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망중립성 공방, 오바마 승리로 결론?

항소심서 'ISP 재분류' 권한 인정…확정 가능성 많아

방송/통신입력 :2016/06/20 13:57    수정: 2016/06/20 22:1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망중립성 원칙을 확립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미국 워싱턴 D.C 항소법원이 지난 주 망중립성 원칙을 규정한 오픈인터넷규칙에 대해 합법이란 판결을 내놓으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힘을 받았다. 이로써 2010년과 2014년 항소법원에서 두 차례 패소했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년 만에 빚을 갚는 데 성공했다.

소송에서 패소한 AT&T 등이 취할 수 있는 행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판결을 한 D.C 항소법원에 전원합의체 재심리(en banc)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11명으로 구성된 판사들이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번 소송에선 3명의 판사들이 심리해 2대 1로 FCC 승소 판결이 나왔다.

톰 휠러 FCC 위원장 (사진=씨넷)

또 다른 선택은 항소법원을 건너 뛰고 대법원에 상고하는 것이다. FCC가 월권을 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AT&T, 버라이즌 등은 판결 직후 즉시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대법원이 역사적인 망중립성 소송의 상고를 받아줄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우리와 달리 상고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대법원의 상고 허가 비율은 1%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14년 재판 때도 규제 권한은 인정…ISP 법적 지위 때문에 패소

FCC가 망중립성 공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2014년의 패배를 잘 활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선 2014년 판결문을 살짝 들쳐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역시 ‘오픈인터넷 규칙’을 다룬 당시 재판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FCC 패소 판결을 하면서 망중립성 원칙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부분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our task as a reviewing court is not to assess the wisdom of the Open Internet Order regulations, but rather to determine whether the Commission has demonstrated that the regulations fall within the scope of its statutory grant of authority."

지난 2014년 12월 망중립성 관련 토론회 도중 일부 시민들이 ISP 재분류 요구를 하고 있다. (사진=씨넷)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오픈인터넷 규칙’의 지혜를 평가하는 게 자신들의 임무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FCC가 오픈인터넷 규칙을 통해 망중립성을 규정할 권리가 있는지를 판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였다.

2014년 재판부가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미국 통신법 제706조였다. 1996년 제정된 통신법 706조는 FCC가 오픈인터넷규칙을 만든 근거 조항이다.

이 부분에 대해 2014년 항소심 재판부는 통신법 706조가 FCC에겐 ‘안전규정(fail-safe)’이라고 해석했다. fail safe란 “기계가 고장나서 폭주할 우려가 있을 경우 재해를 막을 수 있는 안전기구”란 의미다. 마땅한 다른 규정이 없을 경우 FCC가 쓸 수 있는 근거 조항이란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CC가 2014년 소송에서 패소한 것은 ‘권한을 넘은 행동’ 때문이었다. FCC가 오픈인터넷 관련 규정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정보 서비스사업자에게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당시 항소법원 판결의 골자였다.

항소법원 재판부는 아예 제대로 규제하려면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를 통신법 706조 타이틀2로 재분류하라는 권고까지 했다.

■ 톰 휠러, 이번엔 ISP 재분류하면서 분쟁 씨앗 잘라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이번에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FCC의 망중립성 관련 규정에 합법 판결을 한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통신법 706조가 부과한 권한 내 행동이란 측면에서 보면 크게 하자가 없기 때문이다.

FCC는 2010년 마련한 오픈인터넷 규칙이 2014년 항소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뒤 절치 부심하면서 새로운 규정을 준비했다. 그 사이에 FCC 위원장도 제나초우스키에서 톰 휠러로 바뀌었다.

통신 로비스트 출신인 톰 휠러가 FCC 위원장으로 오면서 한 때 망중립성 원칙이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휠러 FCC 위원장은 예상보다 훨씬 강한 수를 들고 나왔다. 유선 뿐 아니라 무선 사업자에게도 ‘커먼캐리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강력 망중립성 원칙을 준비한 것.

휠러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새 망중립성 원칙을 위원들에게 회람한 뒤 두 달 뒤인 4월에 공식 발표했다. 그러자 통신사업자들이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방을 벌이게 됐다.

이번 항소심에서 통신사업자들은 FCC가 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한 것은 의회가 부여한 권한을 벗어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FCC가 오픈인터넷 규칙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도 함께 내놨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이 두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 직후 톰 휠러 위원장이 “FCC가 인터넷 보호를 위해 좀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 부여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 "산업 재분류엔 이견 없어…대법원 수용 가능성 낮아"

이제 관심은 통신사업자들의 상고를 대법원이 받아들일 것이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대체로 ‘상고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 단체인 공공청렴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에 따르면 리드 헌트 전 FCC 위원장은 항소심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낸 스티븐 윌리엄스 판사 조차도 FCC가 ISP를 재분류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리드 헌트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FCC 위원장을 역임했다.

다만 윌리엄스 판사는 FCC가 재분류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면서 일부 반대 의견을 냈다. 반면 데이비드 타텔과 시리 스리니바산 판사는 FCC의 오픈인터넷 규칙에 대해 지지 판결을 했다.

미국 대법원. (사진=미국 대법원)

윌리엄스 판사는 1996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다. 반면 데이비드 테이틀 판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 스리니바산 판사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각각 지명했다.

2대 1로 결판난 이번 소송에서 FCC가 ISP를 타이틀2로 재분류할 권한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선 사실상 만장일치 판결이 나온 셈이다. 헌트 전 위원장은 공공청렴센터와 인터뷰에서 “(망중립성 이슈는) 사실상 법적인 논쟁은 끝난 것이란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통상적으로 대법원은 하급법원 판결이 엇갈릴 경우에 상고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 데 이번 건은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망중립성 공방이 끝났다고 보긴 힘들다. 통신사업자들은 의회를 통해 FCC의 오픈인터넷규칙을 무력화할 좀 더 강력한 법 제정 쪽에 힘을 실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케이블방송통신협회(NCTA)는 망 투자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의미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