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위기론, 그저 엄살일 뿐일까

데스크 칼럼입력 :2017/09/05 13:43    수정: 2017/09/15 20:19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인 권오현 부회장은 최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진 뒤 사내 통신망에 올린 '임직원께 드리는 글'을 통해 "비상한 각오로 위기를 극복하자"며 임직원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이 부회장의 부재 속에도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만큼 일반인들은 이런 멘트를 엄살로 치부할 듯하다.

기자는 그러나 이런 생각이 단견이라고 본다. 기자는 사실 초년병 시절에 삼성전자를 취재하면서 이 회사가 20년 뒤에 매출 200조원을 상회하는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기자는 그러나 삼성전자가 지속 성장하면서 이런 판세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전자 사옥 (사진=삼성 뉴스룸)

첨단 전자 기업들의 숱한 흥망성쇠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가전 왕국 소니의 성공과 몰락, 통신 왕국 모토로라의 쇠퇴, 휴대폰 왕국 노키아의 급속한 몰락 등등. 이 모두 다 삼성전자가 벤치마킹해오던 회사들이다. 삼성이라고 이런 흥망성쇠의 운명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게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삼성이 진짜 위태로울 수 있겠구나, 하고 느낀 것은 몇 해 전이다. 2014년부터 세계 경기가 침체일로에 접어들고 중국의 추격이 거세지면서 당장 스마트폰 부문부터 실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당시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한 마디로 '난국' 그 자체였다.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6'의 반격으로 고전했다. 보급형 시장에서는 화웨이-샤오미 등 중국 업체의 협공에 눌려 쇼크 상태였다. '갤럭시S4'는 대만 'HTC원'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갤럭시S5' 후면 커버는 '반창고냐'라는 조롱을 받았다. 세계 휴대폰-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전년 26.8%에서 22.4%로 뚝 떨어졌다.

어느 미래학자는 삼성전자가 더 늦기 전에 중국에 스마트폰 사업을 빨리 팔고 미국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를 사야 한다고 충언 아닌 충언을 하기도 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삼성이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큰 결단을 내린다. 고집하던 플라스틱 재질을 버리고 풀 메탈 디자인의 '갤럭시S6'로 꺼져 가던 불씨를 살린다. 미래전략실은 각 계열사별 사업부문 경쟁력 진단과 개선 작업에 나선다. 그 결과 그해 11월 석유화학과 방산사업 등 비핵심 사업을 한화에 매각한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카메라 사업과 프린팅 사업을 정리하고 1등만 남겨 놓는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 때 눈에 띄는 것이 이 부회장의 행보였다. 이 부회장은 스마트폰 사업을 위해 일본으로 날아가 독일 쿠카와 함께 세계 최고의 로봇기업으로 평가받는 화낙을 찾아가 금속 절삭기계를 들여온다. 구글 래리 페이지와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를 수시로 만난다. 이들이 삼성전자를 방문한 때도 아마 이맘때로 기억된다.

사람이 혼자 살수 없듯이 기업도 혼자 살수 없다. 평상시에도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하고 어쩔 때는 피도 섞어야 한다. 병석에 누워 있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이 일을 도맡아 해 온 이가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다. 셀비(비디오 앱 서비스), 스마트싱스(IoT), 루프페이(모바일 결제) 등 해외 유망 스타트업 인수와 인재 영입도 이 시기에 집중된다.

그렇게 한 때의 위기를 극복한 삼성전자가 앞으로 더욱 어려운 형국에 놓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삼성에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하고 미래전략실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이 엄중하기만 해서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이 누군가 비판하는 숫자 이데올로기이나 마케팅일 수 있고, 총수 없는 삼성의 위기론이 호들갑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삼성의 내부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가 더 크다. 정확히 말하면 정치로 인한 기업의 경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은 혹독한 시기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던 삼성 수뇌부를 불러다가 재단에 돈을 내고 말을 사달라고 했다.

특검은 위기를 헷징하기 위한 선제적 경영 활동이자 사업 재편일 수도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마음 속 흑심(?)을 품고 건넨 경영승계 목적이라며 이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임원들을 구속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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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대기업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너무 진부하고 주먹구구식이다. 동화 속 나라의 이야기를 할 때는 순진함을 느끼고 화석화된 사고엔 답답함을 느낀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진화와 성숙이 필요하다.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삼성에게 더 투명하고 엄밀하고 정확한 경영 시스템이 필요치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도 진화하고 성숙돼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권오현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경영 수뇌부들이 삼성전자 위기론을 잇따라 호소하고 있다. 아마도 이 과정을 쭉 지켜보고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이 없는 현 상황이 위기를 넘어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