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를 둘러싼 '놈' '놈' '놈'

[김경묵 칼럼] 황당한 놈-무서운 놈-답답한 놈

데스크 칼럼입력 :2018/02/19 13:34    수정: 2018/11/16 11:33

설연휴를 기점으로 암호화폐 가격이 진정세다. 널뛰던 시세가 1만 달러 내외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당국의 바람대로 ‘쿨다운’ 분위기다.

이젠 차분하게 할 말은 해도 될 것 같다.

암호화폐가 걸어온 시간을 보고 있자니 세 종류의 ‘놈놈놈’이 보인다. ‘황당한 놈, 무서운 놈, 답답한 놈’ 이다.

먼저, 황당한 놈은 ‘정부가 관리하는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정부의 중앙집권적 화폐관리 방식의 대안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이 기본정신과 달리 세계 최초로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암호화폐가 나온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일부터 페트로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를 판매한다고 발표했다. 1 페트로 판매단가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1배럴가격과 연동돼, 60달러로 정해졌다. 심각한 경기불황 타개를 위한 고육책으로 폄하하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정부 차원의 세계 첫발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국의 경우 이미 2015년부터 왕실 직할령인 맨섬 인근에 암호화폐 특별지구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다른 곳도 아닌 왕실 소유 영지에서 암호화폐로 돈을 벌어들인다는 점은 분명 이례적이다.

비트코인

널리 알려진 대로 스위스는 크립토벨리에서 ICO특구를 운영한다. 인구 3만명인 주크라는 작은 도시에 거의 매주 조 단위 돈과 개발자들이 몰린다. 특히 스위스는 ICO 회사 설립시 자국 인력을 50%이상 고용하는 정책을 펴서 국부 창출과 함께 고용문제까지 해결한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우리나라가 단호하게 금지시킨 일들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이 나라들은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점을 몰라서, 아니면 이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허용했을까.

두 가지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정책결정권자의 지향점 차이다. 당장의 거품이나 혼란보다는 국부 창출 채널로 이해한 관점의 차이가 가져온 결과이다.

■ 한발 앞서 뛰는 무서운 '놈'…소모적 논쟁에 빠진 답답한 '놈'

‘무서운 놈’은 따로 있다. 암호화폐 시장 선점을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미 2017년말 기준으로 스타트업 벤처들의 펀딩에서 차지하는 ICO비중이 벤처캐피털의 4배를 넘어섰다.”

“이스라엘이 국가차원에서 세계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상대로 쥬디시 코인을 발행해 글로벌 코인시장 장악을 진행 중이다.”

“중국이 33조원을 들여 항저우 인근에 블록체인 시티 특구를 만들어 홍콩과 연계해 글로벌에 넘쳐나는 블록체인 관련자금을 빨아들일 계획을 추진 중이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 리포트중 가장 인상 깊은 대목들만 추려봤다.

우리가 비트코인이 화폐나 아니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분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을 때 세상엔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ICO가 벤처캐피털의 투자규모를 단숨에 앞질렀고 각국은 블록체인 시대의 패권 장악을 위해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가 투기다, 사기다 시장폐쇄다 하며 가장 단선적인 사고로, 또 가장 쉬운 해결 방법만을 찾으며 열심히 역주행할 때 경쟁국들은 빅피처를 그리고 있었다는 점은 많이 아프다. 그리고 무섭다.

그럼 ‘답답한 놈’은? 안타깝게도 바로 우리의 현재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작년 말에서 올 초까지 암호화폐 시장의 큰 손은 우리나라였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2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가격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아마 제조업 외에 처음인 듯 싶다.

문제는 모처럼 잡은 국부 창출의 기회를 발로 차고 있다는 점이다 .

얼마든지 지혜로운 해법이 있는데도 말이다. 합리적인 규제를 해가면서 진흥할 것은 하면 된다. 규제권을 가진 정부가 현명하면 투트랙의 절묘한 해법은 늘 가능하다. 고수들의 바둑에서 보듯 풀어가는 수순만 고민하면 된다.

그런데 첫 발언은 ‘거래소 폐쇄’ 운운이었다. 중국도 금지시켰는데 우리가 못할 것 있냐는 발언도 나왔다. 앞서 지적했듯 중국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간벌기 수순이었다면 우리는 기승전 폐쇄다. 거기엔 전략도 미래도 없다. 나타난 현상만 같으면 모두 같다고 믿는 것 같다. 이게 현재 우리의 규제 수준이다.

■ 4차혁명위, 블록체인 성지 만들 로드맵 고민해야

답답한 얘기 하나만 더하자.

비트코인의 널뛰기가 본격화한 그 시점에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름만큼의 혁명적인 대답을 기대한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설립 취지대로 국가 미래 먹거리에 대한 물길을 잡아주는 코멘트 정도는 해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그 소박한 기대마저 무너졌다.

긴 침묵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도대체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가. 내놓으라 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범정부성 조직으로 모인 이유가 뭔가. 4차 산업혁명의 본류인 다보스 포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과 기술로 블록체인과 AI를 꼽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침묵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결국 정부 측의 첫 코멘트는 법무부 입에서 나왔다. 이 대목은 현 정부에서미래의 먹거리 내지, 산업을 고민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중요한건 지금부터다. 모처럼 찾아온 국부창출의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우리나라를 ‘블록체인 성지’로 만드는 로드맵을 고민 했으면 한다.

사실 인터넷강국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정부가 주도해서 망을 깔고 벤처를 육성했다. 크고 작은 잡음들은 있었지만 그 덕에 그나마 이만큼 왔다.

지금은 그때처럼 로드맵을 갖고 밑그림을 그리겠다는 테크노크라트가 아예 안 보인다는 게 문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 암호화폐 가격이 널뛰는 것보다 그게 훨씬 큰 걱정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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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인터넷에 올라탄 블록체인 플랫폼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지금의 선택이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쥐고 끌고 갈 것이냐 아니면 경쟁국에 의해 끌려갈 것이냐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산업에 대한 이해도 없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없는 이들이 그 알량한 기득권의 침해여부로 모든 것을 재단할까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