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이 국내에서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 스팀(Steem)으로 운영되는 블로그와 유사한 플랫폼이다. (☞ 스팀잇 바로 가기)
스팀잇은 요즘 핫한 ‘블록체인’ 기술을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도 자주 소개되고 있다.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네이버 블로그로 천하통일되면서 더 이상 인터넷에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마땅하지 않은 상태에서 등장해 글을 써서 수익을 얻고자 하는 사용자가 대거 몰려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스팀잇 홍보까지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 많이 와서 나의 글을 추천해야 코인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코인의 가치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스팀잇 홍보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스팀잇이 점차 인기를 얻어야만 돈을 벌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받은 코인이 종이쪽지보다 못한 비트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러다보니 마치 피라미드 사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이 얻은 수익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수익이 온라인에서 글을 써서 얻을 수 있는 구글 애드센스, 전자책 같은 다른 플랫폼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경우가 적지 않아 사람과 콘텐츠를 빨아 들이고 있다.
■ '개똥녀 사건'의 슬픈 기억
하지만, 스팀잇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블록체인으로 운영되기에 언론의 관심도 받고 별 부담 없이 만들 수 있는 암호화폐룰 돈으로 주면 남들이 콘텐츠도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무료로 홍보까지 해 주니 매우 영리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스팀잇의 근간이 된 블록체인 때문에 치명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본인이 쓴 글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스팀잇은 이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며 FAQ를 통해 블록체인의 특성상 모든 글과 댓글의 수정 기록을 가지고 있기에 절대로 지울 수 없다고만 이야기한다.
스팀잇은 낙장불입 시스템이다. 물론 글 올린 뒤 처음 7일간 수정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도 기록이 남기 때문에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7일이 지나면 수정도 불가능하며 영원히 인터넷에서 지우거나 바꿀 수 없는 상태로 남게 된다.
2005년 6월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은 여성에 대한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 왔다. 소위 말하는 개똥녀 사건이었다. 그녀의 작은 악행은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큰 결과를 가져 왔다.
이 사건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문 블로그 ‘Don Park’s Daily Habit’ (blog.docuverse.com)’에 관련 글이 게재된 후, 세계 최고의 인기 블로그 중 하나인 보잉보잉 (boingboing.net)과 워싱턴포스트지를 통해전세계에 알려졌다.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은 작은 악행이었지만 그녀는 세계적인 악녀로 전락했다. 인터넷을 통해 개인의 잘못이 공개 되었을 경우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전 세계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 과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는 매일 같이 개똥녀가 탄생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작은 인터넷 기업에서 웹디자이너로 근무하는 해더 암스트롱(Heather Armstrong)은 그녀의 블로그 (Dooce.com)에 상사에 대한 험담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올렸다. 누군가 이 사실을 회사에 알렸고 회사는 그녀를 해고했다. 그녀는 해고를 담담하게 받아 들으며 자기처럼 회사에 대한 험담을 블로그에 올리지 말라는 경고성 글을 올렸다. 이 사건 역시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Dooced 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인터넷에 올린 글 때문에 해고를 당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 지워지지 않는 글이 초래할 수 있는 비극
미국 등 해외에서는 이미 청소년기에 인터넷에 올린 성경험, 마약 복용, 절도 등에 대한 글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으며 사회 문제화 되었다. 인사 담당자들이 검색을 통해 입사 지원자의 어린 시절을 검색해 불합격처리 하고 있으며, 새로 만난 이성의 과거 연애사를 검색을 해 보고 이별을 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 세계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잊혀질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 시작은 유럽연합이었다. 2012년에 데이터보호규칙을 제안하며 17조에 잊혀 질 수 있는 권리를 명시했다.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잘레스가 “구글에 본인의 이름을 검색하면 빚 때문에 집을 내놓은 일을 보도한 신문 기사가 나온다”며 구글에 관련 기사의 링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국내도 2016년에 방통위가 ‘잊혀질 권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사실이 아닌 문제는 당연히 삭제 되어야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고해도 남들에게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글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생활 문제 외에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퍼 와서 고소를 당해도 지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남이 나에 대한 잘못된 악의적인 글을 올려도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은 당하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크나 큰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기업의 영업비밀이 노출되어 영원히 떠 돌아 다닌다는 것은 기업의 생존을 위협 할 수도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 쓴 고전 소설이지만, 그 설정이 인터넷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모습과 너무 비슷해 다시금 조명 받는 작품들이 있다. 대부분, ‘뉴로맨서’ 같은 공상 과학 소설이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 중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은 작품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픽션들' 이라는 단편 문학집에 수록되어 있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인용 되는 문구가 푸네스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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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번 쳐다보고서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유리컵을 기억한다. 그러나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모든 잎사귀들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기억한다. 그는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들 속에서 그 구름들과, 단 한 차례 본 스페인식 장정의 어떤 책에 있던 줄무늬들, 그리고 께브라초 무장 항쟁이 일어나기 전날 밤 네그로 강 가에서 노가 일으킨 물결들의 모양을 비교할 수 있었다.
축복인 줄 알았던 그의 능력은 축복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기억하다가 결국 미쳐 버린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