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놓은 삼성, 더 내놓으라는 반올림

[데스크칼럼]무엇을 더 내놓으라는 것인가

데스크 칼럼입력 :2016/01/14 09:49    수정: 2016/01/14 15:11

누군가 그랬다. 시민사회의 힘은 스스로 각성하고 행동하는 개인으로부터 나온다고. 그래서일까. 때로는 수천, 수만의 집단 시위보다 한 시민의 자발적 행동이 민심을 울리고 철옹성도 뚫어내는 일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합리적 상식을 가진 시민은 권력 잃은 이들의 허세와 다르고, 아집과 독선에 빠진 이들의 집착을 바로잡는 균형의 추가 될 수 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도 한때 직업병 피해 유가족들로 구성된 사회적 약자였다. 2007년 황상기씨가 기흥 삼성반도체에 근무했던 딸(고 황유미씨)을 백혈병으로 잃고 외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 그랬다. 알 수 없는 질환으로 고통 받은 당사자와 가족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이들의 눈물을 세상에 알릴 때는 그랬다. 그래서 삼성도 뒤늦게 협상 테이블에 나왔고 머리를 숙이고 보상과 함께 사업장 내 안전과 재발 방지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의 반올림은 초심을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해 안타깝다. 피해 가족 대부분이 가족대책위원회로 따로 떨어져 나온 뒤 무언가를 꼭 쟁취하겠다는 허욕은 더 커진 듯하다. 사회 활동가라면 영원히 기업을 공격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가족대책위원회와 반올림은 12일 조정위의 중재로 협상의 쟁점 사안이던 재해예방대책에 대해 최종 합의했다. 독립성을 갖춘 외부기관을 따로 설립하고 다양한 소통 방법을 통해 현장 재해관리를 더 투명하게 하자는 데 3개 협상 주체들이 중지를 모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기업으로서 지켜야할 마지막 보류인 기밀유지도 뒤로 물리고 이들의 요구를 들어줬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반올림은 조정합의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바로 다음날 아침 삼성 본관에서 사과와 보상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확성기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재작년 5월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나서 사과를 하고 작년 9월부터 가족대책위원회와 상의해 150여명에 달하는 피해신청을 받고 그중 100여명에 대한 보상을 마무리 진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머리를 가로 저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삼성전자는 피해 보상을 위해 조정위가 권고한 1천억원의 기금을 별도로 조성했다.

사과하라 해서 사과하고 보상하라 해서 보상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시스템까지 만들었는데 또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반올림 구성원들은 어지간히 고집이 센 모양이다. 삼성전자의 사과와 보상은 성에 안 찬다고 한다. 진실성이 없다고도 했다. 이유는 나와 합의된 게 아니라는 거다. 조정위 권고안 형식에도 맞지 않는단다. 보상도 자신들을 통해 피해 신청을 한 사람들에게 모두 배제 없이 보상을 하란다. 속된 말로 펄쩍 띨 노릇이다.

관련기사

모든 협상에서 100을 얻을 수는 없다. 민주화 속에 민주화를 이루려는 그 어느 사회 구성원도 타협과 협상의 룰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반올림은 협상의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한다. 마치 죄인에게 그 죄 값을 받아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반도체 사업장과 질병 발병간의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협상이 시작된 지난 2012년 초 당시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장으로 있던 이인용 사장은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어떤 형태로든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 근로자 안전 문제의 제일 큰 이해 당사자는 회사다. 수 천 명이 지금도 일하고 있는데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건강에 불안을 느낀다면 지속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래서 삼성은 다 내놓고 여기까지 왔다. 반올림은 무엇을 더 내놓으라고 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