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본래 불온하다. 현재를 부정하고 현재를 뒤엎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삐걱거리고 있다. 무용론까지 나온다. 출범이 예정보다 한달 이상 늦어졌고, 조직이 크게 축소될 조짐이다. 출항은 늦어질 수 있지만 조직 축소는 심각한 문제다.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총리급이라던 위원장 지위가 부총리나 장관급으로 격하될 것이라고 한다. 중앙부처 장관 15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계획도 4명으로 축소될 것이라는 소식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공동으로 맡기로 했던 부위원장직도 없어진다고 한다. 장 실장이 발을 빼는 건 심각하다. 우리 관료 문화상 청와대의 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처 업무에 추진력이 붙는다.
4차산업혁명은 어느 한 부처만의 일이 아니다.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를 비롯해 국토부, 교육부 등 타부처와 업무가 얽혀 있다. 4차산업혁명 핵심이 데이터와 규제이기 때문이다.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얽혀 있는 업무를 조율하려면 장관보다 쎈 사람이 필요하다. 그게 대통령이라면 금상첨화다. 문재인 정부는 거버넌스 성격이 짙은 일자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정작 일자리를 창출하는 핵심 역할을 할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그러지 않았다.
생산은 입이 하는게 아니다. 손과 발이 한다. 일자리 창출의 손과 발 역할은 일자리위원회가 아니라 4차산업혁명위원회다. 그런데 점점 힘이 빠져가는 모양새다. 의결권이 없고 힘있는 사람이 없는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자문위로 전락한다.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업계는 “기대가 컸는데 실망이다”는 반응이다. 급기야 SW와 ICT관련 88개 학회 및 협단체로 구성된 한국SW·ICT총연합회는 21일 긴급 회장단 회의를 열고 “위원회가 제 기능을 발휘할 지 우려된다”는 의견서를 내놨다.
세계 각국은 이름만 다르지 4차산업혁명을 선점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최고 제조 강국을 꿈꾸는 중국은 수십조원을 투입해 203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AI국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도 4차산업혁명을 통해 국가경제 및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국가혁신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4차산업혁명 원조인 ‘인더스트리4.0’을 고안한 독일과 세계적 혁신 기업이 즐비한 미국은 말할 것도 없다.
잠시 시계를 지난 2월 1일로 돌려보자. 당시 문재인 대선 후보는 서울의 한 학교에서 “21세기 세계는 촛불 혁명과 4차 산업혁명에 모두 성공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면서 “신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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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100일이다. 그런데 핵심 산업 공약이 벌써 공약(空約)이 될 처지에 놓였다. 이전 정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늘 과기정통부는 대통령에게 4차산업혁명을 골간으로 하는 부처 업무 보고를 한다. 고양이가 된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대해 대통령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
4차산업혁명에 대해 “호들갑만 있고 알멩이는 없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렇게 될까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