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헬스케어 기업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적용한 빅데이터 플랫폼을 새로운 사업모델로 속속 내놓고 있다. 헬스케어 데이터를 안전하게 모아 거래할 수 있게 해 병원, 연구기관, 기업 등에는 진료나 연구, 헬스케어 관련 상품 개발에 도움 되는 데이터를 제공하고 개인에게는 최적화된 헬스케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다.
헬스케어업계는 물론 의료, 보험, 바이오 등 다양한 업계에선 혁신적인 맞춤형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고비도 적지않다. 데이터 주체인 개인이 플랫폼에 얼마나 참여할지, 플랫폼 사업을 추진하는 기업 기술력과 전문성은 충분한지, 플랫폼에 제공한 데이터가 정말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등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13일 헬스케어업계에 따르면 직토, 마이23헬스케어, 메디블록 등 국내 헬스케어 기업들이 최근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빅데이터 플랫폼을 사업화하겠다고 밝혔다. 헬스케어 분야 확대를 염두하고 블록체인 플랫폼을 개발한 소프트웨어기업 데이터젠 같은 사례까지 합치면 헬스케어 빅데이터 플랫폼 시도는 더 늘어난다.
블록체인은 거래 데이터를 특정 기관이나 중앙 서버 등에 저장하지 않고 모든 거래 참여자가 나눠 보관하는 ‘분산 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이다. 모든 거래 참여자의 거래 데이터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위조가 불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 거래 당사자는 공개되지 않지만 거래가 발생했다는 사실과 발생 시간이 기록된다는 투명성도 특징이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거래되는 전자화폐다.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빅데이터 플랫폼에선 헬스케어 데이터를 거래할 때 쓰는 대가가 된다. 직토의 인슈어리움(ISR), 메디블록의 메디토큰(MED) 등이 그 예다.
국내 헬스케어업계는 해당 기업들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면 헬스케어는 물론 해당 플랫폼에 참여한 산업계와 소비자들 역시 혁신적인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헬스케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아 표준화시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 국내엔 없는 탓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직토는 해외 보험사들과 함께 보험 관련 데이터 플랫폼 ‘인슈어리움 프로토콜’을 개발 중이다. 보험사들과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자, 보험소비자들이 건강 관련 데이터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거래하며 혁신적인 보험 서비스가 나오고 보험사 업무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목표다.
마이23헬스케어는 싱가포르 블록체인 플랫폼기업 알파콘 네트워크, 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인터리젠 등과 컨소시엄을 꾸리고 헬스케어 빅데이터 플랫폼 ‘알파콘 네트워크’를 추진 중이다. 자사가 유전자 분석 서비스로 확보한 고객 유전자 정보와 제휴한 전국 1000여개 제휴 병원의 진단 정보, 웨어러블 기기 제휴사 등이 가진 생체 정보가 알파콘 네트워크에 모일 예정이다.
이에 따라 개인 맞춤형 의료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콘 네트워크에 참여한 병원, 연구기관, 기업도 풍성하고 표준화된 헬스케어 정보를 얻어 진료나 연구, 소비자 요구를 더 정교하게 반영한 서비스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예상도 따른다.
국내 헬스케어 업계는 이들 기업의 사업 모델이 상당히 혁신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평한다. 그러나 구상대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기반 기술로 채택한다면 반드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다.
■ 과연 얼마나 참여할까?
국내 헬스케어 전문가들은 인슈어리움 프로토콜이나 알파콘 네트워크, 메디블록은 물론 앞으로 나올 블록체인 기반 헬스케어 데이터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데이터 주체인 개인들이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당 플랫폼들은 데이터 제공 대가로 암호화폐와 장기적 혜택인 우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안한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불안정한 시세로 투기 자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암호화폐만 믿고 민감한 개인 정보를 선뜻 내주길 바라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데이터를 가진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플랫폼이 성공할 텐데 개인들은 단순히 암호화폐만 받는 것을 넘어 내 데이터를 줬을 때 내게 의미 있는 피드백, 가치가 나오는 구조를 바랄 것”이라며 설명했다. 이어 “희귀병 환자 본인 또는 가족이 본인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내놓은 사례가 있는데 이는 데이터가 많아야 병에 대한 연구나 약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데이터 제공, 안전할까?
또 다른 우려 점은 해당 플랫폼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한 신뢰다. 대다수 헬스케어 플랫폼은 익명화된 데이터를 유통시킨다고 하지만 ‘익명화 수준’은 아직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익명화된 다양한 정보들이 모이면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령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데이터를 제공한 개인이 데이터를 구매한 보험사로부터 보험 계약이 제한되거나 보험료가 오를 수도 있다.
한 전문가는 “정보 제공자인 개인이 피해 받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 플랫폼을 설계할 때 정보 제공과 수혜를 받는 것에 모순이 일어나는지 세심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데이터가 많이 모일수록 익명 정보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입장”이라며 “다른 데이터들과 결합하면 식별화가 가능해진다. 최근 논란이 된 페이스북 사건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으론 익명화가 무조건 답이 아니라는 주장도 따랐다. 맞춤형 서비스를 원하는 개인이라면 익명화보다 본인 정보를 명확하게 제공하는 것이 이득인 까닭이다.
이 전문가는 “익명화된 데이터는 장단점이 다 있다. 제대로 된 개인화 서비스를 바란다면 내 정보를 공개하게 된다”며 “반면 익명 데이터만 모아서 서비스하겠다면 줄 수 있는 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익명성은 양날의 칼”이라고 말했다.
■ 전문성 믿을 수 있나?
국내 헬스케어 기업들이 블록체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할 만한 기술력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병원, 연구소, 보험사, 정보기술(IT)기업 등 해당 플랫폼 참여자들이 다양할수록 요구되는 전문성 폭도 넓어진다. 참여자 특성들을 모두 고려한 플랫폼이 나오지 않는다면 데이터 제공자와 구매자가 함께 혜택을 볼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힘들다. 진출하려는 해외 시장과 제도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한 전문가는 “지난해 블록체인이 부상한 후 기술적 이해 없이 사업적 관점으로 사업 제안서를 내고 투자 받으면서 파트너를 확보하는 사례가 국내 헬스케어 업계에서 종종 보인다”며 “전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게 중론인데 한국에도 전문적으로 훈련된 블록체인 관련 인력들이 많지 않다. 있더라도 다 이미 다른 데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헬스케어 데이터를 다루는 플랫폼은 나오기 힘들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 다른 전문가는 “진료에 도움이 되는 데이터와 소비자가 제공하는 데이터가 따로 있고, 일상생활에서 생산되거나 활용되는 데이터도 다 다르다”며 “헬스케어 분야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공통 플랫폼 보다는 다양한 목적과 쓰임새를 노린 플랫폼이 나와 경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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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헬스케어업계는 개인과 다양한 산업이 혁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같은 과제들이 검토되고 안정적인 플랫폼 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 전문가는 “헬스케어와 블록체인 결합은 지속될 것이다. 이미 해외에선 활성화됐다”며 “국내 업계는 계속 여러 시도를 하면서 같이 고민하고 배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