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무어의 법칙' 제동 걸었다

美 SEC 제출 문건서 "따르지 않겠다" 시사

컴퓨팅입력 :2016/03/29 14:06    수정: 2016/03/29 14:1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반도체시장의 황금률이었던 ‘무어의 법칙’이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신적 지주였던 인텔이 사실상 ‘무어의 법칙’ 폐기를 선언한 때문이다.

인텔이 지난 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출 문건을 통해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을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고 MIT테크놀로지리뷰가 28일(현지 시각) 전했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지난 1965년 4월 ‘일렉트로닉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처음 주장한 이론이다. 이 논문에서 고든 무어는 18개월마다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2배씩 증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이론은 이후 인텔 반도체 전략의 핵심 역할을 하면서 ‘무어의 법칙’으로 불리게 됐다.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반도체 업체들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칩 개발 로드맵을 만들어왔다.

인텔이 사실상 무어의 법칙을 폐기하겠다는 점을 시사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씨넷)

■ 반도체 소형화되면서 '무어의 법칙' 적용 힘들어

무어의 법칙은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축이 PC와 스마트폰을 거쳐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쪽으로 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체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 수준으로 향상되면서 컴퓨팅 능력이 엄청나게 증가된 덕분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면서 ‘무어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인텔 최신 칩이 이미 14나노미터까지 소형화됐기 때문에 생산비용 효율을 유지하면서 소형화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고 평가했다.

물론 인텔의 이 같은 전략 수정은 깜짝 놀랄 행보는 아니다. 인텔은 이미 10나노미터 첫 제품 출시 일정을 2017년께로 미룬 적 있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을 적용할 경우 올 연말쯤 10나노 제품이 나와야 한다.

1965년 4월 무어의 법칙을 처음 발표한 고든 무어 인텔 공동 창업자. (사진=씨넷)

인텔이 또 다시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를 다소 늦추겠다고 선언하면서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 일회성이 아니란 걸 만천하에 보여줬다. 그 부분이 주목할 대목이다.

이 같은 방침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인자동차 같은 기술들이 프로세싱 파워 부족으로 표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MIT테크놀로지리뷰가 전망했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대신 디자인 방식 향상 등을 통해 처리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네이처 "반도체업계가 공식 폐기할 것" 보도하기도

반도체업계가 ‘무어의 법칙’을 공식 폐기할 것이란 소식은 지난 달 과학 저널 네이처가 보도하면서 공론화됐다.

당시 네이처는 반도체업계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무어의 법칙’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반도체 기판 크기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는 부분이며, 또 하나는 모바일 컴퓨팅 시대 개막이다.

현재 반도체 회로 크기는 계속 소형화된 끝에 14나노미터에 이르렀다. 문제는 점점 작아지는 기판에 더 많은 회로를 넣으면서 발열량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데스크톱PC나 노트북에서는 열을 발산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이 좀 더 복잡하게 됐다.

고든 무어가 1965년 무어의 법칙을 담은 논문에 사용한 그래프.

‘무어의 법칙’을 고수할 경우 발열 문제를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네이처는 “어느 누구도 뜨거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길 원치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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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이유도 중요하게 고려됐다. 실리콘 칩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더 좁은 공간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우겨넣어야 한다. 문제는 이럴 경우 새로운 생산 설비가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수 십 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을 투자할 여력이 있는 반도체업체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업계 내에선 이미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됐다는 것이 네이처의 분석이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