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발주기관 공무원들이 불시에 찾아 와선 개발자 머릿수를 세보고 ‘왜 전원이 나오지 않았냐’고 닦달하고 가는 일도 허다합니다.”
“개발자들이 몇 달씩 지방 파견을 가는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야 하니 삶의 질이 확 떨어집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공공 기관의 지방 이전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IT서비스 업체들의 고충이 날로 커지고 있다.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을 진행할 때 기관이 있는 지방에 개발자를 상주시키라고 요구하는 관행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지방 파견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도 문제지만, 인력 손실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능력 있는 개발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해 그만두고, 덩달아 개발 결과물의 품질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얘기다.
IT서비스 업체들이 지난 10년 간 요구해온 원격지 개발 활성화 문제가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소프트웨어(SW) 업계 출신인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업체들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이번엔 다를 거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 원격지 개발 요구 10년... 왜 안 바뀌나
발주 기관들은 보안 규정 등을 이유로 기관이 있는 지방에 개발자 상주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보안 문제보다는 오히려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관리감독하기 쉽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지난 2014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원격지 개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가이드라인에는 원격지 개발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 상세히 정리돼 있다.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는데도, 원격지 개발을 허용하는 기관은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보안 규정이라는 게 자료를 주고 받을 때 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곳에 개발 사무소가 위치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서울과 지방을 왔다갔다 한다고 없을 보안 위험이 더 커지겠느냐”며 “사실상 옆에 두고 직접 챙기고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 수익성은 나빠지고 인력 손실은 커져가는데…
최근 들어선 IT서비스 업체들의 고충이 더 가중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 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때문이다.
우선, 개발자들을 지방에 상주 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큰 부담이다. 사무실 임대, 숙소 임대, 출장비 지원, 교통비 등이 추가로 발생한다. 개발자 한 두 명이 아니라 30~50명의 몇 달 치 체재비를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발생한 비용은 사업 예산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업체 마진에서 제할 수 밖에 없다. 업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오죽하면,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두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통령 집무실이 광화문으로 옮겨 오는 2019년에는 행안부와 과기정통부까지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부담이 더 커질까 두렵다는 얘기다.
또 다른 문제는 지방 파견 근무가 우수 인력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이다. 업계는 지방 파견으로 인해 개발자들의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진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방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일단 객지에서 자취 생활을 해야하고, 주말 근무, 야근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IT 서비스업계를 3D업종으로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IT서비스 업계 “이번엔 진짜 바뀌길”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최근 SW기업인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원격지 개발 허용만은 반드시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유 장관은 원격지 개발 문제에 대해 “법령을 만들어서라도 (정착시키고) 과기정통부와 몇 개 부처가 발주를 할 때 (원격지 개발 활성화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업계의 숙원 과제였던 원격지 개발이 이번엔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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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양질의 개발자들이 다 빠져나가고 산업이 망가질 수 있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면서 “IT서비스 업계에 산적한 문제가 많지만 가장 시급한 것이 원격지 개발 허용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0년 넘게 바뀌지 않은 문제인 만큼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우선 예산 편성항목에 체재비를 반영하도록 보장해줘야 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