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조직 내에서 불통이 불신과 불만으로 이어지고, 결국 곪은 상처가 터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종종 뉴스 사회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정작 소통하는 수단과 방법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이런저런 소통의 기회를 만들거나 사내 익명 게시판을 만든다고 해서 직원들이 속내까지 드러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혹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나서기 꺼려지기 때문이다. 결국 임원이나 상사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2014년 출시된 익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블라인드’는 이런 소통의 현실적인 문제와 한계를 파고든 서비스다.
네이버와 티켓몬스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문성욱 대표와 김성겸 이사 등이 창업해 만든 블라인드는 현재 직장인들의 솔직한 소통 공간으로 애용되고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사내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고, 회사에게는 사내 여론을 바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창구가 바로 블라인드다.
문성욱 팀블라인드 대표는 전 직장 시절 회사가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회사와 직원들과의 단절 문제를 경험했다. 회사가 노력을 많이 해도 불어난 직원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듣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는 소통의 단절이 존재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어떤 이해 관계도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중립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팀블라인드를 창업한다고 했을 때 10명 중 9.9명은 망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해보고 싶은 서비스였어요. 소통의 장벽이 사라지면 분명 좋아지는 것들이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블라인드에는 회사나 구성원들에 대한 직장인들의 생각들이 날 것 그대로 올라온다. 현재는 특정 규모 이상의 회사 전용 공간과, 그룹별 라운지가 존재한다. 모든 회원이 회사 계정 이메일로 가입인증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다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A 기업 방에 B 회사 사람이 들어와 게시물을 보거나 댓글을 달 수 없는 구조다. 라운지 공간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유사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나, 쿠팡맨 부당처우 문제, 두산 정리해고 등 크고 작은 이슈들이 블라인드를 통해 바깥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회사와 서비스는 유명세를 탔다. 직장인들의 필수앱으로까지 성장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불편한 얘기들이 넘쳐나지만, 지금까지 항의성 연락이나 요청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제 목소리 낼 수 있는 채널을 만들어주는 게 직장 문화를 더욱 건강하게 해주는 포인트가 될 거라고 봤어요. 소통이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다 알지만 그들의 얘기를 어떻게 청취하는지는 잘 모르더라고요. 회사가 저희 서비스를 불편해할거라 생각하시겠지만, 지금까지 게시물 삭제 요구나 항의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희가 어느 쪽과도 관계 없는 중립적인 서비스이기 때문이죠.”
블라인드에 대한 여러 우려와 의혹들이 있다. 해킹으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서비스 정보를 돈 받고 팔거나 게시물을 삭제해준다는 얘기 등이다. 또 “이 회사는 도대체 뭘로 돈 버나”등과 같은 걱정들도 한다.
이에 문성욱 대표와 김성겸 이사는 사실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일축했다.
“일단 글 삭제 권한은 작성자에게만 있어요. 특정 게시물에 대한 신고가 많이 들어오면 다른 사용자에게만 보이지 않는 숨김처리가 될 뿐이죠. 기업들이 지워달라고 해도 저희는 할 수도 없고 해준 적도 없습니다. 글 쓴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저희 내부에도 없습니다. 누군가 저희 DB를 통째로 가져가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구조입니다. 평문으로 저장해 놓은 이메일 주소도 없고, 익명성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내에 비밀번호 찾기 기능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블라인드의 수익 모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 뉴스피드 방식으로 보여지는 화면 상단과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 효과를 테스트하는 작업 정도를 진행하고 있다. 추후에는 회사 복지몰이나 채용, 데이팅 같은 서비스 도입도 고려 중이다. 사용자 층이 뚜렷한 만큼, 블라인드 고유의 정체성과 익명성을 해치지 않은 수준에서 다양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라인드는 미국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며 성장 중이다. 페이스북, 우버, 구글, 아마존 등이 블라인드를 자국 서비스로 알고 사용하고 있다. 야후 해고 문제, 우버 스캔들 등 굵직한 이슈들이 블라인드를 통해 확산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1인당 하루 20분 정도 블라인드에 머무는 반면, 미국에서는 1인당 하루 이용 시간이 34분에 달한다.
“미국도 저희처럼 소통하길 원하는 욕구는 똑같았어요. 우버에서는 블라인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내 와이파이 접속을 막았는데, LTE로 사용해도 되는 걸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게 기사화가 되면서 가입자가 3배 가까이 늘어났죠. 우버를 제외하면 미국 회사들은 좀 더 개방적이에요. 상사가 와서 블라인드를 설치하라고 권하는 경우도 있고, 전사 미팅 때 블라인드 얘기를 하기도 해요.”
문 대표에 따르면 미국 뿐 아니라, 국내 기업들도 블라인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점차 늘고 있다.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직원들이 가진 솔직한 불만과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모니터링 한다는 얘기였다.
직장인들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고 달래준 블라인드는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예정이다. 그 동안 큰 회사 중심으로 운영이 돼 왔다면, 올해 하반기부터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또 올해 안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2년 정도 이후에는 미국 이외의 지역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관련기사
- 직장인 절반 “50세 전에 잘릴 거 같다”2017.05.17
- 아마존 직원들, 동료 투신에 비밀앱서 '시끌'2017.05.17
- “페북 할수록 외로워”…익명 SNS 뜬다2017.05.17
- 블라인드, '그룹사 라운지'로 소통 확대2017.05.17
문성욱 대표와 김성겸 이사는 인터뷰 말미에 블라인드의 성공 확신과, 이용자들의 믿음을 강조했다. 특히 사용자들의 기대에 반하지 않는 방식의 성장을 약속했다.
“미국 서부 지역 상위 기술 회사에 물어보면 블라인드를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만큼 인지도가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넘어간 경우인데, 성공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블라인드 사용자분들이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속 가능한 수익화의 요구도 있는데, 어떤 이해관계에도 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성장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