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은 왜 '삼성 비침해' 선고했나

판결문 분석…"분석서버 있는 애플특허와 달라"

홈&모바일입력 :2016/02/29 11:37    수정: 2016/02/29 15:2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안드로이드 진영을 옥죄던 애플의 칼날이 무뎌졌다. 그 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데이터 태핑’ 특허(특허번호 5, 946, 647)가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이다.

‘데이터 태핑’은 초기 아이폰에서 굉장히 편리한 기능이었다. 문자 메시지로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를 보내올 경우 곧바로 해당 기능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웹 페이지를 누르면 바로 관련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면 곧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이다. 이 특허 기술이 ‘퀵링크’로도 불리는 건 그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 2012년 2월 8일 삼성을 제소하면서 이 특허권을 핵심 무기로 사용했다. 2년 여 공방 끝에 2014년 5월 삼성에 1억2천만 달러 가량의 배상금이 부과된 것도 이 특허권 때문이었다.

삼성이 2012년 초 출시한 갤럭시 노트. 애플은 2차 특허 소송에서 갤럭시 노트를 비롯한 주요 기기들이 '데이터 태핑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사진=씨넷)

그런데 특허 소송을 전담하는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이 지난 26일(현지 시각) 1심 법원 판결을 기각하면서 삼성이 날개를 달 수 있게 됐다. 안드로이드에서 구현되는 ‘퀵링크’ 기능이 애플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은 것으로 본 때문이다.

당연히 궁금증이 뒤따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 같은 기능인데 왜 특허 침해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걸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문을 면밀히 살펴봤다.

■ 항소법원, 모토로라 소송 때부터 분석 서버 강조

사실 관계부터 살펴보자. 애플이 특허청에 제출한 647 특허권 문건은 “분석 서버가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받은 데이터 구조를 탐지한 뒤 관련된 행위를 하도록 연결해준다”고 규정돼 있다.

애플은 삼성 스마트폰의 브라우저와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 647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 두 가지 애플리케이션이 647 특허 중 청구조항 9번을 위반했다는 것이 애플 주장이었다.

청구조항 9번에는 “출력 기기가 연결된 링크의 팝업 메뉴를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이용자 인터페이스가 적절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1번 청구조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번 조항에 따르면 애플의 647 특허를 구현하기 위해선 ▲데이터 수신을 위한 입력 기기 ▲데이터 표출을 위한 출력 기기 ▲프로그램 루틴을 포함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등으로 구성된다.

애플 647 특허 개념도. 왼쪽 두 번째에 있는 분석서버가 이번 소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진=미국 특허청)

또 메모리에는 데이터 구조를 분석한 뒤 적절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분석 서버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분석 서버다.

항소법원은 ‘분석 서버’에서 구동된다는 부분이 애플 647 특허의 핵심 부분이라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애플의 특허는 ‘분석 서버를 활용한 데이터 태핑 기능’에 한해 독점적 권한을 갖는다는 게 항소법원의 판단이었다.

항소법원이 이런 판례를 처음 확립한 것은 2014년 애플과 모토로라간 특허 소송이었다. 당시 항소법원은 “분석 서버는 데이터를 수신하는 클라이언트와 분리된 서버 루틴”이라고 해석했다. 흔히 ’클라이언드-서버’라고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개념을 그대로 원용한 것이다.

모토로라와 소송 당시 애플은 ‘분석 서버’를 ‘프로그램 루틴’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당시 애플은 “분석 서버가 클라이언트 (프로그램)과 분리될 필요는 없다”고 맞섰다.

■ 애플, 공판 최종일 직전까지 종전 입장 되풀이

하지만 연방순회항소법원은 2014년 재판 당시 애플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과 애플 간의 이번 항소심 판결문에는 “당시 애플은 (특허출원 문건에서) ‘분석 서버’란 부분을 제거하더라도 나머지 권리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처럼 주장했다”고 명기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특허 소송 항소심을 전담하는 법원이다. 따라서 애플 입장에선 이번 소송에 임하면서 모토로라 때 확립한 항소법원의 판례를 뒤집을 방안을 고민해야만 했다.

하지만 판결문에 따르면 애플은 항소심 공판 종료 전날까지 종전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연방항소법원. 특허소송 항소심 전담 법원이다. (사진=위키피디아)

판결문에 따르면 애플은 삼성 브라우저와 메신저 소프트웨어 코드 일부가 프로그램 라이브러리에 저장돼 있는 부분을 문제 삼았다. 이 코드들이 기능을 ‘탐지’한 뒤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분석 서버란 게 애플 주장이었다.

그런데 항소법원은 “클라이언트는 프로그램 라이브러리에 접속한 뒤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코드를 빌려온다”면서 “따라서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은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의 일부로 구동된다”고 판단했다.

반면 애플 측 증인으로 등장한 전문가들은 항소법원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항소법원 판결문에는 “애플 전문가들은 공판 최종일 전날까지도 분석서버가 분리된 소프트웨어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애플 측은 항소심 공판 마지막날 입장을 바꿨다. 항소법원이 2014년 모토로라 재판 때 확립한 판례에 따라 삼성 갤럭시 폰이 647 특허 침해를 했다는 주장을 한 것.

애플 증인은 “메신저 같은 삼성 애플리케이션이 분석서버가 있는 코드로 간 뒤 그것을 이용한다”면서 “따라서 제소된 삼성 소프트웨어(즉 브라우저와 메신저)는 분리된 ‘분석 서버’다”고 주장했다.

특히 애플 측은 공유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은 메모리의 별도 부분에 저장돼 있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과 분리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상태에서 메신저와 브라우저로부터 데이터를 수신한 뒤 관련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애플의 이런 주장은 “이성적인 배심원들이 삼성 소프트웨어가 분석 서버란 제한 조건을 만족시킨다고 결론내리기엔 불충분한 증거다”고 지적했다.

■ 항소법원 "삼성 폰 메신저-브라우저는 분리된 프로그램 아냐"

일단 항소법원은 메모리의 별도 공간에 저장돼 있다는 점만으로는 분리된 분석 서버로 보기엔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은 2014년 ‘애플 vs 모토로라’ 소송 때 확립된 판례다.

항소법원은 아예 애플 특허 문항에 있는 ’분석서버’는 별도로 분리된 구조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일반적으로 ‘서버’라고 할 때 연상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구조로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석 서버는 그것이 지원해주는 프로그램과는 별도로 구동되어야만 한다고 항소법원은 강조했다.

반면 삼성 쪽 증인들은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 프로그램은 그것을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의 일부라고 반박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 (사진=씨넷)

항소법원은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애플이 특허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삼성 브라우저와 메신저가 ‘독립된 프로그램이 아니다’고 판단한 것.

그렇기 때문에 애플 647 특허권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퀵링크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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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법원은 “삼성과 애플 전문가들의 증언을 통해 (삼성 갤럭시 폰의) 메신저와 브라우저는 공유 라이브러리 코드를 ‘이용’하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별도로 구동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고 명기했다.

결론적으로 항소법원은 “이성적인 배심원들이라면 누구나 특허 침해 혐의를 받은 삼성 기기들이 ‘데이터 구조를 탐지한 뒤 관련된 행위를 하도록 연결해주는’ 분석 서버를 갖고 있는 것으로 결론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삼성 손을 들어줬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