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8일. 잉글랜드 체셔 주 윔슬로우의 한 조용한 저택에서 시체가 발견됩니다. 사망한 사람은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튜링은 하루 전날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범접 못할 천재.
튜링에겐 생전에 늘 이런 평가가 따라다녔습니다. 실제로 그는 확률, 통계부터 암호학까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없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이니그마’란 독일군의 복잡한 암호체계를 풀어내면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튜링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 당국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했습니다. 수모를 못 견딘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해버렸습니다. 일설에는 튜링이 독이 든 ‘매킨토시’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비극적 삶을 자발적으로 마무리하긴 했지만 튜링이 남긴 흔적은 화려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유명합니다.
■ "웹 개발로 정보공유 방식 혁신적으로 바꿨다"
튜링은 1936년 컴퓨터 역사에 획을 그을 논문을 한 편 발표합니다. ’On Computation Numbers ~ '란 논문이지요.
이 논문에서 튜링은 ‘기계’가 아니라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란 주장을 펼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상식적인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36년은 빌 게이츠가 도스 기반으로 돌아가는 IBM PC를 선보이기 45년 전입니다. 당연히 ‘컴퓨터=거대한 기계’란 상식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코드가 컴퓨터의 핵심이 될 것이란 주장을 입증한 논문을 쓴 겁니다. 그리고 훗날 컴퓨터산업은 튜링이 예측했던 그 방향 그대로 진화 발전했습니다.
미국 컴퓨터학회(ACM)는 1966년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을 만들면서 이름을 ‘ACM A. M. 튜링상’이라고 붙입니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을 컴퓨터의 기초를 닦은 앨런 튜링에게 헌사한 건 당연한 귀결일 겁니다.
수상자에겐 100만 달러 상금이 수여됩니다. 인텔 후원으로 시작된 이 상은 2007년부터는 구글이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CM은 4일(현지시간) ‘튜링상’ 2016년 수상자로 팀 버너스 리를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ACM은 “URL과 웹브라우저 같은 핵심 요소를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런 요소들이 통합된 전체의 일부로 어떠헥 함께 작동할 지에 대한 비전을 제공했다”는 말로 팀 버너스 리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웹은 우리가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을 엄청나게 바꿔놨을 뿐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의 핵심 요소라는 평가도 곁들였습니다.
■ 버너스 리의 뒤늦은 수상, 놀라운 뿐
전 이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란 튜링상이 이제야 팀 버너스 리에게 돌아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문입니다.
튜링상의 취지에 가장 잘 맞는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팀 버너스 리라고 생각합니다. 튜링이 ‘독립된 개체’인 컴퓨터의 토대를 닦았다면, 버너스 리는 ‘컴퓨터들이 연결된’ 네트워크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팀 버너스 리의 뒤늦은 수상이 다소 의외였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하필이면 웹이 궁지에 몰린 시기에 웹 창시자에게 ‘튜링상’을 안겨준 속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스웨덴 한림원이 1962년에야 존 스타인벡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것과 비슷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의 포도’ 같은 뛰어난 작품은 외면하다가 말년의 범작인 '불만에 겨울'에 노벨상을 안겨준 한림원의 결정은 이후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지요.)
미국 IT매체 씨넷이 팀 버너스 리 수상 소식을 전해주면서 “웹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꼬집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 아니었을까요?
씨넷은 웹이 직면한 도전을 ‘가짜뉴스(fake news)’와 스마트폰을 꼽았습니다. 저도 이 진단엔 비교적 공감합니다. 전자는 웹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있구요, 후자는 웹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튜링상’이 뒤늦게 팀 버너스 리의 품에 안기는 걸 보면서 영국 정부가 천재 앨런 튜링과 뒤늦게 화해한 사건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오버일까요?
동성애자란 주홍글씨를 가슴에 품은 채 쓸쓸하게 삶을 마감했던 앨런 튜링은 사후 55년이 지난 뒤에야 명예를 되찾습니다. 영국 정부는 2009년에야 동성애 유죄 판결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팀 버너스 리의 튜링상 수상을 축하하지 않는다는 얘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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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와이드웹'을 발명한 팀 버너스 리는 돈 대신 명예를 택했습니다. 자신의 발명으로 돈을 버는 대신 기꺼이 ‘인터넷 혁명’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지요.
그런 인물인 팀 버너스 리의 ‘튜링상’ 수상을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더불어 이번 수상이 웹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