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서 전진한 하사비스, 특히 인상적"

'알파고 아버지' 특강 수강한 카이스트 학생의 감상

과학입력 :2016/03/11 18:17    수정: 2018/03/11 11:02

김신 카이스트 석사과정

“이미 예약자도 받았다던데요. 기자들도 엄청 많고, 들어가서 보기 힘들걸요?”

사시사철 조용한 카이스트(KAIST) 캠퍼스가 모처럼 붐볐다. 구글 알파고 개발자인 데미스 하사비스 때문이었다. 이세돌 9단과 2차례 대국을 연이어 승리한 덕분이었다. 방송사 카메라와 기자들로 행사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엄청나게 붐볐다. 학생들이 긴 줄을 서서 자신도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원래 우리 연구실에서도 다같이 강연을 들으려 했다. 하지만 열명 가까운 인원이 앉을 자리를 도저히 확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강연장으로 향했다. 갈 땐 호기롭게 “영상까지 찍어오겠다”고 큰소리쳤다. 점심도 포기하고 두 시간 전에 서둘러 갔지만 이미 강연장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던가?”란 말이 절로 나왔다.

겨우 구석진 자리를 하나 잡고 앉을 수 있었다.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면 나도 다시 못 들어오겠구나 싶었다.

카이스트에서 열강하고 있는 데미스 하사비스. (사진=뉴스원)

■ 대국 응해준 이세돌 9단에 감사와 존경 표시

사실 난 바둑은 잘 모른다. 흰 돌과 검은 돌로 승부를 겨루는 유서깊은 보드 게임 정도로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바둑 선수는 ‘응팔에 나왔던 최택’ 정도다.

머신 러닝이나 딥 러닝에 대해서도 아주 깊이 있는 지식은 없다.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아는 수준이다.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뜨거운 이슈가 생길 때마다 내게 묻는 분들이 꽤 많다. 힉스 입자가 발견되었을때 그랬고, 최근에 있었던 중력파 검출 발표때도 그랬다. 하지만 카이스트 석사과정 학생이라고 모든 분야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알파고는 다를 것 같았다. 그래도 평소에 간단한 코딩은 조금 하니까, 뭐라도 들어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큰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과연 세계적인 연구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조금이라도 살펴보고픈 욕구도 적지 않았다.

하사비스의 강연은 원론부터 시작해 복잡한 이론적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반적인 학습 알고리즘에 대한 설명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데미스 하사비스의 강연 장면. 워낙 사람들이 많아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하사비스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들 때 처음엔 게임부터 시작했다. 이날 강연에서 하사비스는 게임을 처음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게임은 무제한적인 트레이닝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바이어스(bias)가 없을 뿐 아니라 진행 과정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곤 퐁(Pong) 게임 같은 간단한 초기 게임들을 학습한 AI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여러 개 보여줬다.

학습한 게임 수에 따라서 인공지능의 게임 실력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마냥 멀게만 느껴지던 딥 러닝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이렇게 분위기를 띄운 하사비스는 본격적으로 알파고 얘기를 했다. 그는 알파고를 개발하면서 하필 바둑을 택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그대로였다. 바둑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복잡한 게임이란 것. 그래서 계산과 동시에 직관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알파고를 개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곤 알파고의 알고리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복잡한 알고리즘 얘기는 전공 분야 학생이 아니면 쉽게 알아듣긴 힘들다. 자세한 알고리즘 얘긴 이미 여러 언론에서 조금씩 다뤘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다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무래도 가장 큰 관심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사비스는 알파고 개발이 끝나고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땐 이미 개발팀에 있는 사람들의 바둑 실력을 넘어선 상태여서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프로 바둑 기사와 대결을 벌이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해 판후이 2단에 이어 바둑 최고수인 이세돌 9단과 연이어 대결한 건 그 일환이라고 했다.

어제 이세돌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프로그래머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 점에선 하사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계 최고 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과 대결해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세돌 9단이 남은 경기를 잘 치뤘으면 좋겠다고 그를 응원한다고 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 "매 순간 수 없이 많은 실수 했다"

하지만 이날 강연에서 진짜 내 관심을 끈 건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질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박사과정 선배가 던진 질문이 두고 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 분은 “성공 스토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본인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고 질문했다.

나도 굉장히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솔직히 알고리즘이라든가 AI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질의응답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이 문제와 관련된 하사비스의 생각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실수에 대한 질문은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것 같아 귀가 쫑긋해졌다.

강의를 마치고 떠나는 하사비스. 간신히 한 컷 찍을 수 있었다.

이 질문에 대해 하사비스는 겸손한 듯 하면서도 굉장히 자신감있게 대답했다. 자신도 매 순간 수 없이 많은 작은(micro) 실수들을 겪었기에 일일이 나열하기에도 너무 많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거시적인(macro) 관점선 가고 있는 길에 늘 신뢰를 갖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이날 강연에서 그가 설명한 수 많은 얘기들보다 그 말 한 마디가 더 크게 와 닿았다. 매 순간 순간이 좌절과 낙담, 실패의 연속인 대학원생에게는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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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끝나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오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사람 많은데서 카메라, 노트북 챙겨가면서 강연을 듣느라 엄청나게 체력을 소모한 탓이었다. 온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머리는 어질어질, 다리는 후들후들. 한시간동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체력을 소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고 내 컴퓨터에 앉으니, 워드 프로세서를 실행시키다 말고 에러 메시지를 띄우는 나의 소중한 데스크톱이 보인다. “어휴, 옆집 알파고는 바둑도 둘 줄 안다는데, 넌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