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겨룬다는 것 만큼 자신을 단련시키는 일도 없다. 하물며 자신보다 더 큰 상대와 싸워야 한다면 배 이상의 노력과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자칫 조그마한 실수 하나가 모든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뜻밖의 일격을 가한다면 세간의 평가를 바꾸고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지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휴대폰 제조사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내달 나란히 스마트폰 신제품을 내놓고 올 한해 시장 주도권을 쥐기 위한 첫 장정에 오른다.
장소는 스페인 바로셀로나. 시간은 21일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6)'가 개막하기 바로 하루 전날이다.
먼저 LG전자가 이날 오후 2시(현지시간)에 G5를, 삼성전자는 갤럭시S7를 오후 7시에 공개하는 언팩 행사를 따로 갖는다. 따져보면 불과 5시간 차이다. 신제품은 모두 두 회사의 올 한해 휴대폰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전략 스마트폰. 애플 아이폰의 공백기인 연초부터 주도권을 틀어쥐어야만 한다.
LG전자가 MWC 현장에서 스마트폰 신제품을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MWC에서 줄곧 갤럭시S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LG는 삼성이 이날 신제품을 내놓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먼저 칼을 뺀 꼴이 됐다.
LG전자가 이처럼 배수진을 치고 나온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LG전자는 2010년 기준 휴대폰 시장에서 세계 3위 자리를 차지하던 강자였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 하나로 세계 4위로 막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초콜릿폰 등 피처폰(일반 휴대폰)에 스스로를 옭아매며 구글의 안드로이드 OS 도입을 머뭇거렸다.
이후 LG전자는 노키아, RIM(블랙베리)과 마찬가지로 삼성과 애플에게 스마트폰 시장을 넘겨주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자기 딜레마에 빠졌던 것이다. 작년 4분기(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자료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은 1위, LG는 7위다. 따라서 G3 이후 이렇다 할 모멘텀을 만들지 못한 LG 입장에서는 이번 갤럭시S7과의 대결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좋은 기회인 셈이다.
또 이번 기회에 스마트폰 사업의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려는 LG의 전략도 엿보인다. LG전자 스마트폰의 텃밭은 북미 지역이다. LG전자는 미국 모 이동통신 사업자와 탄탄한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다. 무선사업부의 매출과 이익도 대부분 이 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유럽과 중국 지역에서 LG의 스마트폰 인지도는 아이폰이나 갤럭시S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전 세계 통신사업자가 모이는 MWC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의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선포하고 잊혀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감의 표명일 수 있겠다. 스마트폰이 점차 범용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포화되고 기술의 범용성이 커지면 그때부터는 제품의 각 요소 기술 경쟁이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과거 피처폰 시절에도 디스플레이 이후 경쟁의 틀은 카메라 화소, 배터리 기술 경쟁으로 이어졌다. 가격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서서히 성장 한계를 보이고 있는 스마트폰의 경쟁 구도 역시 각 부품 기술의 깊이가 더해지는 쪽으로 갈 공산이 크다. 과거 내비게이션키를 대체하는 ‘터치’와 같은 혁신 기술이 나오지 않는 한 말이다.
브랜드 파워를 빼면 제품 성능과 기술, 서비스에서 뒤쳐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LG전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시장 상황이 틈새를 노릴 만한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LG전자는 전작인 G4, V10 등 전략 단말기를 통해 고도의 카메라 기술을 자랑한 바 있다.
관련기사
- 갤럭시S7, 21일 바르셀로나에서 공개2016.02.02
- LG전자, 작년 스마트폰 5천970만대 판매...적자폭 감소2016.02.02
- 포브스 "갤럭시S7 출시일은 3월 11일"2016.02.02
- LG 전략폰 'G5' 내달 21일 MWC 공개2016.02.02
삼성 입장에서는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다. 밀리지 않으면 본전이지만 만약 갤럭시S7에 대한 주목도가 분산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닐 터. 고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과 LG의 전략 스마트폰이 같은날 공개되는 모양새가 국내 언론에서는 큰 주목을 받을 지 모르지만 해외에서는 크게 부각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도 있다. MWC에서는 중국 화웨이, 샤오미 등 다른 휴대폰 제조사들의 신제품 출시 이벤트도 예정돼 있다.
3주 후 스페인에서 벌어질 삼성과 LG의 스마트폰 전략과 마케팅 수 싸움이 그래서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