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받는 것보다 규제가 더 어려워”

아산나눔재단 이혁희 팀장 “기업가 정신 교육도 중요"

중기/벤처입력 :2018/02/05 17:02

지난해 아산나눔재단과 구글캠퍼스 서울이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가 업계에 크게 회자 됐다.

최근 1년 누적 투자액 상위 100개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을 한국 시장에 적용하면 이 중 70곳의 사업모델이 국내 규제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내용이 적잖은 충격을 안겼기 때문이다.[☞관련기사: “투자유치 상위 스타트업 70%, 한국서 위법”]

국내에 규제와 역차별이 많다는 업계 지적은 많았지만,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가 발표되자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국회와 정부도 해당 보고서를 계기로 규제 개선 필요성에 더욱 공감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국내 스타트업들의 발목을 붙잡는 규제 개선과 지원에 힘쓰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은 2011년 고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자 서거 1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공익재단이다.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가가 나와야 한다는 목적 아래, 기업가 정신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아산나눔재단이 맥킨지코리아에 의뢰해 발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초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가 선정한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업체는 단 한 곳에 그쳤다.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사업이 있는데, 그 중 보육 기관인 ‘마루180’ 운영이 대표적이다. 또 올해로 7회째를 맞는 정주영 창업경진대회를 열어 열정과 아이디어 넘치는 스타트업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마이리얼트립, 바풀 등이 여기를 거쳐 성장했다.

예비 기업을 발굴해서 육성하고, 엔젤투자기금 펀드를 통해 민간 자금 역할을 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를 키우면서, 정책 제안 활동도 적극적이다. 청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 사업도 하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는 아산나눔재단의 이혁희 스타트업팀장을 만나 국내 스타트업 환경에 대한 고민과, 지원 프로그램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 “투자 받는 것보다 규제가 더 어려워”

이혁희 스타트업팀장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들의 진짜 고민은 ‘투자 유치의 어려움’ 보다는 ‘사업을 불안하게 하는 규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규제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규제의 모호성 때문에 사업 도중 뒤통수 맞는 경우가 더 큰 골칫거리다. 이런 고퉁을 풀어주기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이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발간이다.

아산나눔재단 이혁희 스타트업팀장.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3개월 정도 연구를 했고, 그 결과는 지난해 7월 발표했어요. 반응도 좋았고, 정부가 정책을 만들 때 꽤 참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계속 필요하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해당 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2014년 4월 문을 연 창업지원 센터 마루180은 스타트업, 투자사, 액셀러레이터, 예비창업자 등이 한 데 모여 있는 공간이다. 현재 8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으며, 1층 코워킹 카페에는 예비창업자 20곳이 둥지를 틀고 있다. 또 역삼 마루180 센터에는 투자사인 스파크랩도 입주해 있다. 자연스럽게 창업가와 투자자가 한 공간에서 만남을 갖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 마루180에서는 한해 600여개의 행사가 열린다.

마루180은 공간 입주 혜택뿐 아니라, 출장이나 이벤트 지원을 통해 금전적 혜택도 제공한다. 또 여러 협력 업체와의 제휴로 입주사들에게 도움을 준다. 입주사 모집은 상반기, 하반기 1년에 2번 실시하며 한 스타트업당 8명 정원인 하나의 셀을 제공한다.

역삼동 마루180.

입주 기간은 기본 6개월이며 최대 1년 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기업 역량과, 기존 팀들과 잘 융합할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 마루180 입주가 적합한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를 받고 시리즈A 투자를 받기 전 단계에 놓인 곳이다.

■ “창업문화, 인식 키우는 기업가 정신 교육 중요해”

산업 영역을 불문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아산나눔재단 역시 4차산업혁명 시대로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새 시대에 맞는 기술과 서비스, 변화에 맞는 기업가 정신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아산나눔재단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크다.

“재단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 창업 생태계는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창업문화나 인식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재단이 기업가 정신 교육을 많이 하는 이유입니다. 4차산업혁명은 초연결, 초융합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런 게 활발히 이뤄지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희가 기업가 정신 교육과 함께 정책적인 뒷받침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혁희 팀장이 말하는 아산나눔재단의 기업가 정신은 모험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정신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고등학생, 대학생들에게 바로 창업하라는 메시지를 던지지는 않는다. 창업이 그 만큼 어렵고 외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창업해야 된다고 하는 건 낭떠러지로 모는 걸 수도 있어요. 다만 어렸을 때 창업이란 것, 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함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는 경험은 중요하다고 봐요. 이런 경험이 언젠가 기업을 만들거나 조직 내에서 문제 해결을 할 때 큰 힘이 될 거기 때문이죠. 학교 내에서 하기 힘든 이런 교육들을 아산나눔재단이 하고 있습니다.”

■ “AI 분야 주목...단, 트렌드 편승은 피해야”

마루180이 앞으로 주목하고 발전할 것으로 보는 분야는 인공지능 분야다. 다만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와 같은 분야가 시기적으로 핫 하다고 해서 여기에 편승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팀장의 조언이다.

“몇 년 전엔 O2O 기업이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AI, 딥러닝 분야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진단 기술 스타트업 루닛의 경우 세계 100대 AI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죠. 그렇다고 투자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AI, 딥러닝, 암호화폐 같은 키워드를 붙이면 안 돼요. 팀 자체 역량과 기업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를 보지, 시기적으로 편승한 사업 모델은 심사위원들이 보면 티가 바로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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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혁희 팀장은 국내 스타트업 시장이 빠른 실행과 검증, 이를 통한 변화에 적극적인 환경으로 바뀌길 바랐다.

“스타트업은 가장 빠르게 실행하고, 시장에서 빠르게 검증을 받고 또 변화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스타트업 본연의 장점이 발휘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됐으면 좋겠어요. 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검증 받고, 실패하거나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하는데 고객 앞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마저 법, 제도에 가로막히는 실정입니다. 안타깝죠. 이번 정권에서 잘 풀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