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대학에 재직하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지난 1971년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24명을 죄수와 교도관으로 나눈 뒤 감옥 생활 실험을 한 것이다. 심리학 교수였던 짐바르도는 감옥의 실제 상황을 알기 위해 이 실험을 설계했다.
하지만 실험은 엿새 만에 중단됐다. 연구 대상자들이 역할에 몰입하면서 사고가 생긴 때문이다. 교도관들은 가혹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죄수 역할을 하던 피험자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짐바드로 교수의 ‘감옥 실험’은 사람들의 감정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보여주는 사례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2001년 독일의 올리브 히르비겔 감독이 만든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짐바르도 교수의 감옥실험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 개인감정 정보 데이터가 트럼프 선거 운동에 활용
지난 주말부터 페이스북이 논란에 휘말렸다. 5천만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이용자 성향 정보가 트럼프 선거 캠프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폭로된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영국 옵저버 공동 보도로 이 사실이 공개된 직후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시작은 합법적이었다. 케임브리지대학 알렉산드르 코건 교수가 페이스북의 허락을 얻은 뒤 자신이 만든 ’디스이즈유어디지털라이프(thisisyourdigitallife)’ 란 앱을 다운받도록 했다.
이 앱을 설치할 경우 위치정보, 친구, 좋아요 누른 콘텐츠 같은 정보가 개발자에게 그대로 흘러가게 돼 있었다. 실험 대상은 27만 명이었다.
앱을 다운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학술연구에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코건 교수는 이렇게 수집한 정보를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란 데이터 분석 전문회사에 넘겼다. CA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관련이 있던 회사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선거 운동에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심리 정보가 그대로 선거 운동에 사용됐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논란이 일고 있다.
서두에서 감옥실험과 영화 ‘엑스페리먼트’ 얘기를 꺼낸 건 이번 사건 때문만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이미 뉴스피드에서 심리 실험을 하다가 거센 비판에 휘말린 적 있다.
■ 페북, 2012년엔 뉴스피드 심리실험으로 논란 휘말려
6년 전인 2012년 1월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람의 감정이 전염될 수 있는가’란 의문을 풀기 위한 실험에 착수했다. 페이스북 데이터 팀이 제프리 핸콕 코넬대 교수 등과 함께 한 연구였다.
당시 페이스북은 일주일 동안 무려 68만9천3명에 이르는 이용자 정보를 수집했다. 문제는 페이스북이 정보수집을 위해 실제 이용자의 뉴스피드 알고리즘을 조작해 긍정, 부정 메시지 노출 빈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했다는 점이었다.
실험결과 부정적인 메시지를 접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글을 올리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인 메시지도 마찬가지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감정이 전염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이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돼 많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에 70만 명에 가까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감정실험을 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페이스북 측은 또 “특정 계정과는 관계가 없으며, 연구와 관계없는 정보는 수집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당시 실험은 꽤 논란이 일었다. 세계인의 플랫폼인 페이스북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알고리즘을 조작하면서 실험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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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개인 심리 정보 유출 사건은 그 때보다 더 심각한 경종을 울려준다.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는 순간, 내 심리 정보가 고스란히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제3자에게 흘러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 년 전 충격적으로 봤던 영화 ‘엑스페리먼트’가 오늘따라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