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아들이 게임에 빠져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결국 게임 관련 프로그램 디자인, 영상 디자인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었다. 게임 산업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년째. 국내 게임 콘텐츠 산업은 진흥과 별개로 규제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민관합동게임제도개선협의체 지난해 7월 발족…웹보드 규제 완화 물거품
게임업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게임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일 당시 게임 산업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진 영향이다.
이러한 기대감은 게임 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정환 장관 취임 이후인 지난해 7월 민관 합동 게임규제개선 협의체(이하 협의체)를 구성해 더욱 증폭되는 듯 했다.
업계의 바람대로 협의체에선 그동안 각종 게임 규제의 불합리함을 알리고, 여러 의견을 정부에 전달하며 가교 역할을 하는데 노력했었다.
그러나 처음 기대와 달리 협의체의 존재 이유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과 함께 업계의 불만이 터져 나온 상태다.
이는 지난 3월 협의체가 웹보드 게임 규제 내용 중 ‘1일 10만원 손실시 24시간 게임 접속 제한은 월 결제 한도와 비슷한 이중규제’란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지만 현행 수준 그대로 유지키로 결정한 이유가 큰 영향을 미쳤다.
문체부 측은 당시 “웹보드 게임 규제와 관련해 찬성과 반대 양측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검토했다. 규제개혁위원회측에서도 신중하게 논의한 끝에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이후 2년간 웹보드게임의 흐름을 면밀히 검토하고 게임사와 이용자의 의견을 들은 후 다시 규제 개선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웹보드 게임 규제는 고스톱과 포커 게임 등에 대해 사행화 방지를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시행돼 왔다. 해당 규제(월 결제한도 50만 원, 일 손실한도 10만 원, 1회 베팅 한도 5만 원)는 2년마다 재평가를 받는 일몰제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해당 규제가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됨에 따라 오는 2020년 재평가를 받는다.
■온라인게임 결제 한도-강제적 셧다운제 규제 완화는 현재 진행형
웹보드 게임 규제 완화가 불발로 끝나면서 PC 온라인 게임 월 결제한도와 청소년의 심야 게임 시간을 통제하는 셧다운제 규제 역시 현행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 분위기를 보면 게임 규제가 개선되거나 폐지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3년 처음 시행된 월 결제한도 규제는 성인은 월 50만 원(30만 원에서 한차례 상향 조정), 청소년은 7만 원으로 결제 한도를 정한 게 주요 골자다. 업계에선 해당 법의 규제를 받지 않고 있는 글로벌 게임 서비스 플랫폼 스팀 등과 비교해 역차별을 받고 있는 만큼 해당 규제를 폐지 또는 개선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보호를 앞세워 시행됐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질 않는 대표적인 게임 악법으로 꼽힌다. 셧다운제는 부모가 자녀의 게임 플레이 시간을 통제하는 문체부의 선택적 규제와, 심야 시간 무조건 게임 플레이 시간을 통제하는 여성부의 강제적 규제로 나뉜다.
학계에선 잇따라 셧다운제의 실효성을 부정하는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 또 이를 근거로 게임업계 출신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거나 관련 토론회에 적극 참여해왔다.
김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실효성이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문화에 대한 자율성, 다양성 보장에 역행하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청소년, 부모가 서로 소통하면서 자율적인 책임 아래 게임 이용시간을 조절하도록 개정안을 발의하게 됐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도 셧다운제 규제 폐지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문체부와 다르게 여성가족부가 폐지 반대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가부는 업계와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음에도 셧다운제 관련 국회 주최 토론회, 문체부와 민관합동 토론회 등에 참석하지 않아 불만을 사기도 했다.
■WHO 게임질병코드 대응 문제 수면위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게임 규제 이슈에도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질병코드 등재 이슈가 가장 컸다.
게임 주무부서인 문체부는 WHO의 게임질병코드 등재 추진에 여론이 악화되자 관련 연구 용역을 발주 했지만, 업계에선 소극적인 대응이라며 비난했다.
게임질병코드 등재 이슈는 문체부가 아닌 복지부와 의료 쪽이 주도하고 있고, 관련 정보가 실제 영향을 받는 게임업계에 빠르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게임업계의 의견이 WHO 전달되는 창구도 시급히 마련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업계가 게임질병코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게임을 질병으로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더욱 확산되고, 이에 따라 산업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WHO의 게임질병코드 등재는 애초 오는 5월에 시도될 예정이었지만,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게임 주무부처인 문체부가 복지부 등과 연계해 적극 대응할지를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게임질병코드에 대한 논의는 복지부와 의료 쪽에서 주도해나가고 있다. 게임업계는 관련 정보에 소외된 상황”이라며 “WHO 따르면 해당 문제를 동북아시아 중 우리나라 보건 분야에서 제기했다고 하는데, 실제 어떤 단체에서 어떤 의견을 전달했는지를 확인해 봐야한다. 정부가 이를 확인하고 검증을 한 뒤 올바르고 정제된 의견을 다시 WHO에 전달해야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실질적인 제도 개선 결과 요구...자율 규제 자리 잡아야
문재인 정부에선 게임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지난 1년간을 되돌아보면 게임 산업은 규제 대상이다. 정치권 일각과 업계, 학계에선 정부의 규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복수의 전문가는 이를 두고 정부가 게임 산업 규제에 개선 의지가 있다면, 문체부가 출범시킨 협의체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협의체가 제기능을 발휘하려면 문체부가 협의체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고 실제 규제 개선을 주도해야한다는 요구도 있다.
물론 게임업계도 이에 발맞춰 게임의 순기능을 잘 알리고, 자율 규제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규제 개선 요구와 함께 게임업계 스스로 자율 규제를 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한다. 게임업계에선 모바일 게임 등급 등 자율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중국 등 해외 게임사를 강제적으로 참여시킬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임 관련 규제 토론회 등에 참석해온 유병준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정부가)규제를 개선하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아무것도 없다. 학부모, 소비자들의 눈치를 보기 바쁜 것 같다. 의지가 있다면 의견을 듣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단계적으로 규제를 개선하거나 철패 해야하지 않을까”라며 “업계에서도 (모바일 게임 등급 및 확률 표시 등)자율 규제를 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게임사들이 있는 만큼 적절한 대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자율규제도 힘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1년 밖에 안됐다는 점에선 평가를 신중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10여 년간 유지된 게임 규제 일방통행을 1년 만에 바로잡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게 이유다.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협의체 활동 등을 통해)규제 개선 과제를 건의했고 논의를 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다만 속도가 더딘 부분이 있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래도 규제 개선에 대해 논의 했고, 관련해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면 약속했던 변화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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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협의체에선 우선순위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다. 셧다운제의 경우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에도 도움을 주지 않고 있는다. 셧다운제 뿐 아니라 온라인 게임 결제 한도 규제는 글로벌 서비스 플랫폼 스팀 등과 역차별을 야기하고 있어 우선적으로 철폐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4년. 문재인 정부가 게임 등 산업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정부가 규제 개선과 철패를 위해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느냐는 게임 주무부처인 문체부의 적극적인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