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월 11일. ‘일렉트로닉 뉴스’란 주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한 편 실렸다. ‘실리콘밸리 USA’란 제목의 그 기사는 당시 샌타클래라밸리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을 다루고 있었다.
반도체 산업을 조명했다는 점만 빼면 기사 자체는 특별할 것 없었다. 하지만 용어 하나 때문에 그 기사는 두고 두고 회자된다. 대중 잡지에 ‘실리콘밸리’란 말이 처음 등장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유래했던 샌타클래라밸리는 이후 우리에게 익숙한 실리콘밸리로 불리게 된다.
팰로알토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걸쳐 있는 실리콘밸리는 지금은 첨단 산업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땅이 비옥하고 1년 내내 태양이 내리쬐어 체리, 살구 등 과일이 풍성한 과수원이 즐비했던 한적한 농촌 지역이었다.
그래서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떠나는 동네였다. 그런 한적한 지역이 어떻게 기술과 혁신의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황장석의 ‘실리콘밸리 스토리’는 이런 의문을 속 시원하게 풀어준다. 무엇보다 저자는 겉으로 드러난 실리콘밸리 속에 숨겨져 있는 문화와 배경을 파고든다.
우리는 차고 창업과 학교를 뛰어나온 천재들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성공 같은 낭만적인 요소에 눈을 돌리곤 한다. 그래서 혁신을 가능케 했던 실리콘밸리 특유의 문화와 각종 지원 정책엔 제대로 눈길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부분을 세밀하게 톺아준다.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만든 사람들과 문화, 제도, 경험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꼼꼼하게 짚어가면서 실리콘밸리를 파헤쳐준다.
그래서 이 책은 스타 창업자 못지 않게 실패한 기업가였던 쇼클리 같은 사람을 중요하게 다룬다. 비록 그는 실패했지만, 이후 인텔을 비롯한 여러 실리콘밸리 기업을 배출하는 토양을 만드는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술술 잘 읽힌다는 점이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현장을 바로 눈앞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생생하게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풀어내준다. 여기에다 풍부한 자료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 풍성한 얘깃거리 역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실리콘밸리는 모든 첨단 산업 종사자들의 꿈의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멀리서 보는 것과 실제 모습 사이엔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좁혀주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절박함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던지게 만드는 도전 문화는 실리콘밸리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이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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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실리콘밸리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그런 스토리를 가능하게 만든 문화적 기반일 것이다.
(황장석 지음/ 어크로스,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