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기업은행 실명계좌 지연…열띤 책임공방

"실명 전환률 낮아" vs "은행 특수성 때문"

금융입력 :2018/03/20 17:51    수정: 2018/03/20 17:55

암호화폐(가상화폐·가상통화) 거래소 '업비트'와 계약을 맺은 IBK기업은행이 신규 계좌를 발급하지 않으면서 가입자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신규 계좌를 발급해야 원화를 입금해 암호화폐를 거래할 수 있는 데 이 통로가 차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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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측은 20일 현재로서는 업비트에 신규 계좌를 발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천명한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당시 기업은행은 업비트의 기존 가입자들이 실명전환을 마치지 않은 상태라 신규 계좌 발급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실명 전환율 추이를 보고 있는 상태다"고 덧붙였다. 과거와 같이 암호화폐 거래량이 크지 않은데다, 투기 열풍이 잠잠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가격이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시점이라 예의주시 중이란 게 기업은행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서 업비트 가입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신규 가입자들은 원화 입금이 안돼 거래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기존 가입자들 역시 보유 중인 암호화폐로만 매매가 가능해 불편하긴 매한가지다. 일부 가입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기업은행이 업비트에 신규 계좌를 원활히 공급해달라는 청원도 올린 상태다.

업비트가 124개 코인, 223개 마켓을 제공하는 등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다. 따라서 이번 사안에 대해 암호화폐 업계 뿐 아니라 은행권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 기업은행 "실명전환 낮다"에 거래소들 "변명" 비판

기업은행의 설명에 대해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변명'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거래소인 코인원 역시 실명전환율이 높진 않지만 NH농협은행으로부터 계좌를 공급받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코인원이나 코인플러그 등의 실명전환율은 평균적으로 20%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들은 기업은행이 국책은행인만큼 정부 눈치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고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고 밝힌 투자자 A씨는 "기업은행의 대주주는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정부 정책과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일부에선 업비트와 기업은행 간 계약 문제 때문에 계좌 개설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들은 업비트가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기업은행 외에 다른 은행과 계약 성사를 위해서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선 업비트 관계자도 "기업은행과 빨리 협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며, 다른 은행과의 거래 계약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들, 실익 비해 위험부담 크다는 입장

계좌 개설해야만 한다는 암호화폐 거래소들과 달리 은행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시스템 안정성을 100% 신뢰할 수 없는 데다 신규 계좌를 발급한다 하더라도 얻는 수익이 적다고 항변한다.

또 금융감독당국은 물론이고 금융정보분석원의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등 은행이 신경써야 할 사항도 많아 득보다 실이 크다는 입장도 만만치 않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실명 계좌를 공급한 후 이에 따른 수수료 수익을 챙길 뿐인데, 거래소 해킹 사고가 터지면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은행에도 이미지 타격이 온다"며 "거래소 시스템 안정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들이 굳이 거래소에 실명 계좌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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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KB국민은행은 물론이고 KEB하나은행, 광주은행 등 은행들은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다.

거래소와 거래하는 계좌의 실명전환율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는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이미 일부 은행이 하고 있는데 은행에 짐을 지워서 거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또 금감원은 실명 전환율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뿐이며, 자금세탁방지는 당연히 지켜야 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