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전세계 Vim 에디터 사용자를 울리다

컴퓨팅입력 :2016/10/31 17:14    수정: 2016/11/01 09:21

애플이 지난 27일 맥북프로 신제품을 공개했다. 사전에 유출된 대로 키보드에서 펑션키를 제거하고 ‘터치바’란 새 인터페이스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이스케이프(esc)’ 키도 휩쓸려 사라졌다. 맥북프로 사용자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발자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신형 맥북프로의 터치바는 가로, 세로 '2170 X 60' 픽셀 크기의 OLED 터치 패널로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는 화면 밝기, 볼륨, 기타 시스템 제어 기능을 보여준다. 사용자가 포토, 메일, 사파리 등의 앱을 실행하면, 터치바는 사용자 작업에 맞는 키를 보여준다. 사파리 브라우저 실행 시 즐겨찾기 목록이 터치바에 표시되고, 메시지 앱 실행 시 최근에 사용했던 이모티콘을 선택할 수 있다.

앱을 실행해 변경된 키를 사용하다가 기본 키를 다시 실행시키고 싶다면, 터치바 화면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쓸어 넘겨야 한다. 기존 펑션(Fn) 키처럼 쓰고 싶을 때는 키보드의 펑션(Fn) 키를 길게 누르면 F1, F2 등의 키들이 나타나게 된다.

esc 키가 타치바에서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기본 화면에 esc 키 모양의 아이콘이 있다. 그러나 기존 하드웨어 키패드 위치와 조금 다른 곳에 위치했다.

처음 esc 키패드가 사라질 것이란 루머에 나온 반응은 터미널 기반 에디터 ‘Vim’ 사용에 대한 것이었다.

유닉스 터미널 에디터인 ‘Vi’와 그 개선버전인 ‘Vim’은 ‘esc’ 키를 핵심이라 할 정도다. ‘Vim’은 코드를 입력하는 ‘인서트 모드’와 각종 명령어를 실행하는 ‘커맨드 모드’를 오가며 사용하게 돼 있다.

인서트 모드는 각종 코드를 입력하는데, 키보드의 키를 누르면 그에 해당하는 문자가 입력된다. 커맨드 모드는 키보드의 각종 키 하나하나를 단축키처럼 쓸 수 있다. h, j, k, l 키는 커서역할이다.

esc 키는 인서트 모드에서 커맨드 모드로 교체할 때 필요하다. Vim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보면 모드 교체가 잦다. 만약 기본적인 설정을 사용하면, Vim 사용자의 컴퓨터 키보드는 esc 키가 가장 많이 닳는다.

신형 맥북프로에서 터치바의 esc 키 아이콘이 작동하지 않거나, 다른 아이콘으로 바뀌어 있다면? 무신경하게 esc 키 위치를 눌렀다가 코드 중 어딘가 Vim 명령어가 들어가게 된다. 애플에서 자랑하는 이모티콘이 소스코드 한가운데 들어간 장면을 상상해보라. Vim을 쓰는 개발자에겐 생산성 저하를 걱정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특히 Vim 에디터 사용자는 마우스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키보드로 모든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을 최고 이점이라 꼽는다. 양손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는 점을 Vim의 미덕으로 삼는데, esc 키를 다른 키에 매핑해 쓴다해도 습관을 바꿔야 하므로 익숙해지기까지 생산성 저하를 무릅써야 할 판이다.

Vim에서 esc 키를 누르지 않는 방법은 다양하다. 컨트롤 키와 대괄호 ‘Ctrl-[‘를 눌러도 된다. 혹은 ‘:imap’ 명령어를 사용해 임이의 키 조합에 esc 키 역할을 매핑할 수 있다. 커맨드 모드서 ‘:imap jj ’ 라 입력하면, ‘jj’ 키로 esc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다.

애플은 맥OS 시에라에서 esc를 다른 키에 매핑할 수 있도록 설정을 만들었다. 시스템 환경설정의 키보드 패널에서 우측 하단 ‘보조키’를 누르면 ‘캡스락’, ‘컨트롤’, ‘옵션’, ‘커맨드’ 등의 키에 esc 키를 할당할 수 있다.

어쨋든 esc 물리 키의 제거로 애플은 Vim보다 emacs 편이었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emacs도 유닉스 터미널에 모태를 둔 텍스트 에디터로 과거 Vi와 함께 에디터계를 양분했다. 본의아니게 애플이 emacs 편을 들었지만, 정작 emacs 창시자인 리처드 스톨만은 애플 제품을 쓰지말라고 수년째 외치고 있다.

우분투 Vim

esc 키뿐 아니라 펑션키가 사라지면서 전반적인 프로그래밍 툴의 기능에도 문제가 생겼다. 대표적인 개발툴 제공업체 젯브레인스의 서포트 블로그에는 신형 맥북프로에서 펑션키와 esc 키 제거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키보드의 fn키를 눌러 펑션키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 해도, 이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새로운 매핑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새로운 매핑 아이디어를 받는다고 페이지도 열었다. 맥북프로의 터치바가 프로그램 가능하기 때문에 젯브레인스 개발툴에 맞게 터치바를 활용할 가능성도 열어뒀다.

애플은 27일 행사에서 새 맥북프로를 소개하면서 전세계에 1천900만 개발자가 존재하는데, 1천900만대의 맥을 판매했다고 자평했다. 데이터의 신뢰성을 차치하고라도, 전세계 개발자들이 맥북프로를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래밍 머신으로 여겨온 점은 분명하다. 맥북프로의 주 고객층이 개발자임에도 개발자 생산성에 저해를 주는 조치를 택한 게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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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스타 에반젤리스트 스콧 한셀만은 트위터에서 새 맥북프로에서 esc 키를 없애 핵심 사용자인 Vim 사용자를 혼란스럽게 했다고 비아냥거렸다.

애플의 신형 맥북프로 공개 후 인터넷 여기저기서 가장 인기있었던 사진은 ‘외장형 esc 키 USB 액세서리’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