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봇업계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 로봇 분야를 가리지 않는 위기다. 한두 해 이어진 것도 아니다. 업계에선 로봇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쇠락한 후 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수출 시장과 새로운 로봇시장 발굴에 고군분투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수익화가 만만치 않다. 대다수 영세한 국내 로봇업체들은 자금 부족이라는 고질적 문제 때문에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기술 개발조차 어렵다.
■ 유럽·일본, 산업용 로봇시장 이미 선점...한국 기업 설 자리 애매해
국내 산업용 로봇업계는 현대중공업지주 외에는 규모를 갖춘 기업이 없다. 현대중공업지주 역시 국내 시장에서는 1위이지만 세계시장은 유럽, 일본 경쟁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로봇부문 실적을 기준으로 세계 1위는 16억3천100만 달러(약 1조7천569억원)를 기록한 일본기업 화낙이었다. 그 뒤로 2위는 독일기업 쿠카(13억9천200만 달러), 3위 스위스기업 ABB(11억4천100만 달러), 4위 가와사키중공업(9억4천만 달러), 5위 야스카와전기(8억6천500만 달러), 6위 현대중공업지주(2억2천500만 달러) 순이다.
국내 산업용 로봇업계 다수를 이루는 기업들은 로보스타, 디에스티로봇, 뉴로메카, 스맥 등 중소 기업들이다.
이들 국내 기업들이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배경에는 짧은 업력과 핵심 부품, 로봇 시스템 기술력 차이 등이 꼽힌다.
ABB, 쿠카, 화낙, 가와사키중공업 등은 업력이 최대 130년 이상 될 만큼 오랫동안 기술력을 쌓아온 기업들이다. 산업용 로봇 역시 1960~1970년대부터 시작하며 시장을 형성하고 이끌어왔다.
반면 국내 많은 산업용 로봇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파산하거나 그룹에서 분리됐다. 로보스타 역시 현재 LS산전의 전신인 LG산전 로봇사업부가 뿌리다.
국내 로봇업계 관계자는 "국내 로봇 관련 기업들 대다수는 IMF 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하거나 인력들이 기업에서 나와 뿔뿔이 흩어져 성장할 기회를 놓쳤다"며 "그새 다른 나라 경쟁사들은 꾸준히 기술력을 쌓으며 성장했다. 경쟁력이나 시장 진입 속도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력이 짧고 자본이 적은 국내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로봇 기술 투자가 어렵다. 이에 산업용 로봇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기술력도 뒤쳐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공장 등 작업 현장 시스템과 로봇 시스템을 통합시키거나 필요한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로봇 시스템 통합(SI) 기업 수와 전문성도 부족하다. 결국 모멘텀이 없는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반면 화낙, 야스카와전기 등 일본 산업용 로봇업체들은 공작기계용 수치제어장치, 모터 등 로봇 부품을 직접 생산해 세계 시장에 공급하며 신뢰성과 수익성을 함께 가져가고 있다. 일본로봇공업회(JARA)엔 150개가 넘는 로봇 시스템 통합 기업들이 등록돼 있으며 JARA는 해당 기업들과 고객사들을 연결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외 고객사 입장에선 한국 로봇이나, 부품, 로봇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믿을 수 있는 해외 경쟁사들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국내 기업이 국산 산업용 로봇이나 부품을 일부 쓰고 싶어도 이미 거래 중인 해외 거래사 제품과 연동이 어렵거나 거래사가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국내 산업용 로봇산업이 성장하려면 핵심 부품 기술력과 로봇 분야 SI 기업을 함께 키워야 한다"며 "현장에서 로봇이 안전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SI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용 로봇에 포함되는 협업로봇도 해외 경쟁사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야 국내 기업들의 진출이 눈에 띄고 있는 실정이다. 한화정밀기계, 두산로보틱스, 뉴로메카, 오토파워 등이 지난해부터 제품 출시를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지주 역시 협동로봇 시장 가능성을 검토하며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 중이다.
업계에선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산업용 로봇보다 협동로봇이 국내 산업용 로봇업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산업 현장에서 안전 울타리 없이 사람 주변에서 사용될 수 있는 협동로봇 안전 인증 신청이 가능하다.
단 국내에 들어와 있는 유니버설로봇, 화낙, ABB, 쿠카, 스토브리 등 해외 협동로봇 제조사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다.
■ '서비스 로봇' 수익화 먼 이야기...생태계 구축 등 장기 전략 수립해야
로봇산업의 또 다른 한축인 서비스 로봇 분야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서비스 로봇 중 현재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은 로봇청소기뿐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LG전자, 삼성전자, 유진로봇 등 국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꽉 잡고 있지만 해외 시장은 다르다.
거대 시장인 중국, 미국에서 국내 로봇청소기 수출 성적은 10위 안팎에 머물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미국 로봇청소기 수입 국가 순위를 보면 한국은 각각 9위, 11위에 그쳤다.
로봇청소기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큰 시장이지만 국내 기업이 성과내기엔 힘든 나라"라며 "중국 기업들의 로봇청소기 생산량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다 중국 정부가 자국 기업을 밀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KOTRA는 소음과 배터리, 디자인에서 우위를 가진 국내 로봇청소기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현지기업과 협력하고 미국 시장에서도 가격경쟁력과 마루와 카펫이 혼재된 환경, 애완동물 등을 고려한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안내 또는 접객 로봇은 아직 수익화가 멀었다는 문제가 있다. 해외서도 알려진 사례는 소프트뱅크의 '페퍼(pepper)' 로봇 정도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LG전자와 퓨처로봇이 안내와 엔터테인먼트 또는 청소, 보안, 고객 관리, 서빙 등 여러 기능을 추가한 안내 로봇을 공급하고 있거나 시범 서비스에 나서며 시장을 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산업용 로봇처럼 해외기업에 시장을 뺏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기술 개발해야 하지만 중소기업이 97% 수준을 차지하는 국내 로봇업계 상황에선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서비스 로봇에 필요한 인공지능(AI), 비전 시스템, 센서 기능 등을 개방형 또는 유료 로봇 플랫폼화해 원하는 중소기업들이 가져다 쓰거나 빌릴 수 있도록 생태계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밖에 의료로봇, 재활로봇,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등 시장 수요나 필요성은 예상되지만 오랜 연구 개발이 필요한 로봇 분야도 다수다.
물류로봇은 최근 네이버, 유진로봇 등이 국내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네이버는 현대중공업지주와 협력해 연말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어라운드'를 양산할 계획이다. 유진로봇도 올 하반기부터 병원, 호텔, 공장 창고 등을 목표로 한 '고카드'를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해당 기업들은 물류로봇 잠재시장이 매우 큰 만큼 초기 공급 현장에서 제품 효용성이 확인된다면 제품 수요가 빠르게 늘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단 아직 시장이 확실히 열리지 않아 언제쯤 이익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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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업계 관계자는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로봇산업은 장기간 많은 투자와 연구가 필요한 신산업 분야"라며 "산업용 로봇은 이미 해외 기업들이 기술력에서 앞서 있지만 협동로봇, 서비스 로봇 분야는 국내 기업들도 세계 시장에 나설 기회가 있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정부와 민간 모두 협력하고 예산과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로봇업체들은 97% 이상이 중소기업이며 대기업을 포함한 일부 기업들 외에는 기술 연구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한 곳이 거의 없다"며 "국내 로봇업체들이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나 도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국내 산업용 로봇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핵심 부품 내재화를 위한 정책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