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데스크톱 컴퓨터(HEDT) 시장을 두고 인텔과 AMD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지난 9일 폐막한 '컴퓨텍스 2018' e21포럼 기조연설에서 인텔이 28코어, 56스레드 프로세서를 공개한 다음날 AMD는 32코어, 64스레드로 작동하는 스레드리퍼 2세대 프로세서를 공개했다.
출시 시기나 구현 방법에 차이는 있지만 두 회사가 노리는 시장은 명확하다. 고해상도 3D 렌더링이나 동영상 편집·인코딩 등 작업으로 1분 1초가 돈과 직결되는 전문가들이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들을 잡겠다는 것이다.
■ AMD·인텔 경쟁이 낳은 멀티코어 대중화
개인용 데스크톱PC는 물론 노트북 컴퓨터까지 다중 코어 프로세서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전부터다. 당시만 해도 듀얼코어 PC를 만들려면 특수하게 설계된 인텔 제온이나 AMD 옵테론 프로세서 두 개를 메인보드 하나에 꽂아야 했다.
2005년 상반기 AMD가 출시한 애슬론64 X2는 프로세서 다이 하나에 코어 2개를 넣은 설계로 잠시나마 인텔에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인텔은 같은 시기 AMD를 견제하고자 펜티엄4 코어 2개를 한데 붙인 펜티엄D 프로세서를 출시했지만 성능과 소비전력 등 어떤 면에서도 AMD를 압도하지 못했다.
1년 수 개월간 계속된 인텔의 암흑기는 2006년 코어2 듀오(개발명 콘로)를 내놓으며 비로소 끝난다. 짧은 시간 안에 보다 많은 명령어를 소화하면서 전력을 적게 쓰는 코어2 듀오 프로세서의 구조 탓에 AMD 애슬론64 X2 프로세서는 점점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코어2 듀오의 성공에 자극받은 인텔은 2007년 초 PC용 쿼드코어(4코어) 프로세서인 코어2 쿼드 Q6600(개발명 켄츠필드)을 내놓는다. 이 프로세서는 사실 코어2듀어 프로세서의 다이를 2개 연결해 만들어졌지만 확실한 성능 향상 탓에 적자·서자 논쟁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AMD는 다이 4개 연결, 인텔은 '다운사이징'
현재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나온 프로세서 중 가장 많은 코어를 내장한 것은 인텔 코어 i9-8950HK 프로세서(6코어, 12스레드)나 AMD 라이젠7 2700X 프로세서(8코어, 16스레드)를 꼽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이상 코어를 늘릴 경우다. 같은 면적 안에 아무리 미세한 공정으로 코어를 새겨 넣는다 해도 10nm(나노미터), 혹은 14nm 수준에서는 누설전류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기 마련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 프로세서 안에 최대한 많은 코어를 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에 개발한 옥타코어, 혹은 쿼드코어 다이를 2개 내지는 4개씩 연결하는 것이다. AMD가 공개한 스레드리퍼 2세대 프로세서가 이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또 다른 하나는 서버·워크스테이션용으로 개발된 프로세서 구조를 활용해 PC에 적용하는 것이다. 해외 IT 매체인 아난드테크는 "인텔이 시연한 28코어, 56스레드 프로세서는 서버용 프로세서인 제온 플래티넘 8176·8180을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들 프로세서가 노리는 시장은 단순히 게임이나 사무 작업, 인터넷 정도를 활용하는 일반 소비자가 아니다. 고해상도 3D 렌더링이나 동영상 편집·인코딩 등 1분 1초가 돈과 직결되는 전문가들이다.
3D나 동영상 등 작업은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코어가 많을 수록 처리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애플리케이션도 멀티코어에 최적화되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지만 현대 각종 프로그램들은 멀티코어가 처음 태동하던 10여 년 전과 달리 이미 충분한 최적화를 거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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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시간을 돈으로 사는 데 대한 대가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AMD 스레드리퍼 2세대 프로세서나 인텔 28코어 프로세서 모두 구체적인 가격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행 제품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 몸값을 짐작할 수 있다.
인텔이 현재 판매중인 i9-7960X(16코어, 32스레드) 프로세서 가격은 170만원을 넘나든다.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 AMD 스레드리퍼 1950X(16코어, 32스레드) 역시 프로세서 가격 하나만 100만원이다. 앞으로 출시될 제품 역시 이를 훌쩍 넘어 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