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개업 공인중개사 10만1천여 명 중, 약 9만5천 명의 회원을 거느린 공인중개사협회가 부동산 중개 플랫폼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2월부터는 자체 개발ㆍ운영 중인 ‘한방’이라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만 매물 정보를 올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네이버, 직방, 다방과 같은 곳에 부동산 매물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시장에는 전국 공인중개사들의 셧다운 동참 여부와, 중개 플랫폼과의 전쟁에 승자가 누가될지 관심이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 “늘어나는 광고비, 공룡 횡포 더 이상 못 참아”
협회는 공인중개사들이 더이상 부동산 중개 플랫폼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취지로 지난 12일 전국 단위 지부장 회의에서 부동산 플랫폼 매물 제공 셧다운 결의를 다졌습니다. 광고비 부담은 날로 커지고, 때에 따라 변하는 플랫폼들의 정책에 큰 문제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부동산 공인중개 업계에서 보면 포화된 공인중개사 인력과, 포털이나 앱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부동산 중개 시장이 포털이나 모바일 앱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중개 수수료를 낮춘 서비스들이 여럿 등장했고, 중개사가 필요 없는 직거래 플랫폼들도 인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또 선진화된 기술을 이용해 변화된 사용자들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투자금을 앞세워 대규모 마케팅까지 벌이고 있어 전통 공인중개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종합하면 공인중개사들은 해마다 쏟아지고, 중개 수수료는 낮아지고, 이용자들은 대형 플랫폼에 쏠리면서 10만 명에 달하는 공인중개사들은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부동산 중개 플랫폼 매물 제공 셧다운입니다. 더 이상 중개 플랫폼에 광고 하지 않고 자생 가능한 자체 플랫폼에 매물 정보를 몰아, 한곳에 고객들을 집중시키겠다는 전략입니다.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아 온다는 구상입니다.
■ “벼랑 끝 전술, 방법도 순서도 틀렸다”
그러나 업계는 그들의 절박함은 십분 이해하면서도 ‘벼랑 끝 생존 전술’이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 이유는 변화의 필요성과 동력이 ‘고객’이 아닌 ‘공인중개사’에 맞춰져 있고, 일의 순서 또한 거꾸로 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 인기 중개 플랫폼을 잘 활용하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에게 셧다운 참여를 설득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시각입니다. 당장 뚝 끊기는 손님과 줄어든 매출을 협회가 보전해주지 않는 이상, 이들이 모두 동참하기 힘든 구조라는 생각입니다.
모든 부동산 정보가 한방 서비스로 집중될 경우 사용자들은 본인이 편리하고 익숙하게 사용하던 부동산 서비스를 버리고 새 서비스로 이동해야 합니다. 공인중개사협회가 제공하는 한방 앱을 다운로드 하거나, 해당 웹사이트를 방문해야 합니다.
물론 한방 서비스가 훌륭하다면 이 정도의 불편은 사용자들이 기꺼이 감수합니다.
그러나 한방이 다른 서비스보다 나은 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앱 메인화면의 경우 모바일에 최적화된 사용자 환경으로 디자인 됐지만, 실속 면에서는 경쟁 앱에 비해 뒤진다는 평이 많습니다. 매물의 정확도를 떠나 사용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현장 이미지, 단지 정보 등 현장에 가지 않아도 취득할 수 있는 정보 양이 타 서비스 대비 상대적으로 적어 보입니다. 그래서 매물 양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인데, 시장에서 통할지도 미지수입니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한방의 별점은 5점 만점에 1.9점입니다. 반면 다방은 2.6점, 직방은 2.9점입니다. 네이버 부동산은 2.5점, 호갱노노는 4.5점입니다. 부동산 중개 앱이 전체적으로 평점이 낮은 편이지만, 이중에서도 한방은 가장 순위가 낮습니다.(안드로이드 순위는 상이)
월간 활동자 수 기준 부동산 앱 순위에서도 지난해 2월 출시된 한방은 앞서 언급한 서비스보다 한참 뒤쳐집니다. 지난해 17억원을 들려 TV광고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타트업이 출시한 호갱노노보다도 못한 순위와 평점을 기록 중입니다.
■ “해법은 헤쳐모여 아닌, 결국 서비스 경쟁력”
결론적으로 기존 공인중개사들이 중개 플랫폼에 휘둘리지 않고 자생하는 방법은 ‘한방으로 헤쳐 모여’가 아닌, 한방의 경쟁력부터 끌어올리는 일이 우선순위가 돼야 합니다. 높은 완성도와 편의성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을 때, 힘을 모으고 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귀한 예산을 투입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막대한 마케팅비를 들여 한방의 인지도를 높이고 다운로드 수를 높여봤자 반짝 인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협회는 이달 27일부터 한방의 인지도 제고를 위해 TV 광고를 재개한다는 계획입니다.
부동산 공인중개 업계가 참고할 만한 비슷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고 백기자의 이지톡을 마칠까 합니다.
2016년 6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네이버는 구글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 등 해외 앱마켓으로부터 국내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고자 ‘원스토어’라는 통합 앱장터를 오픈했습니다.
국내 굴지의 통신 3사와 대형 포털이 모여 ‘구글 대항마’가 되겠다며, 3년 안에 20%(4개사 통합기준) 수준이던 국내 앱 시장 점유율을 40%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까지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1년 반이 지난 지금 원스토어는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점유율도 제자리걸음입니다. 뭉치기만 하면 살 줄 알았지만, 어쩐 일인지 구글플레이 점유율은 50%대에서 60%대로 뛰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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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하나의 서비스에 이해관계가 얽힌 사공만 많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시장의 강자를 이길만한 강력한 ‘한방’이 부족했던 것이 실패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공인중개사협회가 만든 부동산 중개 서비스 한방도 경쟁사들을 물리칠 ‘한방’이 없으면 뭉치는 것만으로 성공이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