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IDF…'윈텔'이여, 안녕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인텔과 'PC시대의 종언'

데스크 칼럼입력 :2017/04/18 17:59    수정: 2017/04/19 15:3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윈텔 형제’가 IT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윈텔이란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을 함께 지칭하던 말이다.

운영체제(윈도)와 칩을 갖고 있던 두 업체는 PC의 심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만큼 MS와 인텔의 위세는 대단했다.

한 해를 여는 CES 기조 연설은 늘 빌 게이츠(나 스티브 발머)의 몫이었다. CES의 열기가 잠잠해질 무렵이면 인텔개발자포럼(IDF)이 바톤을 이어받았다.

1997년 처음 시작된 IDF는 개발자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대표적인 행사였다. 펜티엄을 비롯한 여러 CPU나 ‘쿼드코어 로드맵’ 이 베일을 벗은 곳도 IDF 무대였다.

그런데 인텔이 17일(현지시간) "더 이상 IDF를 열지 않겠다"고 선언해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IDF 없는 인텔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사진=씨넷)

■ "PC회사에서 데이터 중심회사로 중심 옮겼다"

IDF는 최근 몇 년 동안 '주인'인 인텔만큼이나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요 근래엔 인공지능(AI)이나 사물인터넷(IoT) 같은 쪽에 상당한 무게를 싣기도 했다. 인텔로선 IDF란 브랜드에 새로운 트렌드를 담으려는 몸부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결국 인텔은 IDF 포기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왜 이런 파격적인 결정을 한 걸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인텔의 공식 발표대로 ‘회사의 무게중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인텔은 이날 “IDF를 그만하기로 한 건 회사의 중심이 PC에서 데이터 쪽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다.

PC를 중심으로 한 기술 생태계란 이미지가 강한 IDF론 더 이상 회사의 비전을 포괄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든 무어가 1965년 무어의 법칙을 담은 논문에 사용한 그래프.

최근 ‘무어의 법칙’을 둘러싼 혼란 역시 인텔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게 골자다. 1965년 고든 무어가 처음 주장한 이래 5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온 법칙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무어의 법칙’이 흔들리고 있다. 실제로 반도체업체들은 지난 해 ‘무어의 법칙’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 있다. 더 이상 ‘18개월 마다 두 배’란 발전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올 들어 ‘무어의 법칙은 계속된다’는 선언이 있긴 했지만, 예전 같진 않다. 융합시대가 되면서 제품 로드맵을 짜는 게 그만큼 힘들어진 탓이다. 이런 고민 역시 IDF를 계속 유지하기 힘든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인텔은 다른 행사를 또 만들어낼테지만…

인텔은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건 윈텔 듀오의 또 다른 축인 MS도 마찬가지였다. 한 때 PC 뿐 아니라 IT시장 전체의 선행 지표였던 두 회사의 위세가 2000년대 중반 이후 확 꺾인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인텔은 이스라엘의 자율주행차 전문업체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약 17조5천억원)에 인수하는 등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IDF 포기 선언’은 이런 인텔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 셈이다.

크르자니크 인텔 CEO. (사진=씨넷)

이런 인텔이었던만큼 IDF를 수리하는 것으론 새로운 시대 흐름을 담아내기 힘들단 판단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IDF는 사라지더라도 AI와 IoT 시대를 상징하는 다른 행사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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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어쩔 수 없이 ‘사라지는 IDF’에서 저물어가는 한 시대를 목격한다. 한 때 IT시장을 지배했던 ‘윈텔 듀오’의 마지막 상징물의 퇴장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냈던 IT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묘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냉철해야 할 기자가 취할 자세는 아닐 테지만.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