMTC는 올해 하반기부터 32단 3세대(3D) 낸드 시제품 양산을 시작한다. 이어 빠르게 64단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중국과 삼성전자(90단 이상)·SK하이닉스(72단)의 기술 격차는 3년 정도로 추산되지만, 중국 정부가 나서 자국 반도체 산업을 밀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양스닝 YMTC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샌타클라라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플래시 메모리 서밋'에서 "올해 안에 32단 3D 낸드 시험 생산에 돌입, 내년엔 대량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YMTC는 '엑스태킹(Xtacking)'이라는 독자 낸드 기술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면적 당 메모리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고 한다.
YMTC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반도체 기업들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회사는 중국 우한에 24억 달러를 투입해 현재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 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업계는 내다봤다.
설립된 지 올해로 3년이 된 YMTC는 그동안 낸드 양산을 위해 글로벌 낸드 업체들로부터 다수의 전문 인력을 영입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YMTC를 비롯한 중국 ICT 업체들의 최고 핵심 인력은 한국 업계 기술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달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 현지 반도체 업종에 취직한 한국 인력은 약 1천300여명에 달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규 취직자는 물론이고 임원급 고위 인사들, 20년 넘게 국내 업체에서 근무한 사람도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발간한 보고서는 중국 내 반도체 전문 인력을 약 30만명에서 35만명 규모로 추산했다. 그런데 중국은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올리고, 산업 규모를 5배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수행하려면 40만명이 더 필요하다. 향후 국내 인력 유출이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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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유출 문제의 핵심은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외 인력·기술 유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며 "특히 고급 인력의 이직은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돼 막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기술 경쟁 시대에선 전문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사람 중심'의 인재 경영이 뒷받침 돼야 또 다른 기술 유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