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대기업 임원,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대표를 역임하며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던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가 지난해 ‘코끼리’ 같은 거대 조직에서 나와 ‘벼룩’(개인)의 삶을 선택했다.
모든 조명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쏟아졌던 화려한 삶을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박수칠 때 시가총액 27조원에 달하는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를 홀연히 떠났다.
그는 영국 왕립예술학회 회장이었던 찰스 핸디가 쓴 도서 ‘코끼리와 벼룩’에서 말한 ‘포트폴리오 인생’의 개념을 몸소 실천하며, 오래 전부터 계획해 온 인생 2막을 써 나가고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본주의 시대, 누구나 언젠가는 벼룩과 같은 독립생활자가 될 수밖에 없기에 미래를 대비해 단단히 살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가 인상 깊게 본 저자의 철학이다.
■ 와룡로에 공동체 공간 꾸려 ‘조화로운 삶’ 실천
현재 김상헌 전 대표는 네이버 고문직 외에도 러시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일루(mail.ru)의 사외이사, 배달의민족을 서비스 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또 스타트업 보육 및 투자사인 프라이머의 개인투자자이자 심사역 등으로 활동 중이다.
김 전 대표가 결단한 가장 큰 변화는 창덕궁이 바로 보이는 서울 안국역 근처 와룡동 5층짜리 빌딩을 매입, 리모델링해 올해 1월 문화공간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 건물의 ▲1층은 한국을 소개하는 영어 원서가 전시돼 있는 카페로 ▲2층과 3층은 독서 커뮤니티인 ‘트레바리’ 임대 공간으로 ▲4층은 김상헌 전 대표와 배우자가 함께 쓰는 공용 사무실로 ▲5층은 창덕궁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자택으로 꾸몄다. 지하는 음악 감상 시설과 와인 저장고를 둔 모임 공간으로 만들었다.
변호사와 개인투자자로서 활동하는 배우자와 업무공간을 함께 쓰는 김상헌 전 대표는 네이버 퇴직 전부터 가족과의 삶과 여행 등 가족애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의 지속’에서 부부가 공동으로 사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도심에 제2의 인생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김 전 대표는 이곳을 도심 속 전원주택이자, 책을 좋아하는 스타트업과 여행객들이 아지트로 사용할 수 있는 공동체 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사람들이 저에게 전국민이 쓰는 네이버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만렙(최고레벨)을 찍은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다음에 갈 회사를 선택함에 있어 제한적이더라고요. 동일한 역할을 작은 곳에서 한다는 건 후퇴 아닌가 싶어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동력은 스타트업에 있다는 생각에 가급적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또 50대 중반을 찍은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 하나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뭘까를 고민했죠.”
결국 그의 고민은 대기업 주주들이 회사를 놓지 않고 끝까지 경영에 참여하는 통념을 벗어 던지고, 스타트업 지원에 뛰어드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집과 일터, 커뮤니티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공간을 마련, ‘일-가족-교류’를 한 공간에서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이 공간은 평소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 채웠다. 구하기 힘든 고서부터 최근 베스트셀러는 물론, 만화책까지 꺼내들고 읽어 보고픈 책들이 가득하다.
■ 시총 27조 회사 대표, 삶의 현장 속으로
김상헌 전 대표가 네이버 대표로 취임한 2009년 4월 말 기준 네이버의 시가 총액은 7조4천838억원이었다. 현재 네이버의 시가 총액은 약 27조원으로 취임 당시보다 4배 가까이 큰 회사가 됐다.
네이버 성공 역사에 큰 기여를 한 김 전 대표는 지난 1년여의 시간 ‘실재 삶의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삶을 살았다. 사업자 등록을 위해 직접 세무서도 가보고, 카페 보건증을 받기 위해 보건소에 찾아가 신체검사까지 받았다.
지금도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있겠지만, 성공한 기업가이자 투자가인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가 그랬듯 본인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일들을 했다. 그래야 앞으로 스타트업들에게 살아있는 조언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제 인생의 커리어 시작은 판사였고, 그 다음이 엘지의 전무급 임원, 네이버 사장급으로 살았어요. 많은 혜택을 받았죠. 그러다 보니 직접 몸으로 부딪친 경험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업 신고하러 구청에 있는 보건소를 갔더니 전염병 검사 등 정말 모르고 살았던 것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민망하고 곤란도 했지만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가 있다는 것에 놀라는 계기가 됐죠.”
1년간 생존 능력을 키우면서 과거의 화려함은 잊고 더욱 겸손하자는 생각을 키웠다는 김상헌 전 대표가 스타트업을 준비하거나 힘들게 창업에 도전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한참 뜸을 들인 뒤 입을 열었다. “힘내라”, “도전하라”는 말이 자칫 팍팍한 삶에 지친 청춘들에게 사치스러운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판사를 버리고 엘지 임원으로 왜 들어갔을까 생각해보면 스스로 대견하다 싶어요. 변호사를 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텐데, 그 때는 돈을 잘 모르기도 했고 좋아하는 일만 했던 거 같아요. 스타트업 친구들을 보면 너무 뭔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큰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보다 성공과 돈에 관심이 큰 것 같고요. 돈이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죠.”
■ “나는야 호기심 많은 관찰자...택시운전사도 꿈꿔”
김상헌 전 대표는 자신을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호기심 많은 관찰자’로 규정했다. 지난날 관찰자로서 객관성을 잘 유지해 왔지만, 한편으로는 회사와 자신을 일심동체 시키지 않아 동료들에게 아쉬움을 준 것 같다고도 말했다.
덕분에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험해봤고, 지금도 새로운 일에 의욕적인 도전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됐다고.
“오래 전부터 택시 운전사도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 사회 이면을 보고 싶었거든요. 판사 때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죠. 한 달에 몇 십 건씩 남의 인생(사건)을 보면서 일로 생각한 게 아니라, 개개인의 실제 인생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어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누구와 만나도 1시간 넘게 말할 수 있는 얇고 넓게 아는 호기심 많은 관찰자라고 봐요.”
인생 2막을 도심형 공동체를 꾸리고, 후배 양성을 위한 스타트업 지원에 힘쓰고 싶다는 김상헌 전 대표는 전문 경영인 출신으로서 블록체인과 같은 최근 ‘핫’한 사업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네이버에 합류했을 때의 경험을 공유했다.
“네이버로 옮길 때는 인터넷 기업을 안 가보고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요. 지금은 도심형 공동체를 꾸리는 일과, 후배들이나 스타트업을 돕는 게 제 소명같이 느껴져요. 너무 구름 위에 살았던 게 아닌가 싶고, 진짜 사람들과 어울려 후배 돕는 걸 놓치면 죽을 때 미안함, 또 아쉬움이 클 것 같아요. 이 밖에 글로벌 벤처캐피탈과 함께 일 해보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습니다.”
■ “네이버, 한성숙 대표 잘 하리라 믿어”
끝으로 민감한 사안이지만 최근 국회와 정부로부터 강하게 규제 압박을 받고 있 네이버에 대해, 또 김 전 대표를 이어 네이버를 이끌고 있는 한성숙 대표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고독하지만 역사적 사명감을 갖고 한성숙 대표가 잘 해내리라 믿는다”고 응원했다.
“퇴임하면서 회사는 분명히 결정권자가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은 고독하고 책임을 지는 일인데 한 대표가 해야 한다고 말했었죠.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지금의 네이버 이슈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는 마음으로 역사적 사명감을 가졌다고 생각해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힘들지만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생각해요. 잘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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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가까이 인터뷰 하면서 본 김상헌 전 대표는 ‘성공한 판사’,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 임원’, ‘국내 최대 포털 대표’라는 타이틀을 완전히 내려놓고, 동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중년의 모습이었다. 어렵게 구한 고서적을 펼쳐 보이며 청년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기도 했다. 가끔은 1층 카페서 커피를 내리고, 직접 서빙도 한다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보내고, 인생 후반부를 전직에 구애 받지 않고 후배와 가족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그의 새로운 열정이 누워있는 용을 뜻하는 와룡로 한 건물에서 꿈틀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