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태 대표는 천연페인트를 이용한 공간예술 사업을 하는 지인이다. 그가 20년 전에 '발도르프' 교육을 받으러 독일에 갔다고 한다.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 보이지 않던 공간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사각형 일변도의 우리나라 교실과 다르게 강의실 모양이 모두 달랐다. 벽도 흔한 하얀색이 아니라 파스텔톤의 수채화 색깔이다.
머리 위 천정도 평평하지 않고 기울어진 모양이 다양했다. 우리가 '교실'하면 떠올리는 일직선의 기다란 복도와 통한 직사각형 교실, 한쪽 면 전체가 창문으로 이루어진 성냥곽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압축성장을 향한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우리의 교실공간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강대표는 그들의 머릿속이 궁금했다.
다른 성장환경(이하 도메인이라 부르자)을 가진 상대와의 대화가 항상 호감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대개는 당위성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고 납득하지 못한 이는 복장이 터진다. 수익성과 효율 우선주의를 뼈속까지 학습한 영리기업의 경영자에게 “환경을 생각하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순환 시키자” 말하는 환경운동가는 불편하다. 한편, 자원을 빠르게 고갈 시키면서 순환불능자원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경영활동은 생태경제학자에게 울화통 나는 일이다.
같은 하늘 밑에 사는 사람들간에 철학과 삶을 엮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건강한 사회의 증표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른 도메인 배경의 상대편은 거북한 존재이다.
성장지향의 삶에 길 들여진 나도 예외가 아니다, 다행히 지난 동안 성격이 사뭇 다른 일터를 거쳐왔다. 규모로 보면 다국적기업, 중견기업, 국내외 벤처와 대기업에서 일했고, 업종은 컴퓨터하드웨어, 웹어플리케이션, IT 인프라, 보안 솔루션, 모바일기기, 자동차산업 그리고 비영리재단까지 IT분야 외에도 서로 다른 도메인을 넘나들었다.
직종 역시 시스템 엔지니어, 제조산업 전문가, 영업대표, 마케팅 매니저, 영업본부장, 컨설팅부서장, 최고경영자, 기술연구소장, NPO의 사무국장까지 도메인을 옮길 때 마다 다른 역할이 주어졌다. 학위과정도 세개 대학과 인연을 맺었으니 '도메인 유목민'이라 불리고 싶다. 그럼에도 조직을 옮겨 다른 도메인 출신의 사람과 만나게 되면, 그들과 소통하는 일은 항상 큰 도전이었다.
■ 새 도메인 안착 못하는 건 가치 갈등 때문
최초로 마주치는 문제는 언어 소통이다. 새로운 도메인의 낯선 줄임말과 용어를 이해하는데 보통 6개월이 걸렸다.
용어는 도메인을 특징짓는 가장 큰 속성이며, 나와 다른 도메인 이방인을 구별하고 배척하는 세포벽과 같다. 두번째는 스토리의 공유 문제이다. 도메인에 새로 입주한 사람은 해당 도메인의 예전 역사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이야기에 공감도 안된다. 그런 심리가 드러나는 표정이 서로에게 불편하다. 셋째는 지배가치의 문제이다. 언어와 스토리는 동질적인 문화가 되고, 마침내 도메인의 지배가치로 고착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느 조직이건 친절한 구원자는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새로이 도메인에 들어온 이주민을 안내하고, 도메인 용어를 쉽게 설명해 주며, 스토리를 전수한다. 도메인이 가진 가치에 대하여 이주민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들을 동화시킨다. 동화된 이주민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에 연결시키고 삶을 시작하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도메인 유목민이 되려면, 이러한 구원자를 찾아 도움을 청해야 한다. 아니면, 이주한 도메인의 삶은 갈등과 불행으로 점철될 것이다. 행복한 전원생활을 꿈꾸며 시골로 이주한 도시민이 텃새를 못견디고 되돌아 왔다는 주변의 이야기는 성장도메인이 다른 사람들 간에 벌어진 일이다. 혹자는 3대를 같이 살아야 같은 토박이로 봐줄 정도라고 한다.
새로운 도메인에 안착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지향하는 가치의 갈등 때문이다. 사람간의 갈등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러나, 갈등에도 파괴적 갈등과 건설적 갈등이 있다. 상대를 보는 관점으로 부터 갈등의 형태가 분화된다. 파괴적 갈등은 도메인을 분리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파괴적 갈등은 상대를 없애 버리는 지향을 갖는다. 상대는 적이며, 제거할 악이다. 반면에 건설적 갈등은 극성이 다른 자석처럼 도메인의 다이내믹을 일으키는 힘이다. 건설적 갈등은 상대가 없어지면 나도 없어진다. 상대는 동반자이며, 지켜야할 대안이 된다. 즉 상대의 존재와 활동이 자신의 존재와 활동의 이유와 동력이 된다.
어느날 마을의 동네형이 권투 글러브를 들고 왔다. 코흘리개인 나와 친구에게 글러브를 주더니, "땡"하면서 한번 붙어 보란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흉내를 내며 장난으로 시작한 주먹질은 급기야 상대 아이의 코피와 울음으로 겁나게(?) 끝났다. 집에 들어와서는 코피 터진 친구의 엄마가 우리집에 들이닥칠까 마음 졸였다. 친하게 지내던 죽마고우와 권투 싸움을 붙인 그 형이 매우 얄미웠던 옛 기억이 생각난다.
남을 때려 눕히는 주먹질은 경쟁이지만 파괴적 갈등이다. 그래서 파괴적 갈등의 종착점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생긴다. 이와 다르게, 건설적 갈등은 정반합(正反合)처럼 순환된다. 건설적 갈등 상황에서는 상대와 경쟁하다가 협동하고 또 다시 헤어진다. 이러한 순환을 통해 서로가 같이 성장한다. 그러나 건설적 갈등관계는 상대를 존중해야 경쟁이나 협동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건설적 갈등이 아니라 파괴적 갈등으로 질이 바뀐다.
■ "건설적이고 유기적인 연대가 충만하길"
경쟁전략은 21세기 경영학의 오랜 화두였다. 마이클 포터 교수가 30년 전에 주창한 경쟁전략은 경영학의 고전이 되었다. 그의 5개의 경쟁세력이론, 차별화/가격/집중이론과 가치사슬(네트워크)이론은 경영학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다변화, 복잡화, 국제화되면서 상대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이론은 동력을 잃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는 경제환경을 커다란 클라우드 생태계로 정의하고 상대를 파트너로 간주하는 협동우위(reciprocity advantage)이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제는 경영에도 경쟁보다는 협동의 담론을 시작할 때이다.
협동에는 연대와 담합이 있다. 연대는 결과긍정적이고 담합은 결과부정적인 용어이다. 담합과 연대의 차이는 기득권의 독점의지에서 발생한다. 즉, 기득권 그룹의 협동은 담합이다. 담합은 집단 밖에 배타적이고 장막 뒤에서 벌어지며 정의롭지 못하다. 담합은 파괴적 갈등을 촉발한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개방되고 정의로운 협력은 연대이다. 담합은 도메인의 생명력을 죽이지만, 연대는 공동체의식을 배양하고, 집단의 행복감에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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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기계적연대와 유기적연대를 구분했다. 기계적연대는 동질적이고 몰개성적 사회결합인 반면, 유기적연대는 이질적 개인이 기능적으로 엮어진 사회결합이라 설명된다. 기계적연대에 비해 유기적연대가 보다 발전된 연대로 평가된다. 그러나, 유기적으로 연대한 멤버들도 사심이 생기면 언제든지 담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좋은 연대도 기득권 세력이 되면 사심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상대를 살리고 집단에게 행복감을 주는 건설적이고 유기적 연대가 사회전반에 충만하여, 산업화 압축 성장에서 넓게 벌려진 양극화를 해소하기 바란다. 또한, 경쟁우위 전략보다는 협동우위 전략을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 우리나라 IT업계로 부터 발원되기를 기원한다. 성숙된 촛불집회의 모습에서 그 가능성을 점쳐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