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창시자'와 컴퓨터노벨상의 뒤늦은 만남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버너스 리 '튜링상' 수상 단상

데스크 칼럼입력 :2017/04/05 14:56    수정: 2017/04/05 17:0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1954년 6월8일. 잉글랜드 체셔 주 윔슬로우의 한 조용한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됩니다. 사망한 사람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튜링은 하루 전날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접 못할 천재.

튜링에겐 생전에 늘 이런 평가가 따라다녔습니다. 실제로 그는 확률, 통계부터 암호학까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이니그마’란 독일군의 복잡한 암호체계를 풀어내면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튜링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 당국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했습니다. 수모를 못 견딘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해버렸습니다. 일설에는 튜링이 독이 든 ‘매킨토시’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비극적 삶을 자발적으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튜링이 남긴 흔적은 화려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유명합니다.

영국 새크빌에 있는 앨런 튜링 기념관의 튜링 기념상.

■ "웹 개발로 정보공유 방식 혁신적으로 바꿨다"

튜링은 1936년 컴퓨터 역사에 획을 그을 논문을 한 편 발표합니다. ’On Computation Numbers ~ '란 논문이지요.

이 논문에서 튜링은 ‘기계’가 아니라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란 주장을 펼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식적인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36년은 빌 게이츠가 도스 기반으로 돌아가는 IBM PC를 선보이기 45년 전입니다. 당연히 ‘컴퓨터=거대한 기계’란 상식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란 주장을 입증한 논문을 쓴 겁니다. 그리고 훗날 컴퓨터산업은 튜링이 예측했던 그 방향 그대로 진화 발전했습니다.

미국 컴퓨터학회(ACM)는 1966년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을 만들면서 이름을 ‘ACM A. M. 튜링상’이라고 붙입니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을 컴퓨터의 기초를 닦은 앨런 튜링에게 헌사한 건 당연한 귀결일 겁니다.

수상자에겐 100만 달러 상금이 수여됩니다. 인텔 후원으로 시작된 이 상은 2007년부터는 구글이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월드와이드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사진=씨넷)

ACM은 4일(현지시간) ‘튜링상’ 2016년 수상자로 팀 버너스 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ACM은 “URL과 웹브라우저 같은 핵심 요소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런 요소들이 통합된 전체의 일부로 어떠헥 함께 작동할 지에 대한 비전을 제공했다”는 말로 팀 버너스 리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웹은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을 엄청나게 바꿔놨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라는 평가도 곁들였습니다.

■ 버너스 리의 뒤늦은 수상, 놀라운 뿐

전 이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란 튜링상이 이제야 팀 버너스 리에게 돌아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문입니다.

튜링상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팀 버너스 리라고 생각합니다. 튜링이 ‘독립된 개체’인 컴퓨터의 토대를 닦았다면, 버너스 리는 ‘컴퓨터들이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팀 버너스 리의 뒤늦은 수상이 다소 의외였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하필이면 웹이 궁지에 몰린 시기에 웹 창시자에게 ‘튜링상’을 안겨준 속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스웨덴 한림원이 1962년에야 존 스타인벡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과 비슷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의 포도’ 같은 뛰어난 작품은 외면하다가 말년의 범작인 '불만에 겨울'에 노벨상을 안겨준 한림원의 결정은 이후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지요.)

미국 IT매체 씨넷이 팀 버너스 리 수상 소식을 전해주면서 “웹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꼬집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요?

씨넷은 웹이 직면한 도전을 ‘가짜뉴스(fake news)’와 스마트폰을 꼽았습니다. 저도 이 진단엔 비교적 공감합니다. 전자는 웹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있구요, 후자는 웹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튜링상’이 뒤늦게 팀 버너스 리의 품에 안기는 걸 보면서 영국 정부가 천재 앨런 튜링과 뒤늦게 화해한 사건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오버일까요?

동성애자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품은 채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던 앨런 튜링은 사후 55년이 지난 뒤에야 명예를 되찾습니다. 영국 정부는 2009년에야 동성애 유죄 판결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팀 버너스 리의 튜링상 수상을 축하하지 않는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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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와이드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는 돈 대신 명예를 택했습니다. 자신의 발명으로 돈을 버는 대신 기꺼이 ‘인터넷 혁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지요.

그런 인물인 팀 버너스 리의 ‘튜링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더불어 이번 수상이 웹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