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전쟁 5년 어떻게 진행됐나

디자인 다룬 1차는 대법에…2차는 삼성이 역전

홈&모바일입력 :2016/03/22 14:19    수정: 2016/03/22 16:2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난 번엔 삼성이 이겼다더니. 또 상고를 받아들였다는 건 뭐지?”

이쯤 되면 웬만큼 뉴스를 보는 사람도 헷갈릴 정도입니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얘기입니다. 미국 대법원이 21일(현지 시각) 삼성이 접수한 상고신청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불과 20여 일 전에는 삼성이 항소심에서 역전승했다는 뉴스도 나왔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분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합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한 때 전방위 전쟁 중이던 두 회사는 지금은 미국에서만 특허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두 회사가 벌이고 있는 소송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2011년 4월 15일 애플 제소로 시작된 1차 특허소송입니다. 대법원이 삼성 상고를 받아들였다는 게 바로 이 소송입니다.

삼성과 애플간 1차 특허소송 법정 스케치. (사진=씨넷)

둥근 모서리를 비롯한 디자인 특허와 핀치 투 줌, 탭 투 줌, 바운스백 등 상용특허가 쟁점인 이 소송은 2012년 8월 1심 평결이 나왔습니다. 당시 삼성은 10억 달러란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부과받았습니다. “삼성이 고의로 특허 침해했다”면서 징벌적 제재로 가까운 평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조금 달라지면서 지금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습니다.

■ 2012년 8월 1심 평결 땐 애플 완승 분위기

애플은 1차 소송 소장을 접수한 이듬해 또 다시 삼성을 제소합니다. 2차 소송의 포문을 연 겁니다. 디자인 특허에 초점을 맞춘 1차 소송과 달리 2차 소송에선 상용 특허를 대거 무기로 내세웠습니다.

갤럭시 넥서스를 비롯한 삼성 폰들이 ▲단어 자동 완성(특허번호 172)을 비롯해 ▲여러 종류 데이터 중 특정 데이터를 구분해서 실행할 수 있는 데이터 태핑 특허(647) ▲시리 통합 검색(959) ▲데이터 동기화(414) ▲밀어서 잠금 해제(721)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1차 소송과 달리 2차 소송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본 작동 원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소송 대상은 삼성이지만 구글도 남의 일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삼성과 애플 특허소송 1심을 담당한 루시 고 판사

둘은 2012년 중반 무렵부터 본격적인 공방을 벌입니다. 일단 그 해 8월 1차 소송 1심 배심원 평결이 나왔습니다. ‘배상금 10억 달러 대 0’란 결과에서 보듯 삼성의 완패였습니다.

특히 삼성은 재판 과정에서 갤럭시 폰 개발과 관련한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적잖은 곤혹을 치뤄야 했습니다. 삼성 입장에선 ‘벤치마킹한 자료’이지만 배심원들은 ‘고의적 특허 침해’증거라 간주했습니다. 징벌적 제재에 가까운 10억 달러 배상금이 부과된 건 그 때문입니다.

두 회사 1차 소송 1심 재판은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주재하는 루시 고 판사가 일부 배상금 산정이 잘못됐다면서 새로운 재판을 열도록 명령한 때문입니다. 결국 두 차례 배심원 평결 끝에 9억3천만 달러 배상금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게 2014년 초였습니다.

■ 2차 특허소송 1심 때부터 삼성 반격 시작

하지만 둘의 승부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불을 뿜었습니다. 상용 특허가 중심인 2차 특허 소송이 2014년 4월 시작된 때문입니다.

디자인 특허는 눈에 확 띄기 때문에 일반인인 배심원의 시선을 끌기 쉽습니다. “봐라, 이거 똑 같이 베낀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용 특허는 다릅니다. 복잡하고 지리한 기술 공방을 벌여야 합니다. 1차 소송에서 ‘카피캣’이란 오명을 썼던 삼성 입장에선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셈입니다.

예상대로 2차 소송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이번에도 삼성이 ‘특허 침해’했다는 판결엔 변함이 없었습니다. 삼성은 데이터 태핑을 비롯해 단어 자동완성과 밀어서 잠금 해제 등 애플 특허 3개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삼성과 애플간 특허 소송 1심 재판이 열린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사진= 씨넷)

하지만 삼성에 부과된 배상금은 1억1천96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배심원들이 애플 요구액의 20분의 1만 인정한 겁니다.

삼성 입장에서 더 고무적인 건 따로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된 특허 소송에서 사상 처음으로 애플에 배상금을 부과하는 데 성공한 겁니다.

배심원들은 애플 역시 삼성의 디지털 이미지 및 음성 기록 전송 특허(449)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애플에도 15만8천400달러 배상금을 부과했습니다. 소액이긴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는 적지 않았습니다.

두 회사 소송은 이 때부터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차 소송이 진행될 무렵 상급법원인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또 다른 소송에서 애플 핵심 무기인 ‘데이터 태핑 특허권’의 범위를 굉장히 좁게 해석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삼성의 승소 가능성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건 이 무렵입니다.

■ 항소심 때부터는 분위기 완전히 반전

2차 특허 소송 1심 재판을 끝낸 두 회사는 2015년 들어 다시 1차 소송 항소심에 돌입했습니다. 1차 소송 항소심의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디자인 특허 침해 (둥근 모서리를 규정한 D677 특허권. D677에 베젤을 덧붙인 D087, 검은 화면에 아이콘 16개를 배치한 D305 특허)

2. 상용특허 침해 (핀치 투 줌, 탭 투 줌, 바운스백)

3.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1차 소송 항소심 결과는 2015년 5월 나왔습니다. 여기서 삼성은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부분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받습니다. 트레이드 드레스란 특정 제품 고유의 분위기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딱 보면 아이폰 같잖아”란 느낌입니다.

이 판결 덕분에 삼성은 배상금을 또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이제 1차소송 배상금은 9억3천만 달러에서 5억4천800만 달러로 경감됐습니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 항소심이 열리는 연방항소법원. (사진=연방항소법원)

삼성은 곧바로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힙니다. 그런데 삼성은 여기서 선택을 합니다. 항소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사항 중 디자인 특허 침해 부분에 대해서만 상고를 한 겁니다.

결국 항소심이 끝난 시점에서 삼성의 상용 특허 침해 건은 판결이 최종 확정됐습니다. 반면 항소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힌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건은 1심이 열렸던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으로 파기 환송됐습니다. 애플이 이 판결을 그대로 수용한 때문입니다.

삼성과 애플 두 회사는 이달 말부터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서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 관련 부분을 놓고 새로운 배심원 재판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상급법원에서 파기 환송됐기 때문에 3억9천900만 달러 배상금을 놓고 다시 공방을 벌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 데이터 태핑 등 애플 핵심 특허권 무력화

그런데 2월말에 두 회사 특허 소송의 흐름을 완전히 갈라버린 판결이 나옵니다. 특허 전담인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2차 특허 소송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겁니다.

삼성이 애플의 ‘데이터 태핑 특허(특허번호 647)’를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판결한 겁니다. 연방항소법원은 또 나머지 쟁점인 ▲단어 자동완성(172)▲밀어서 잠금 해제(721) 특허는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덕분에 1심 재판부가 삼성에게 부과했던 1억2천만 달러 배상금은 전부 사라지게 됐습니다.

반면 애플이 삼성 특허를 침해했다는 판결은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15만8천 달러 배상금도 그대로 남겨뒀구요. 이 판결로 삼성과 애플 간의 2차 특허소송은 승부가 180도 바뀌어버렸습니다. 계속 수세에 몰리던 삼성이 막판에 역전골을 넣은 형국으로 바뀐 거지요. 이젠 애플이 대법원 상고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삼성이 2012년 초 출시한 갤럭시 노트. 애플은 2차 특허 소송에서 갤럭시 노트를 비롯한 주요 기기들이 '데이터 태핑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씨넷

그리고 오늘 미국 대법원이 디자인 특허 부분에 대한 삼성의 상고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삼성이 신청한 상고 사유 중 ‘디자인 특허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 미흡’ 부분은 기각하면서 ‘배상금 산정 기준’ 문제만 다루겠다고 밝힌 겁니다.

5년 가까이 걸린 애플과의 특허 소송을 통해 삼성은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처음 애플이 특허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입지가 그다지 단단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 최고 기업이 소송을 걸어주면서 적잖은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물론 초기엔 아픔도 많이 겪었지요. 특히 1차소송 1심 평결이 나오던 2012년 8월 무렵엔 ‘카피캣’이란 비아냥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둥근 모서리’를 비롯해 밀어서 잠금 해제 같은 애플 특허가 연이어 무효 판결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스포츠 경기도 흐름이 한번 바뀌면 승부의 추가 걷잡을 수 없이 바뀌는 편이지요.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소송이 딱 그런 모양새입니다.

디자인 특허가 쟁점인 1차 소송은 대법원이 심리할 경우 삼성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산업 시대에 적용했던 ‘제품 전체 가격을 기준으로 한 배상금 산정’이란 미국 특허법 289조 자체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법원 (사진+씨넷)

반면 데이터 태핑 특허 침해 무효 판결에 대해선 반대 상황입니다. 애플이 상고하더라도 대법원이 받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미국 대법원은 새로운 판례를 확립할 필요가 있거나, 하급 법원 판결에 심대한 흠결이 있을 경우에 한해 상고를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이터 태핑 특허에 대해선 이미 상당수 법관들이 삼성 쪽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하급법원 판결에 심대한 흠결이 있다고 보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겁니다. 게다가 최근 미국 대법원이 소프트웨어 특허에 대해선 굉장히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점 역시 애플에겐 불리한 부분입니다.

■ 현재 남은 재판은 세 개…대부분 삼성이 유리

자, 이제 정리해볼까요?

삼성과 애플간 특허 소송은 현재 크게 세 가지 재판이 남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미국 대법원에서 시작될 1차 특허소송 상고심입니다. 여기선 디자인 특허 침해 때 전체 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배상금을 산정하는 것이 합당한지 여부에 대해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두 번째는 2차 특허소송 입니다. 항소심에서 패소한 애플이 상고 신청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법원이 애플 상고를 받아줄 경우 상고심이 열리게 됩니다. 만약 대법원이 기각하면 이 재판은 1심이 열렸던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으로 파기 환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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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남아 있는 게 1차 특허소송 판기 환송심입니다. 항소법원이 삼성의 트레이드 드레스 침해에 대해 1심 판결을 뒤집은 부분이지요. 이 부분은 1심 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게 됩니다.

당초 이 재판은 이 달말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이 삼성의 상고를 수용하면서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쩌면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뒤 병합 심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