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뒤에는 아직도 17만명의 스마트폰 장인들이 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마음으로 갈 생각입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갤럭시S7 언팩 행사 직후 만난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사장의 얼굴엔 결연한 의지가 배여 있었다. 마치 백척간두에 올라 홀연히 생사와 마주해 있는 듯 했다. 당시엔 갤럭시S5 이후 이어진 부진으로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세간의 우려와 걱정이 태산(?)이던 때였다.
세계 곳곳에서 갤럭시의 위세가 예전만 못하고 미국 애플과 중국의 공세에 자칫 샌드위치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이 많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이 바닥에서 한번 밀렸다가 다시 올라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걸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취임한지 갓 두달이 지난 그에게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수장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아버지 산소(山所)에 가서 큰 절하고 왔다"고 했다. 의외였다. '간부들 소집해 전략 짜고 이것저거 지시하느라 밤 샜다'는 대답을 기다리던 기자에겐 그랬다. 그의 입에서 '사장 명함을 그곳에 묻어두고 왔다'는 말이 나올 때는 무언가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이야기가 더 돌았다. 그에게는 제품 몇 대 더 파는 일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고객과 협력사, 조직 구성원간의 신뢰와 믿음이 더 중요해 보였다. 갤럭시의 위기 극복의 일심(一心)을 믿음과 소통에서 찾으려는 듯 했다.
현장에서 고동진 사장이 직접 들고 소개한 갤럭시S7은 넉달 만에 2천600만대가 팔려 나갔다. 솔직히 소문난 잔치 치고는 그리 많이 팔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수그러들던 무선사업부 임직원들의 자신감과 결연함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갤럭시의 근성과 자긍심을 다시 깨웠다.
기자 생활 동안 만난 많은 대기업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아래)가 못난 게 아니다. 위 때문에 일이 잘 안되더라"라고. 어떤 이는 "(높은 사람들이)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아야 성공한다. 솔직히 위가 머리도 없고 아는 게 별로 없다. 공부도 안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올려도 이해를 못하고 다 컷 시키더라. 아랫 사람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데 어떻게 히트상품이 나오겠느냐. 탑 다운이 아니라 바툼 업이 필요하다"고 넋두리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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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사장은 아랫사람 말을 잘 듣는다. 그는 회사 내에서 소통왕으로 불린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믿고 잘 베풀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평소 그의 신조다. 아랫 사람의 뛰어난 재능과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힘이 바로 고 사장의 지혜다. 관료적이고 상명하복 조직에서는 개인의 창의적 신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줄 서는 문화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기막힌 작품이 나오기 어렵다. 요즘 삼성전자 수뇌부가 스타트업 문화를 사내 조직에 이식하려는 궁극적인 목적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유로운 소통 문화, 별난 아이디어, 즐겁고 재미있는 상상력, 인류애, 약자를 위한 포용과 배려 등등 말이다.
오늘 밤 자정 미국 뉴욕에서 삼성전자의 새로운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이 세상에 공개된다. 원래 대화면 패블릿 시장을 개척한 갤럭시노트 시리즈의 6번째 제품이지만 갤럭시S7과 시너지를 위해 숫자 6 대신 7을 붙였다고 한다. 고 사장은 숫자 7과 17만 임직원들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그의 또 한번의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