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러방지법이 연말 분위기에 취해있던 미국 IT업계를 강타했다. 이 법이 공식 적용될 경우 민감한 기업 및 개인 정보까지 넘겨야 할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화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27일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내년 1월부터 본격 발효된다.
중국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명분은 명확하다. 국제 테러집단들이 급진적인 사상을 전파할 뿐 아니라 요원들을 모집하기 위해 인터넷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테러를 막기 위해선 암호화 기술을 비롯한 각종 보안망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초안에 있던 '암호키 제출' 조항은 삭제
물론 최근 테러방지법을 제정한 것은 중국 뿐만은 아니다. 영국도 지난 11월 수사권 강화 법안(Investigatory Powers Bill)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수사기관이 요구할 경우 IT업체들이 메시지 암호를 해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현재 애플은 영국 정부와 이 법안을 놓고 팽팽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중국은 차원이 다르다. 시장 규모 뿐 아니라 미국과 관계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국가 안보 문제도 민감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중국 정부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킨 직후 미국 언론들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뉴욕타임스, 씨넷 등 주요 외신들은 중국 테러방지법이 테러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규정했다고 지적했다. 이 법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영업하는 기업들은 정부가 요구할 경우 ‘기술지원 수단(technical means of support)’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초 초안에 있던 “암호키를 비롯한 민감한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는 문구는 최종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 "법안의 '기술지원 수단 제공' 포괄적 해석 가능해 위협적"
문제는 ‘기술 지원 수단’이란 규정 자체가 굉장히 포괄적이란 점이다. 암호 기술 해독은 기본이고 정부가 원할 경우 내밀한 비즈니스 관련 정보까지 제출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IT전문 매체 리코드의 분석도 흥미롭다. 리코드는 “중국 테러방지법이 암호화된 대화에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를 강제 제출하도록 하는 건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미국 IT 기업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어떤 정보를 요구받게 될 지 고민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 사이트 쿼츠 역시 “중국 테러방지법은 이용자의 행동 추적까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내년초 테러방지법이 발효될 경우 애플, IBM, 시스코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주 타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미국 IT업계 한 관계자는 리코드와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 관계자가 와서는 이 정보를 원한다. 어떻게 그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알 바 아니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소스코드까지 요구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렇게 넘겨받은 소스코드로 자신들의 고객들을 감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코드에 따르면 중국 정부 관계자는 자국 내에서 영업하는 기업들에게 지적재산권을 내놓거나, 백도어를 만들라고 강제하는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이 요구할 경우 ‘암호해독’을 비롯한 기술지원을 해주도록 돼 있어 사실상 큰 차이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 미국 겨냥한 디지털 패권전쟁 노림수일수도
중국 정부의 이번 행보가 단순히 ‘여론 통제’ 차원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란 지적도 적지 않다. 좀 더 크게 보면 ‘디지털 패권전쟁’의 신호탄이란 것이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최근 끝난 세계인터넷대회에서 ‘인터넷 주권’을 특히 강조했다. 중국은 또 미국 주도로 움직이는 인터넷 세상의 패권을 자기 쪽으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터넷 백본을 관장하는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를 둘러싼 공방이다. 중국은 ICANN을 미국 상무부 영향권에서 빼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인터넷 신흥국들이 중국과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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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중국은 이미 지난 해 홀린 짜오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사무총장에 선출되면서 인터넷 주도권 전쟁에서 상당한 헤게모니를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ITU 사무총장은 세계 정보통신 정책과 표준화 등을 주도하는 ICT 분야 최고 수장으로 통한다. 중국인 ITU 사무총장이 물밑에서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 거버넌스 경쟁에도 적잖은 변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