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5년전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를 발족하며 공개한 자체 데이터센터 기술을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초기 OCP에 공개된 기술은 페이스북이 미국 오리건주 프린빌시에 저전력 데이터센터를 지으면서 가다듬은 노하우다. 따라서 OCP 기술을 한국 실정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실정에 맞는 OCP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곧 한국에서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용 64비트 ARM서버를 개발중인 엑세스주식회사의 유명환 연구소장도 한국 여건에 알맞은 OCP 기술 연구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소장이 지난 18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 오픈스택데이코리아 행사장에서 진행한 주제강연 '데이터센터에 부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바람'의 내용은 이렇게 요약된다.
페이스북이 직접 공개한 OCP 데이터센터 설비와 하드웨어 구성은 땅덩어리 큰 미국 여건이라, 한국에 짓는 데이터센터가 그걸 그대로 따라서 쓸 수 없다. 국내서 OCP의 성과를 활용하려면, 데이터센터를 짓는 단계부터 한국 실정에 맞춰 고민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OCP에 대한 관심은 애시당초 왜 생겼을까? 유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비용 절감을 통해 제품을 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성장하고 있는데, 이 설비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건물이나 기계장치와는 구조적으로 많이 달라 운영비가 매우 높다. 기업에겐 고민을 가중시킨다. 몇년새 전기료는 오르고, 신축 데이터센터가 늘어 경쟁은 심화하고, 클라우드 확산으로 서버 투자 부담은 늘었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처지다."
그에 따르면 이런 기업들에게 데이터센터 비용 절감을 위한 해법은 2가지로 압축된다. 이미 지어 놓은 데이터센터를 활용하거나, 처음부터 데이터센터를 잘 짓거나. 전자를 위한 해법은 이날 행사 주제인 오픈소스 기반의 클라우드 구축 소프트웨어 '오픈스택'이고, 후자를 위한 해법이 유 소장의 관심사인 OCP다. OCP가 처음부터 모든 기업들을 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페이스북 스스로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비용 절감 효과를 얻고자 했던 것.
"페이스북 서비스 인프라에 매일 500테라바이트(TB) 넘는 데이터가 쏟아진다. 이들은 전통적이 IT인프라 수단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와 마주했다. 직접 미국 프린빌 데이터센터를 짓고, 최적화 노하우를 쌓고 그 정보를 지난 2011년 4월 OCP라는 이름으로 발족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 중심의 데이터센터 하드웨어 기술 생태계를 만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지출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도 봤다."
OCP에 공개된 내용은 어떤 걸까. 데이터센터 장비를 위한 회로도(스키매틱)와 랙디자인같은 자료들이다. 그걸 보고 누구나 따라서 데이터센터 운영 관련 설비와 인프라 장비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론상' 얘기다. 막상 실행하려면, 아직 문제가 있다.
"페이스북의 프린빌 데이터센터는 하드웨어 냉각 방식을 자연 환경에 맡겨 에너지를 덜 쓰는 쪽으로 최적화됐다. 21인치 랙을 쓰고, 서버와 건물 내벽간 거리를 넓게 만들었다. 그 결과 전체 데이터센터 소비전력 가운데 IT인프라 가동에 쓰는 전력의 비율을 나타내는 'PUE' 값이 1.0 얼마에 불과하다. 이걸 우리가 따라하기엔 문제가 있다. 프린빌 이런지역은 땅덩어리가 크고 지역 인근에 바람과 물이 많다. 한국에서는 이런 입지조건을 찾기 어렵다."
혹자는 네이버가 강원도 춘천에 세운 친환경 데이터센터 '각'을 근거로 반박을 할 수 있겠다. 물론 네이버가 춘천을 택한 이유도 페이스북의 프린빌 데이터센터처럼 자연냉각 방식을 많이 연구한 결과다. 하지만 한국의 여건이 똑같지는 않다.
"(제한된 상면 공간을 전제해야 하는) 우리는 공랭식 냉각 방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서버 랙과 데이터센터 내벽간 거리를 넉넉히 두는 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장비를 결합한 서버 랙 무게는 톤(t)단위다. (표준으로 쓰이는 19인치 랙 대신) 페이스북의 21인치 랙을 쓰면 그 하중이 더 무거워진다. 이런 랙을 들이려면 데이터센터 상면의 하중 설계부터 새로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존 공개된 OCP 기술과 장비를 한국 실정에 맞게 연구해야 한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OCP 초기 창립멤버들 역시 관련 노하우를 쌓기 위해 이런 고민과 연구를 해 왔던 것이고, 지금도 고민의 주제와 깊이를 더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비용 절감을 위한 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보를 염두에 둔 사업자들은 OCP 활동의 기존 성과를 발판 삼아 진지하게 연구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유 소장은 조언했다.
"OCP 커뮤니티 안에는 데이터센터 설계, 랙 설계, 하드웨어 원격 관리 등 8개 프로젝트가 있다. 오픈소스 하드웨어 트렌드가 (IT인프라를 넘어) 통신산업으로도 확산 추세다. 통신사 SK텔레콤도 지난달 OCP 골드멤버로 참여했다. 각국 통신사들에서 OCP 관련 활동으로 노력하고 있고, 이런 쪽에서 추가되는 프로젝트가 더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OCP 하위 프로젝트 8가지 중 6가지는 데이터센터 설계, 랙 설계, 네트워크 스택 설계, 서버 설계, 스토리지 설계, 원격 관리 툴 설계 등 데이터센터 구성요소에 대한 개발을 다룬다. 1가지는 OCP 규격 인증이고, 나머지 1가지는 OCP 규격을 따르는 제품을 만드는 인증 사업자(솔루션 프로바이더)와 협력하는 구매 프로그램이다.
페이스북 스스로도 OCP 성과로 '오픈볼트'라는 스토리지, '웨지'라는 TOR스위치와 '식스팩'이라는 랙사이즈 네트워크 장비, 거기에 들어가는 범용 리눅스 기반의 네트워크운영체제 'FBOSS' 등을 만들어 선보였다. 이런저런 OCP 활동 성과로 페이스북이 밝히고 있는 데이터센터 운영 효율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연간 20억달러, 절감 에너지량은 8만가구 인구 또는 9만5천대 차량의 탄소발생량과 맞먹는다고 알려졌다.
"설계만 효율화하면 데이터센터는 얼마든지 더 작아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혼자서 OCP 수준에 견줄만한 변화를 추구할 수 없다. 기술이 너무 빨리 바뀐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필요한 이유다. 땅이 좁고 전력 수급 상황이 다른 한국에서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은 따로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각자가 보유한 데이터센터 기술과 관련 노하우를 공유해야 할 것 같다. 세부적으로 보면, 벤더 분들은 달가워 하지 않겠지만 서버부터, 마더보드 설계 먼저 시작할 수 있겠다. 보드의 전원설계같은 부분."
유 소장이 속한 엑세스는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일부 인텔 x86 서버 수요를 대신할만한 64비트 ARM서버를 개발 중이다. 엑세스 측은 지난해 OCP 규격 호환 ARM서버 'V랩터'를 처음 선보였고 올해 64비트 ARM칩 기반으로 그 2.0 버전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어플라이드마이크로의 서버용 64비트 ARM 칩을 채택했다.
이런 OCP 스타일의 데이터센터 기술이 확산되려면 개발자와 사용자가 공급과 수요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만나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성하기 위해 제품을 사는 단계가 아니라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PoC를 해야 한다. 우리같은 서버 개발 회사와, 데이터센터 장비를 써서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가. 어떤 서비스용 인프라에 쓰느냐에 따라, 제품에 필요한 품질 조건이 다 달라진다. 어디는 메모리가 중요할 수 있고, 어디는 연산 성능이 중요할 수 있고,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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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소장은 저전력과 집적도에 초점을 맞춘 서버 전원 설계와 마더보드 설계 등을 고민 중이다. 그는 기판의 발열을 처리하는 보드관리컨트롤러(BMC) 부분을 범용화해 공개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개선 범위를 늘려 랙 디자인도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내비쳤다.
"(활성화한) 오픈스택 한국커뮤니티처럼, 데이터센터용 오픈소스 하드웨어 기술을 스터디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OCP 한국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 페이스북 커뮤니티 매니저와 수차례 연락하며 기다렸는데 답이 아직 없다. 일단 그걸 위해 준비한 '오픈소스데이터센터포럼'을 공개그룹으로 만들었다. 이제부터 데이터센터 오픈소스 하드웨어에 접근할 때 센서부터 랙까지 공부하고 한국 현실에 맞는 논의를 하는 데 관심이 있는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