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이 갑작스런 사고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초조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대기실을 서성일 무렵, 문자 하나가 들어온다. 읽어보니 사고나 상해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법률 사무소 광고 문자다.
때마침 필요한 유용한 광고 문자로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내 상황과 위치를 누군가 감시하고 있는 것 같은 불쾌감이 들까.
미국의 비영리 라디오 방송 NPR은 최근 이 같은 사례를 언급하며, 지나친 타깃 마케팅 논란을 다뤄 눈길을 끌었다.
NPR 보도를 인용한 IT매체 기가진에 따르면 미국 뉴욕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텔 올 디지털’(Tell All Digital)은 응급실과 통증클리닉 등 의료 기관을 위한 ‘지오펜싱’이라는 타깃 광고를 실시하고 있다.
지오펜싱은 와이파이나 신호 등을 사용해 위치 데이터를 측정하고, 특정 영역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대상에게 특정 정보를 보내는 기술이다. GPS가 위치를 점으로 표시한다면, 지오펜싱은 면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 사용자 위치를 추적, 분석해 타인에게 알려주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소매점 등에서 상품 정보와 쿠폰을 제공함으로써 구매 행동으로 연결하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지오펜싱 광고를 텔 올 디지털은 의료기관의 대기실에 있는 사람을 향해 사용하고 있다.
미국 고속도로에는 ‘교통사고 전문 법률 사무소’ 광고 간판이 많이 세워져 있다.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대부분 변호사에게 사고 해결을 의뢰한다는 경험에 따라 오래 전부터 유효한 타깃팅 광고로 자리 잡았다.
텔 올 디지털 지오펜싱 광고 역시 고속도로에서의 교통사고 법률 사무소 광고와 같은 원리로 이뤄져 있다. 부상 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에 다니는 사람이 변호사의 상담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법률 사무소의 타깃 광고가 유효하다. 입양을 알선하는 시설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치료 센터 광고도 지오펜싱 기술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의료기관에 통원 경력 등을 활용하는 광고가 개인정보를 위협할 수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매사추세츠 마우라 힐리 법무 장관은 “개인의 의료와 관련된 데이터는 이런 수단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면서 “특히 소비자의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소비자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용자의 사생활을 배려하지 않은 데이터 취급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또 미네소타 대학에서 인터넷 정책을 가르치는 빌 맥제버란 변호사는 “건강, 성, 소득, 정치사상에 관한 정보는 좋아하는 치약 브랜드 등의 정보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면서 “이런 종류의 기밀성 높은 정보는 더 높은 수준에서 취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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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제버란 변호사에 따르면 현행법상 텔 올 디지털 등이 참여하는 지오펜싱 광고는 불법이 아니다. 이에 사생활을 침해할 수도 있는 지오펜싱 광고에 대한 새로운 입법이나 연방 거래위원회의 행정지도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NPR은 텔 올 디지털에게 계약한 법률 회사나 병원의 정보 공개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클라이언트 정보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NPR은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상해 사고 전문 법률 사무소에 대해서도 광고 이용에 관한 코멘트를 요구했지만 회답한 사무소는 한 곳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