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구글세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구글세'란 조세 조약이나 세법을 악용해 온 다국적 기업에 부과하기 위한 세금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국내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가는 구글, 페이스북 같은 다국적기업들의 조세 문제는 대표적인 역차별 사례로 꼽혀 왔다.
정부는 7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BEPS) 방지 다자협약에 서명하면서 구글세 해결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BEPS 방지 다자협약은 다국적기업의 국제적인 조세회피를 차단하고, 관련 과세를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국제협약이다. 이 협약은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다국적 기업의 역외탈세를 막기 위해 선진 주요 20개국(G20)과 OECD가 공동 추진한 국제공조체계다.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 28개국과 중국, 인도, 호주 등 70여 개국이 참여했다. 앞으로도 서명국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국회 비준 등 합리적 절차를 거쳐 BEPS 방지 협약 내용을 적용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조세조약을 악용한 조세회피 방지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서명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국가들에게 강제할 권한은 없어 한계를 지닌다.
이 밖에 국회에서는 구글, 페이스북을 포함한 국내외 부가통신사업자들에게 경쟁상황평가나 시장조사를 목적으로 매출 등의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한다는 계획인데, 통상 마찰을 최소화 하는 명분과 국내 사업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 구글 등 유한회사로 사업, 정확한 매출 확인 힘들어
현재 구글, 넷플릭스, 알리바바, 애플, 텐센트, 페이스북 등은 국내에서 유한회사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매출액 공시나 외부 감사 의무가 없어 한국 매출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앱마켓 시장규모는 약 7조6천668억원으로 추정된다. 1위 구글이 플레이스토어에서 4조4천656억원의 매출을 올려 58.2%를 점유했다. 그뒤를 이어 애플이 앱스토어에서 2조206억원의 매출을 올려 26.4% 점유율을 기록했다.
구글과 애플은 앱마켓 매출의 약 30%(신용카드 기준)를 수수료 명목으로 징수한다. 지난 해 구글은 1조3천396억원, 애플은 6천61억원을 벌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구글이 공개하기 전까지 정확한 매출 규모를 알기 어렵고 국내 매출이 아닌 해외 매출로 인식되기 때문에 정확한 세금 징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구글의 경우 국내 매출이 구글코리아가 아닌 구글 아시아퍼시픽(싱가포르) 매출로 잡힌다. 싱가포르법인의 매출은 다시 구글 아일랜드 법인으로 전달된다. 이는 조세 혜택을 노린 것으로, 구글이 국내에서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이유다.
구글세 논의는 다국적 기업들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법인을 두고 세율이 높은 국가 매출을 우회적으로 넘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됐다. OECD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로 인해 발생하는 전 세계 법인세 손실금액이 2014년 기준으로 연간 최대 280조원(약 240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산했다.
공동 대책 마련에 나선 OECD와 G20은 지난 2015년 10월 BEPS 대응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그해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국가별 대응이 확정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구글세가 적용된 상태다.
영국은 지난해 1월 구글에 1억3천만 파운드의 세금을 거뒀으며, 이탈리아 역시 구글로부터 3억600만 유로의 세금을 추징했다.
■ 구글세 도입 논의, 장치 마련 잇따른 움직임
우리나라 역시 새 정부가 꾸려지면서 구글세 도입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제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해외 기업에 대한 세금 문제 등 역차별과 형평성 문제를 들여다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지난 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구글세 도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의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직전연도 연결재무제표 매출액이 1조원을 초과한 다국적기업은 당해 연도 국가별 현지법인의 사업활동과 세금납부 현황 등을 기재부에 제출해야 한다. 위반 시 과태료 3천만원이 부과된다.
이 밖에 최근 국회에서는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을 중심으로 외국 IT 기업들도 매출, 영업이익, 가입자 수 등의 자료를 미래창조과학부에 제출할 수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가통신사업자도 미래부 장관이 필요하다면 자료 제출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이달 중 발의될 전망이다.
BEPS 방지 협약 가입은 이런 행보에 속도를 더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BEPS 방지 협약이 국회 비준 등을 통해 통과되면, OECD 회원국 간 조세조약 개정협상 없이도 다자협약에서 규정한 내용들이 적용된다. 다국적기업 등의 거래 목적이 국가 간 체결된 조세조약상의 비과세, 저율과세 등의 혜택을 받기 위한 것일 경우 조약의 혜택을 부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협약은 서명국끼리만 효력을 지닌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인터넷기업 최성진 사무국장은 “국내 기업들이 받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글로벌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이 인터넷 생태계 환경에 참여하면서도 조세 의무 등을 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구글의 경우 최근 이탈리아와 영국 등에서 비슷한 문제로 각각 수천억원의 세금을 추징 당한 사례가 있다”면서 “조세 회피를 위해 해외 계약으로 돌려서 하는 부분의 경우 국세청이나 공정위가 조사할 권한이 있고, 국내 경제에서 발생한 것이니 납부 요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한국 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정해진 법인세를 내고 있다. 부가세는 개발사가 대납하는 방식으로 내고 있다”며 “다국적 조세법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세법이 바뀌면 이에 성실히 따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 과세당국은 이미 구글코리아에 대한 세무조사를 완료했고 당사가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미국과 통상마찰 가능성 등은 조심해야
구글에 세금을 물리고, 정보 공개를 명령하는 과정에서 미국과의 통상 마찰도 우려된다. 명확한 명분이 없는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의 사태로 번질 수 있다.
국회 역시 이런 우려에 대해 인지하고, 걱정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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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의원실 측은 "처음에는 유한회사들의 정보 공개를 가능하게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기획했으나, 명분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WTO 제소 등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는 법률 자문을 받아 경쟁상황평가나 시장 조사 등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 대상을 부가통신사업자 전체로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러나 과도한 정보 공개 요구란 이유로 국내 인터넷 사업자들이 반대할 경우, 확정된 바 없지만 통상 마찰이 우려되더라도 애초 의도대로 유한회사만을 대상으로 한 개정안이 발의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