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제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국가의 철학과 전략이 나와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주도하는 보여주기식, 결과주의 정책들을 내려놓고 민-관이 긴밀히 협력해 새로운 국가전략을 짜야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터넷 산업 진흥과 불필요한 규제 개혁을 전담하는 디지털경제부처를 만들자는 제언도 나왔다.
■“정부, 단기적 성과주의 벗어야”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29일 삼성동 앤스페이스에서 ‘디지털경제 시대, 정부의 경쟁력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전문가 토론회인 굿인터넷클럽을 개최했다.
토론회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디지털경제가 전통 경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 경제 활동이 일어나고, 이 안에서 새롭고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같은 생태계 안에서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중국의 텐센트나 바이두와 같은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이 세계 시장과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형 진흥 정책과, 무분별한 규제가 뒤섞이면서 민간기업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과거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 불렸지만, 이미 글로벌 기업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점점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원인에 대해 한양대학교 신민수 경영학부 교수는 ‘결과주의적’ 정부의 문제를 꼬집었다. 새로운 서비스와 기업이 등장하고 산업 간 갈등이 커지는 반면, 이를 중재해야할 정부가 갈팡질팡 한다는 지적이다. 또 도출된 중재안들도 정부가 일관된 철학을 바탕으로 균형 있게 내놔야 하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진 결과를 내놔 혼란만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어떤 산업의 생태계를 임기 5년 내에 확 바꾸고 1등으로 만들겠다는 과도한 야망 자체가 문제”라면서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정부가 단기간에 산업 전반을 확 바꾸겠다는 방식을 버리고, 하나의 생물처럼 살살 키워내고 산업 생태계를 진화시키겠다는 사고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경제 시대에 우리나라가 뒤쳐져 있다는 현실 진단에 대해 국회 입법조사처 심우민 박사는 “정부가 멋진 결과만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수많은 규제 개혁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정부 권한과 예산에만 신경 쓴 결과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심 박사는 “과거 정보통신부가 잘해서 인터넷 산업이 발전한 것도 있지만 이는 민간이 잘 했기 때문이 더 크다”며 “새 권력자는 민간의 요구를 잘 청취하고 이를 어떻게 국정에 실질적으로 반영할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아시아 추정남 이사도 우리 정부가 중국처럼 산업이 민간 영역에서 잘 발전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단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첨언했다. 나아가 선진 사례를 보고 배우는 것뿐 아니라, 우리만의 국가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이사는 “중국은 어떤 산업이 발전하기까지 지켜보는 단계를 거친 뒤, 발전이 정점일 때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규제를 내 놓는다”며 “중국처럼 우리 정부도 디지털경제 산업 발전을 위한 충분한 비전과 인사이트가 있어야 하되, 다른 나라를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전략과 기획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현실 동떨어진 규제 그만…디지털경제부 만들자”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국장은 디지털 경제로 전환된 현재,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기업에 밀려 세계 경제가 좌우되는 현재,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마냥 국내 기업들만 옥죄는 것은 아닌지 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최 사무국장은 “정부가 4차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새로운 기술들에 대한 투자는 구글과 애플이 가장 많이 한다”며 “우리 정부도 현장에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더 많이 할 수 있는 경제 구조, 국가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정부는 자식과 같은 기업들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은 큰데,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네가 맞을 짓을 했겠지 하며 또 때린다”는 비유를 한 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또 국내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줘 더 많은 삼성전자와 네이버 같은 기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최성진 사무국장은 인터넷 산업의 진흥을 전담하는 ‘디지털경제부’를 만들어 주요한 산업 진흥 정책과 규제 개혁이 이곳에서 주도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뿔뿔이 흩어진 디지털경제 관련 산업 진흥 정책을 한 데 모으고, 시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규제 개혁을 디지털경제부가 담당하자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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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경제부 설립안은 6개 인터넷 주요단체(인터넷기업협회, 게임산업협회, 온라인쇼핑협회,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핀테크산업협회, 인터넷전문가협회)들이 협력하는 디지털경제협의회 주요 안건으로 채택, 새 정부에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디지털경제협의회는 발족식 및 정책 제안 토론회를 다음 달 중순 개최할 예정이다. 또 협의회는 각 정당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확정되면 디지털경제 정책 관련 질의서를 발송해, 차기 정부가 생각하는 발전안을 취합하고 대선 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