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러 사태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음란물을 삭제해달라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요청에 “우린 미국 회사다”면서 거부 의사를 밝힌 때문이다.
10년 전인 2007년 2월 첫 발을 내디딘 텀블러는 블로그보다 좀 더 간단한 글이나 사진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소셜 네트워킹 기능에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도 올릴 수 있어 나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사이트가 논란의 초점으로 떠오른 건 최명길 의원(국민의당)이 25일 국정조사 현장에서 공개한 자료 때문이다. 음란물이 많이 유통되고 있으니 삭제해달라는 방심위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실제로 텀블러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다른 서비스에 비해 ‘성매매, 음란’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방심위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성매매-음란'에 대해 시정요구를 내린 3만200건 중 2만2천468건이 텀블러 건이었다. 전체의 74%가량이 텀블러의 ‘성매매? 음란’ 정보인 셈이다. 반면 트위터는 1천771건, 페이스북은 5건, 인스타그램은 12건에 불과했다.
■ "우린 미국 회사"라는 텀블러…대응방안 막막
텀블러의 거부 명분은 간단했다. 미국법의 적용을 받는 미국회사라는 간단한 논리였다.
문제는 이렇게 대놓고 협조를 거부하더라도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단 점이다. 국내 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리벤지 포르노와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 입장에선 잠재적인 유통 창구를 그냥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방심위도 그냥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음란물 유통 계정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는 취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없는 상태다. 인터넷 주소만 살짝 바꾸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방심위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잘 아는 것처럼 텀블러는 2007년 설립된 뒤 한동안 독자적으로 생존하다가 2013년 야후에 인수됐다. 따라서 현재 운영 주체는 야후다.
문제는 야후가 국내 시장에 접점이 없다는 점이다. 한 때 국내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야후는 2013년 야후 코리아 사이트를 폐쇄한 뒤 2014년엔 완전히 철수했다.
결국 현행법상으론 야후가 ‘자율심의협력시스템’에 협력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자율심의협력시스템은 도박, 불법마약, 아동 포르노 등 명백한 불법 정보에 대해 자율규제를 요청하는 제도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다른 회사들은 현재 자율심의협력시스템에 협조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유럽연합(EU)의 ‘대리인 제도’를 떠올리게 됐다. 대리인 제도는 내년 5월부터 본격 적용할 예정인 일반정보보호규정(GDPR)에 포함된 조항 중 하나다.
잘 아는 것처럼 GDPR은 1995년부터 운영돼 온 개인정보보호 지침(Directive)을 대폭 강화한 규정이다. EU 의회는 2015년 5월 GDPR을 통과시킨 뒤 2년 같의 유예 기간 끝에 내년부터 본격 적용한다. 특히 각국 정부의 이행 입법이 있어야만 했던 지침과 달리 GDPR은 곧바로 유럽 전역에 적용된다.
‘대리인 제도’는 EU 내에 뚜렷한 주체가 없을 경우 서면으로 대리인(Representative)을 지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물론 대리인은 GDPR을 준수하기 위한 활동을 해야만 한다.
대리인 제도가 있을 경우 텀블러 사태는 쉽게 방지할 수 있다. 해외 사업자가 국내에 서버도 없고, 또 법인도 없다는 이유로 몽니를 부릴 경우에도 대리인을 통해 적절하게 제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EU의 GDPR에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는 이유 중 하나도 대리인 제도 때문이다.
■ 유럽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지만…
물론 EU와 우리는 상황이 다를 순 있다. 시장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유럽이 구글,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 기업들을 제재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 가진 강력한 파워에 힘입은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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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하더라도 텀블러 사태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리벤지 포르노와의 전쟁'을 선포한 터라 더더욱 이번 사태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규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소한의 질서 유지를 위한 안전장치는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EU의 '대리인 제도'는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