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사람을 해치면 안되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또 스스로 보호할 권리가 있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2년 발표한 ‘로봇 3원칙’이다. ’로봇 3원칙’은 이후 많은 소설과 영화를 관통하는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악당 로봇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는 서사구도의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로봇 3원칙’을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로봇 3원칙’은 영화나 소설 속 얘기였다. 로봇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몰고 올 엄청난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지난 해 유럽연합(EU)은 ‘로봇 시민법’을 제정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로봇시민법’은 사실상 로봇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낸 법이다.
로봇이나 AI에 관한한 유럽의 입장은 단호하다. 인간의 동반자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 "AI 선제적 규제 필요" vs "자율차 봐라. 기술은 중립적"
최근 일론 머스코와 마크 저커버그가 ‘AI 논쟁’을 벌여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테슬라와 페이스북을 이끄는 두 경영자는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혁신 기업가들이다.
하지만 둘은 AI에 대한 상반된 논리를 전개하면서 팽팽하게 맞섰다.
먼저 논쟁 거리를 제공한 것은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최근전미주지사협의회 총회에 참석해 "AI는 인간 문명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협을 예방하기 위해선 선제 규제가 필요하다고 머스크는 목청을 높였다.
특히 머스크는 2060년이면 AI의 지능이 인간의 두뇌를 넘어설 것이란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2030년이나 2040년 쯤이면 ‘AI 역전’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부터 대비하지 않으면 큰 일난다는 얘기였다.
그러자 저커버그가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지난 23일(현지시간) 페이스북 라이브 채팅에서 “AI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섰다. 머스크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정면 반박이나 다름 없었다.
저커버그는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었다.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자동차 사고 때문이란 것. AI로 자동차 사망 사고를 줄일 수만 있다면 인간의 삶에 엄청난 진보를 가져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AI비관론자’인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대표적인 자율주행차 업체다. 머리 좋은 저커버그는 그 점을 살짝 빗대서 ‘AI 비관론’을 꼬집은 셈이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두 혁신 경영자의 AI 논쟁은 단순히 둘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흥미거리로 넘길 사안은 아닌 것 같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앞둔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건 요즘 한창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표하는 논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머스크와 저커버그는 왜 AI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일까? 특히 AI가 기반이 된 자율주행차 사업을 이끌고 있는 머스크는 왜 AI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경고하는 걸까?
머스크와 저커버그 논쟁의 바탕엔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저커버그가 보기에 기술은 중립적이다. 중요한 건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다. 반면 머스크는 AI가 ‘위험하기’ 때문에 선제적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페이스북과 테슬라의 서비스 차이도 중요한 이유
이런 관점 차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크게 두 가지 논점을 제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다.)
첫째. 페이스북과 테슬라란 두 기업의 차이를 꼽을 수 있다.
두 회사 모두 AI를 적극 활용한다. 테슬라 자율주행의 기반은 AI다. 페이스북은 최근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 챗봇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테슬라에 적용된 AI는 기능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을 대신해 운전하는 정도다. 반면 페이스북의 AI는 감정 영역까지 건드린다. 보조 기능에 머무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에 대한 선제적 규제를 할 경우 어떻게 될까?
테슬라 입장에선 (자율차 전면금지가 아닌 한) 오히려 적당한 규제가 만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그럴 경우 서비스 자체가 위축될 우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런 비교는 두 회사 서비스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선 이런 차이가 AI 활용이란 기본 관점에선 크게 다른 부분일 수도 있다.
둘째. 두 경영자의 성향 차이다.
최근 직업 커리어 자문기업 페이사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IBM 인공지능 왓슨을 이용해 11개 주요 IT기업 CEO의 성향을 비교 분석한 결과였다.
CEO들의 연설문, 에세이, 저서, 인터뷰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해서 개인 성격을 비교한 결과 일론 머스크는 '가장 신중한(most cautious) CEO로 꼽혔다. 반면 저커버그는'가장 덜 신중한(least cautious) CEO’란 결과가 나왔다.
이런 성향 차이는 AI를 바라보는 관점에 그대로 반영됐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 AI 논쟁이 던진 숙제…우리는 어떻게?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이게 단순히 두 사람 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AI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 때면 저런 상황 차이에 따라 팽팽한 의견이 맞설 가능성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EU가 '로봇 시민법' 같은 엄격한 잣대를 만드는 것도 철학적 고민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AI를 주도하는 것이 미국 기업들이란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다음달 공식 출범할 4차산업혁명위원회 역시 저 고민을 정책으로 녹여내야 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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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질문이다. 개인적으론 저 두 CEO의 중간 지점 어디쯤이 적당해 보이긴 한다. 물론 그게 어떤 것이냐는 돌직구 질문엔 딱 부러진 대답을 내놓긴 쉽지 않지만.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의 ‘AI 논쟁’은 그런 점에서 태평양 건너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