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주 간단한 계산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 3월 5G 상용화를 선언했다. 5G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5G 통신망이 깔려야 한다. 통신망이 깔리는 데는 6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통신사들은 9월부터 망 구축을 시작해야 한다.
통신사들이 망 구축을 하기 위해서는 통신장비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현재 유력한 장비업체로는 삼성전자, 노키아, 에릭슨, 화웨이가 있다. 이 중 가격경쟁력이 뛰어나며 기술력에서도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화웨이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지만은 않은 문제가 있다. 화웨이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다. 화웨이 관련 기사에는 늘 악플이 달린다. 보안을 위해 중국산 통신장비업체를 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화웨이를 창립한 런정페이가 중국 인민군 장교 출신이라는 것과 화웨이라는 단어의 뜻이 '중화민족을 위해 분투한다'라는 뜻이라는 점도 부정적 인식에 한몫한다. 더 나아가 미국 정부는 화웨이와 현지 기업 간 거래를 중지시키는 등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화웨이로서는 답답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1987년 설립 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31년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온갖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웨이는 지금까지 보안에 관해 문제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존 서포크 화웨이 글로벌사이버보안책임(GSPO)은 30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보안 검증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국 여론에 대한 화웨이의 대응은 오직 말뿐이고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화웨이는 영국 정부로부터 매년 화웨이 사이버안보평가센터(HCSEC)를 통해 제품을 검증받아 왔다. 최근에도 영국 정부는 보안 이슈 때문에 화웨이를 정밀 조사한 바 있다. 그렇다면 5G 상용화를 앞둔 지금 한국에도 사이버안보평가센터를 세울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주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17일 민간 통신사에서 도입하는 장비의 보안성 검증은 장비를 도입하는 통신사가 자기 책임 하에 직접 수행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과기정통부가 5G 보안문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것은 5G 시대에 필요한 보안정책 수립, 기술과 인력 개발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사는 어떨까. 통신사는 현재 각 기업의 장비를 놓고 품질평가성능시험(BMT)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니만큼 일반인들이 이 과정에 대해 알 수는 없다. 화웨이 장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생각한다면 통신사라도 화웨이의 보안 검증 과정을 공개해야 한다.
결국은 떠넘기기다. 화웨이는 한국 정부가 보안 검증을 요구한다면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장비 보안성 검증 문제는 통신사가 자기 책임 하에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신사는 장비 구매는 대외비라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기관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고주파수인 28GHz보다 3.5GHz에서 5G망이 먼저 구축될 거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화웨이가 잠정적인 5G 시장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화웨이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사실도 화웨이를 무시하지 못하게 만든다.
화웨이는 지난해 SK하이닉스 이외에도 여러 국내 기업에서 약 5조원가량의 부품을 구입했다. 이렇듯 화웨이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데 화웨이를 써서는 안 되는 이유는 보안 문제 하나뿐이다. 그렇다면 보안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증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아무도 화웨이 장비를 적극적으로 검증하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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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달 5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내년 3월에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를 하지만 5G는 결국 서비스"라며 "서비스를 구현하는 단말기나 통신 장비 등은 결국 우리 산업인데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의미가 희석되면 안된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5G 상용화를 위해서는 결국 정부와 통신사, 화웨이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상용화를 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