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모바일 세상이 열리고 디지털 기기로 들어온 책은 종이책 읽기의 경험을 모방하는 것을 목표로 발전해 왔다. 종이를 넘기는 느낌,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는 습관을 그대로 살리는데 중점을 뒀다. TV나 영화, 음악 등 다른 미디어가 스마트폰을 만나 소비 방식이 완전히 바뀐 것과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이런 책의 소비 방식을 바꿔 보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짧은 스토리를 채팅 형식으로 읽을 수 있는 탭이란 앱이 대표적이다. 반응도 좋다. 출시 1년 만에 2만5천 개의 이야기가 등록됐고 전세계에서 4천500만명의 독자를 모았다.
책을 게임 형식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 모바일 광고회사 미탭스플러스는 첫 번째 시도로 ’직장백서: 애자일의 신(이하 직장백서)'이라는 앱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게임이 스토리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것으로 보고 계속해서 텍스트 게임을 내놓을 계획이다.
책을 게임으로 읽으면 더 좋은 이유를 이 앱의 기획자인 미탭스플러스 임지순 씨를 만나 들어봤다.
- 직장백서 애자일의 신은 어떤 앱이고, 어떻게 만들게 됐나?
“게임의 원작은 국내에서도 한빛미디어를 통해 출판된 <드림팀의 악몽 애자일로 뒤엎기>란 책이다. 우연히 읽게 됐다. 처음에는 프로젝트매니저(PM)를 위한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는데, 소설이었고 형식도 독특했다. IT개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주인공이 한 개발팀을 단기간 코칭해 주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내용인데, 이야기가 갈리는 분기가 있고 선택에 따라 다른 스토리를 읽게 된다.
예컨대 점심 시간에 새로 만난 팀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을까, 아니면 이 회사 내부를 둘러보며 산책을 할까 둘 중에 선택해야 하고, 선택에 따라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게 된다. 이미 원작책의 형식이 게임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앱으로 바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백서에선 채팅을 엿보는 형태로 스토리를 보여주고, 스토리가 분기되는 지점에서 선택에 따라서 다른 스토리를 보여준다. 원작과 동일하게 8가지 다른 결말이 있다. 똑같은 결론으로 가더라도 사용자가 본 줄거리는 다를 수 있다. 적어도 30개 이상의 다른 줄거리를 볼 수 있다. 한번에 쭉 보면 과금없이 스토리를 즐길 수 있지만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할 때는 과금 구간이 있다. 프리패스(5천원)를 구매하면 모든 구간을 넘나들며 스토리를 다 읽을 수 있다”
-게임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게임을 사용자들이 좋아할지 모르겠다.
“두 가지 타입의 게임 유저가 있다고 본다. 한 쪽은 경쟁과 액션을 즐기는 사람들이고 다른 한 쪽은 게임에서 콘텐츠와 스토리를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10년전만 해도 후자를 만족시키는 게임이 많았다. 어스토니시아스토리, 포가튼사가 같은 게임을 하면서 스토리 자체를 즐겼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게임 유저들을 만족 시키는 시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런 사람들이 스토리를 즐기고 싶은 욕구를 전자책이나 웹툰을 보면서 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책이나 웹툰은 모바일 기기가 줄 수 있는 사용자경험(UX)을 다 활용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경험을 개선시키고 새로운 콘텐츠를 새로운 포맷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스토리텔링 방법으로써 게임이 줄 수 있는 장점은 뭔가?
"우선, 우리 앱의 경우 채팅 인터페이스를 썼다. 채팅 인터페이스 스토리텔링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점은 이미 검증됐다. 짧은 스토리를 읽을 수 있는 탭이라는 앱은 북미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다. 이 앱도 채팅 형태로 보여주는데 화면을 탭할 때마다 다음 대화가 나온다. 남의 채팅 방을 엿보는 느낌을 준다. 채팅 형태는 모바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본다. 비슷한 다른 앱으로 훅(hooked)이라는 것도 있다.
이런 앱들은 짧은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길고 서사적인 이야기도 이런 포맷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앱을 시작으로 보여주고 싶다.
또 직장백서처럼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결론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게임이 주는 장점이다. 평행 세계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고, 주인공의 시점을 달리해서 다른 이야기를 볼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용어설명이나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부가 콘텐츠를 통해 스토리의 이해를 더 높여 줄 수 있다는 점도 게임의 장점이다.”
-게임의 형식이지만 핵심은 스토리인 것 같다. 그렇다면 직장백서 애자일의 신은 괜찮은 콘텐츠라고 추천할 수 있나?
“애자일은 개발 방법론이지만, 게임을 하다보면 아마 이 것은 애자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회사 생활 얘기 혹은 인생 얘기라는 생각이들 것이다.
애자일의 핵심은 시각화다. 애자일 이라는 이름을 붙이니까 무거워 보이지만 해야할 할일을 꺼내 놓고 누가 할 것인지를 정해서 시각화하고 모두가 공유한다는 게 핵심 정신이다. 일을 이렇게 해서 나빠졌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따라서 애자일은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하는 방식이다. 애자일로 가사일도 할 수 있다. 베란다 창문에 포스트잍을 붙여 놓고 할일, 하고 있는일, 끝마친일을 나눠 놓으면 된다.
애자일 용어를 쓰긴 하지만 기술적인 얘기는 거의 안 나온다. 용어에 대한 설명도 나와있어서, 애자일이란 말에 거부감만 없으면 충분히 즐길만한 콘텐츠라고 본다.
영국에서 원작 책도 흥행한 것으로 안다. 우리는 게임으로 만들면서 한국식 기업문화를 녹여서 몰입감이 생길 수 있게 했다. 원작에서 상황은 그대로 가지고 왔지만, 캐릭터 이미지나 대사는 새롭게 만든 것이 많다.”
-이 분야 사업에서 미탭스플러스의 앞으로 계획은 뭔가?
"미탭스플러스는 모바일 광고 플랫폼 업체다. 기업간거래(B2B) 사업만 해왔는데, 이제 일반소비자대상(B2C) 상품을 만들고 자체 브랜딩도 해보려고 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첫 시작이 직장백서 앱이다. 앱을 개발하면서 코드 베이스를 한 번 만들었고, 수익모델도 다듬어 가고 있다. 앞으로는 다른 콘텐츠를 확보해서 비슷한 작품을 계속 만들려고 한다.
콘텐츠 사업인 만큼 좋은 스토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인디작가와 계약하거나, 드라마의 외전 스토리를 계약하는 방식, 또는 이미 히트한 메이저 콘텐츠의 라이선스를 계약하는 방식으로 확보해 나갈 생각이다.
우리는 텍스트 게임을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포맷으로 정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김승연 대표도 읽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모바일에서 읽는 경험이 아직 제대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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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작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직장백서가 출시된지 아직 한 달이 안됐지만, 다운로드 수는 1만이 넘었고, 실제 플레이하는 유저는 3천명 쯤 됐다. 8개 스토리를 다 봤다는 메일도 많이 받았다. 고객 문의 메일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 UX가 불편하니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좀 더 정제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주면서 인터페이스도 세련되게 풀어나면, 사람들의 읽고자 하는 욕구를 풀어 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