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소프트웨어(SW) 회사 아틀라시안(Atlassian)이 프로젝트관리 SW업체 '트렐로(Trello)'를 샀다. 인수 가격은 4억2천500만달러. 한국돈으로 5천억원을 넘는다. 아틀라시안의 최근 연매출은 4억5천만달러를 좀 넘는 수준이다. 트렐로 인수에 1년치 매출의 9할을 쓰기로 했다는 얘기다. 오는 3월께 마무리된다는 인수 소식 자체에 일단 관심이 쏠린 이유다.
들여다보면 더 흥미롭다. 트렐로의 SW제품은, 외형만 놓고 보면 사무실에서 포스트잇 붙여 놓고 쓰는 코르크판을 닮았다. 직원끼리 일정관리나 업무현황 정보를 공유하는 단순한 도구란 얘기다. 게다가 아틀라시안은 트렐로처럼 일정관리 용도로 쓸 수 있는 자체 제품도 보유 중이다. 그래서 공식 발표 내용과는 별개로 인수 목적을 놓고도 여러 상이한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아틀라시안과 트렐로
아틀라시안은 2002년 2월 설립됐다. 본사는 호주 시드니에 있다. 직원 규모는 호주 본사와 미국, 영국 지사를 아울러 1천700명 이상이다. 고객사는 지난해 6만곳을 넘었다. 스타트업을 자처하지만 나스닥 상장사다. 지난해 6월말 마감한 2016 회계연도 연간매출은 4억5천706만달러였다. 전전년도엔 2억1천511만달러, 전년도엔 3억1천952만달러를 기록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꽤 가파른 성장세다. SW개발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협업툴이 아틀라시안의 빠른 성장을 받쳐주고 있다. 아틀라시안의 제품은 커스터마이징을 지원하는 서버 설치형 SW와, 자동 업그레이드 및 원클릭 플러그인 구현을 지원하는 클라우드서비스형SW(SaaS)로 나뉜다.
아틀라시안의 간판제품은 이슈관리툴 '지라(Jira)'와 팀 정보공유를 위한 위키솔루션 '컨플루언스(Confluence)'다. 지라는 프로젝트관리(지라 소프트웨어), 서비스데스크 운영시스템(지라 서비스데스크), 업무흐름 추적 보고 솔루션(지라 코어)으로 나뉘며 고급기능을 위한 유료 플러그인도 따로 제공된다. 컨플루언스는 기본 제품에 일정파악을 위한 '팀캘린더'와 사내 지식관리툴 '퀘스천'이라는 애드온이 따로 제공된다. 이밖에 코드공유시스템 '빗버킷(Bitbucket)', 코드검색툴 '피시아이(Fisheye)', 빌드 자동화툴 '뱀부(Bamboo)', 코드리뷰툴 '크루시블(Crucible)', 디렉토리서비스 '크라우드(Crowd)', 화상회의툴 '힙챗(Hipchat)'도 아틀라시안의 제품 목록에 포함돼 있다.
6만곳에 달하는 아틀라시안 고객사 명단에는 국내에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진 회사도 적지 않다. 금융쪽에선 카드사 비자나 뉴욕증권거래소, 다우존스 등이 쓴다. 기술업계에선 페이스북, 에버노트, 시스코시스템즈, 세일즈포스닷컴, 오라클 등이 쓴다.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는 아우디, 포드, BMW, 볼보, 토요타, 폭스바겐 등이 쓴다. 소비재 유통 업계서는 코카콜라, 코스트코, 이케아, 아디다스, 맥도널드가 쓴다. 미디어 업계에선 뉴욕타임스, 씨넷, 훌루, 넷플릭스, 포브스, BBC 등이 쓴다. 한국에서도 카카오처럼 SW개발인력 보유규모가 큰 인터넷 비즈니스 조직에서 전사 협업툴로 아틀라시안 제품을 도입한 사례가 발견된다.
그런 아틀라시안이 매출 9할을 털어 산 트렐로의 배경도 눈길을 끈다.
트렐로는 SW개발자판 지식인 '스택오버플로'를 만든 유명 개발자 조엘 스폴스키가 2011년 설립했다. 당시 '포그크릭소프트웨어'라는 SW업체에서 프로젝트 관리 기능에 초점을 맞춘 독립 SW제품 회사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이후 5년만에 등록 사용자수 1천900만명을 넘어설만큼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
트렐로의 제품은 업무 관련 정보를 텍스트, 이미지, 링크 등으로 담아 '카드'로 만들고, 이를 용도에 맞게 분류, 배치하고 선택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사용자가 업무 진행 상황에 맞춰 카드를 재배치하는 모양이 마치 사무실 공지용 코르크 게시판에 붙이는 메모지나 포스트잇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디지털 포스트잇'이란 별명을 얻었다.
누가 쓸까? 서비스 기획자, 마케팅 담당자, 디자이너 등 프로젝트 관리 기능을 원하는 여러 직군의 팀을 대상으로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보도에 따르면, 등록 사용자수 1천900만명 중 과반은 SW개발조직이 아니라 '비즈니스팀(business team)' 사용자다. 이들은 구글, 픽사, 어도비 등 소속이다. 이들은 SW개발만으로 수익을 내는 게 아니라 개발팀과 다른 조직의 협업을 통해 전체 사업이 실행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경쟁사 없애기 vs. 시장 확대…아틀라시안의 '큰 그림'은?
기업내 여러 팀의 '프로젝트 관리' 자체에 초점을 맞춘 트렐로와, SW개발 조직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협업툴을 만들어 온 아틀라시안, 둘의 프로젝트 관리툴이 띠는 성격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틀라시안의 주요 제품간 연동이 트렐로 제품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전업 오픈소스SW 개발자로 활동하는 조현종 테드폴허브 대표는 "트렐로를 아틀라시안의 제품과 연동해 사용하는 환경이 아틀라시안 제품만 쓰는 방식보다 긍정적인 협업 효율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인수된 트렐로 제품이 기존 아틀라시안 툴에 연동되는 쪽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했다.
아틀라시안이 이를 노리고 트렐로를 인수한 걸까? 이유를 놓고 전혀 다른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경쟁사 없애기'다. 아틀라시안의 지라, 컨플루언스 위키를 전사 협업툴로 사용하는 회사의 SW개발자 공용준 씨는 "트렐로의 인터페이스는 다른 툴을 쓰지 않는 일반 사용자에게 좋을지 모르지만, 지라 플러그인을 많이 쓰고 있는 회사나 개인 사용자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며 "(아틀라시안의 트렐로 인수는) 경쟁사 없애기 정도의 성격인 것 같다"고 평했다.
다른 하나는 시장 확대다. 공 씨는 "안팔려서 그렇지, 아틀라시안에 (트렐로와) 동일한 SaaS 형태의 서비스가 있다"며 "그 형태의 SaaS를 더 보강한다는 측면을 보면 (시장) 강화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어쩌면 경쟁사 없애기와 시장 확대, 2가지 모두에 해당할 수도 있다. 다만 아틀라시안의 표면적인 명분은 시장 확대 쪽에 가깝다.
아틀라시안 측은 지난 9일 공식블로그의 인수 발표문에서 "우리의 툴을 1억명이 쓰게 하겠다는 미션 성취를 이상적 목표로 세웠다"는 언급을 통해 사용자층 확대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또 트렐로가 구글이나 적십자같은 다국적 조직에서 마케팅 캠페인 관리부터 팀 회의로 도출한 업무 과제 추적까지 온갖 유형의 협업 활동을 시각화하기 위한 툴로 쓰인다고 추켜세웠다. 이어 "우리 제품군에 트렐로를 더해, 팀이 할 일을 지원하는 도구 선택지를 더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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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 발표문에 트렐로 서비스가 독립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언급도 담겼다. 아틀라시안 제품 사용자라면 이제 트렐로도 써 보라는 권유도 있다. 현재 트렐로를 쓰는 유무료 사용자들은 계속해서 트렐로를 독립 서비스로 쓸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럼 경쟁사 없애기는 아닌 걸까. 단정할 수 없다. 아틀라시안은 트렐로 인력들과 협업하고, 이후 R&D 투자를 통해 사업 기반도 다질 계획이다. 그러면서 간판 솔루션인 지라와 컨플루언스에 자신들이 주목한 트렐로의 '유연성'을 녹이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트렐로의 강점을 흡수해 아틀라시안의 프로젝트 관리 제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