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대하는 카카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AI부문'이라는 전담 조직을 만들어 카카오톡, 카카오내비, 카카오택시, 멜론, 다음검색 등을 주요 서비스를 하나의 AI 플랫폼에서 음성과 채팅을 이용해 서비스할 수 있게 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이러한 전략을 실행할 첫 도구로 꼽은 것이 스피커다. 이후에는 카카오톡과 연동된 AI 챗봇도 자체 개발에 나선다.
내부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혁신적인 AI 기술을 외부에서 끌어오기 위한 생태계에도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AI플랫폼이 스마트폰 앱 형태로 서비스 되면서 외부에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공개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 그 때문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직접 대표를 맡은 카카오브레인은 외부 AI 기술을 카카오 생태계 안으로 끌어 오기 위한 공개연구에 집중하며 카카오를 후방지원한다.
카카오, 카카오브레인은 서울대, 카이스트, 아산병원 등과 함께 학계 전문가 50여명으로 구성된 딥러닝 연구그룹 '초지능 연구센터'는 이 달 초 신설했다. 이미지나 동영상에서 정보를 얻어 자동으로 상황에 맞는 대화를 생성하거나 개인 간 음성인식/합성/화자인식, 텍스트에서 개인화된 스타일로 음성을 합성, 의료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판독하는 등 7가지 연구과제를 선정해 미래에 쓰일 기술 확보에 나선다.
■카카오식 AI 플랫폼, 어떤 그림 그리나
이미 네이버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이 AI 경쟁에서 서로 다른 강점을 내세우며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는 만큼 카카오의 최근 행보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성인식 및 검색, 개인화된 뉴스 추천 등 일부 영역에서만 AI 기반 기술인 머신러닝 혹은 딥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해 왔던 이 회사의 잠재력은 크다.
카카오톡의 월 활성사용자수(MAU)는 이미 지난해 9월께 4천만명을 넘은지 오래다. 이제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들 중 거의 모든 이들이 카카오톡을 사용 중이다.
카카오 관계자에 따르면 연내 출시될 AI 플랫폼은 앱 형태를 띄게 될 전망이다. 카카오가 제공하는 수많은 서비스들이 음성인식기능을 지원하는 AI 전용 앱을 통해 연동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는 아마존 알렉사처럼 음성인식비서 역할을 하는 가정용 스피커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안방부터 공략해 나가겠다는 시도다.
카카오와 합병한 다음이 이미 오랫동안 음성인식, 검색 기술을 연구해 지금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집 안에서는 스피커로, 밖에서는 스마트폰으로 키보드 대신 음성으로 카카오톡에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카카오톡 외에 음원서비스 중 1위인 멜론이나 기존 카카오맵, 카카오내비, 카카오택시, 오랫동안 2위 포털로 자리를 지켜왔던 다음이 가진 콘텐트가 결합했을 때는 국내 AI 시장에서 가장 큰 파급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카카오가 구상하는 AI 플랫폼이 이런 서비스들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AI 생태계 만들기, 이번엔 다를까
지난해 말 카카오는 O2O서비스를 직접하기보다는 관련 플랫폼 사업자가 되겠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많은 파트너들을 끌어안지는 못했다. 카카오 플랫폼에 합류하는 것이 기존 O2O 스타트업들에게 이렇다 할 이점을 주지 못했던 이유가 크다.
당시 카카오는 사업으로 대대적인 개편을 예고하면서 이동과 관련된 카카오맵, 카카오택시, 카카오내비 등과 카카오헤어샵을 제외한 나머지 서비스들은 모두 외부 회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게임 for Kakao'와 같은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겠다고 공언했으나 결과는 아직까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반면 AI는 다른 기술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결과가 실제 비즈니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고, 여기에 능통한 고수들이 손에 꼽을 정도인 만큼 협업의 여지가 O2O에 비해 큰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카카오가 내놓는 AI 플랫폼은 SDK를 제공해 외부 개발자 혹은 개발사들이 해당 앱을 활용해 여러가지 AI를 응용한 서비스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카카오 관계자에 따르면 예를들어 전자책 앱에 카카오 AI 플랫폼이 지원하는 음성인식, 합성 기능을 도입해 전자책을 음성으로 읽어주고, 책읽기를 시작하거나 중단하라는 등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책을 보다가 궁금한 내용을 알기 위해 다음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해서 알려주는 등 기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기술보다는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진 O2O서비스에 비해 AI는 여전히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써야 비즈니스로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는 단계다. 그 중에서도 딥러닝 분야는 특히나 공개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김남주 카카오브레인 AI 연구총괄은 카카오 AI 리포트에서 "딥러닝은 전 세계적으로도 시작한지 4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국내에서도 빠르게 시작한 "스타트업과 학교는 2년 전에 시작했으니 미국에 비해 2년 정도 밖에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딥러닝 분야에서는 특히나 인재풀이 적기 때문에 공개연구를 통해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카카오, 카카오브레인은 초지능 연구센터에 참여해 직접 공동 기술개발에 나서는 동시에 제주도에서는 구글 및 구글이 고안한 머신러닝 개발툴인 텐서플로 한국 사용자 모임 등과 손잡고 오는 7월 '머신러닝 캠프 제주 2017'을 개최하는 것도 공개연구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나온 행보다.
■AI 챗봇 경쟁 대열에 카카오도 합류 예고
AI 기술이 접목되고 있는 여러 분야 중 가장 힘든 분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이 챗봇이다. 이미지나 음성을 인식하는 기술은 이미 딥러닝을 통해 높은 정확도를 갖는 수준으로 올라왔지만 사람의 대화를 흉내내는 자연스러운 챗봇을 만들어내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대화 데이터가 확보돼야하고, 딥러닝에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연어 처리, 자연어 이해를 위한 기술력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만만치 않은 탓이다.
한국어로 이뤄지는 일상 대화에 대해 가장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은 단연 카카오톡이다. 당장 사람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에 대한 대화 내역 원본 데이터를 얻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한국어로 어떤 주제로 어떤 문장으로 대화를 나누는지에 대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카카오가 AI 챗봇 분야에서 가질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실제로 카카오는 장기적으로 카카오톡에서 자사가 직접 AI 챗봇을 개발, 도입할 예정이다. 이미 여러 챗봇들이 카카오톡을 활용해 서비스 되고는 있지만 주어진 메뉴 중에 사용자가 선택하거나 메뉴 형태로 숫자를 눌러 원하는 정보를 선택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카카오가 만든 AI 챗봇이 얼마나 다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이유다.
카카오 관계자는 "아마존 알렉사나 구글 어시스턴트 등이 영어 기반이라면 한국에서는 한글을 쓰는 만큼 2010년 다음 시절 부터 음성인식 기술을 갖고 있는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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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판단하는 일련의 과정은 검색과 맞닿아 있다"며 "카카오는 음성인식부터 형태소 분석, 콘텐츠까지 축적된 자산이 많기 때문에 이쪽부터 시작해 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카카오가 제공하는 전 서비스를 아우를 수 있는 AI 플랫폼을 탑재한 스피커로 시작해 공개연구와 챗봇 등으로 영역을 넓혀갈 카카오가 '국민메신저' 타이틀에 이어 '국민AI플랫폼'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