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푼다는 정부 그 규제 원하는 업계

[이균성 칼럼]보조금 상한제의 아이러니

홈&모바일입력 :2016/06/14 16:51    수정: 2016/06/14 17:37

정부는 기를 쓰고 규제를 푼다고 하고 업계는 규제를 풀면 큰일 난다고 아우성치는 이상스러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관계는 견제와 협조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대개 기업이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로서는 기업 외에 소비자와 근로자 등 또 다른 경제 주체가 있기 때문에 이의 조화를 위해 필요한 규제를 하는 게 불가피하다. 그런 관계가 보통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은 규제법이다. 휴대폰 보조금이 대상이다. 지급하는 보조금을 공시함으로써 소비자 차별을 없애는 것과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해 보조금의 상한을 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규제의 목적은 소비자 차별 금지와 과열 경쟁 방지다. 그런데 이중 상한제를 놓고 정부는 기를 쓰고 폐지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이동통신 3사는 시장 왜곡을 우려해 반대 뜻을 밝히고 있다.

정부가 기를 쓰고 폐지하겠다고 한다지만,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정부’가 어딘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 법 소관부처는 방송통신위원회다. 방통위는 단통법의 정책 취지가 시장에서 반영되고 있고, 상한제는 3년을 시한으로 없어지게 되어 있으며, 그 시한도 얼마 안 남은 만큼 굳이 서둘러 폐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계속 견지해왔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폐지키로 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관련 보도가 이어지는데도 방통위는 또렷하게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실무 담당 국(局)과 대변인 그리고 상임위원 이야기가 서로 겉돈다. 그래서 제기되는 게 ‘압박說’이다. 주무부처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통위보다 센 어느 곳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문제로 청와대-기재부-방통위 등이 실제로 만나 논의하기는 한 것 같다.

문제는 말이 논의지 사실은 일방적 지시가 내려온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방통위는 이를 폐지하지 않는 게 낫다는 판단을 여전히 하고 있는데 청와대 큰 정책인 ‘규제 완화’에 맞출 수밖에 없도록 떠밀려가는 형국이 조성돼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보도에 대한 방통위 대응이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방통위 특수성을 외면한 점이다.

방통위는 여야 상임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최종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제 기구다. 사무국에서 검토한 바를 상임위원회에 올리고 거기서 결정하게 된다. 사무국이 어떤 의결을 원한다면 상임위원들에 대한 세밀한 사전 보고와 설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건을 놓고는 그 과정이 생략됐다. 청와대의 행정적인 지시가 비교적 일사분란하게 하달되고 시행되는 독임제 부처를 다루듯 한 것이다.

이 제도의 폐지를 반대하는 편인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이 회의석상에서 거친 소리를 한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이 문제에 비교적 정통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청와대와 기재부의 요구에 방통위도 어느 정도 동의를 했던 것 같다. 6월말에 발표할 범부처 규제완화 정책이 방통위에도 요구됐는데 그 시점까지 딱히 완화할 정책은 없고 그러자 상한제 폐지 건이 돌출됐는데 강하게 반대하지 못한 것이다.

이 전문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상한제 폐지說’은 주무부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규제완화 정책에 굴비처럼 엮여 들어간 것이다. 단지 모양을 갖추기 위해 중요한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시장에 혼선을 불러오는 셈이다. 일사불란한 것도 좋지만 시장마다 개별적인 특수성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기업이 바라지 않는 규제 완화를 분란을 일으키면서 억지로 할 이유가 있을까.

상한제는 사실 구조적으로 볼 때 유명무실한 규제다. 공시 제도가 정착된 상태에서는 상한(현재 33만원)을 넘어 보조금을 지급하기가 쉽지 않다. 단통법 시행 이전에는 소수에게 집중적으로 보조금을 살포하기 때문에 단말기 가격 이상의 지원금도 나왔지만 지금은 공시를 통해 모두에게 똑같이 줘야 하는 탓에 큰 금액을 책정할 수가 없다. 실제로 지금까지 상한의 보조금을 지급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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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이통사로서는 이를 폐지한다 한들 큰 문제는 없다. 그럼에도 이통 3사가 상한제 폐지를 반대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시장은 이제 요금과 서비스 경쟁으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그게 미래 성장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고 쓸 모 없는 논쟁에 말려들지 않으면서 본질적인 사업 강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상한이 폐지된다면 가능성은 낮지만 시장은 또 복마전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경제 촉진 효과를 장담할 수 없으면서 시장을 복마전으로 끌어갈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