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산업보건검증위원회가 지난 1년 동안 검증한 결과 사업장과 직업병의 인과관계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25일 검증위원회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년 동안 SK하이닉스 작업장 산업보건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검증위원회는 SK하이닉스에 건강손상 근로자의 치료와 일상 유지에 필요한 기본수준을 지원하는 포괄적 지원보상체계를 제안했다.
이번 조사는 외부 독립 기관에 의해 이뤄진 SK하이닉스 사업장에 대한 첫번째 광범위한 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건위는 지난해 10월부터 1년에 걸쳐 60여명의 연구원을 현장에 파견해 영업기밀 물질까지 조사했다. 동시에 비생산직, 사무직 설문을 포함한 전수 조사를 통해 작업환경과 직업병의 연관관계를 분석했다. 이천공장 428종, 청주공장 432종에 대한 각각 1천136개, 1천160개 물질 성분 분석이 이뤄졌고 노출 정도를 확인했다.
설문조사는 총 2만2천7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이중 1만4천226명이 응했다. 협력업체는 총 22개 업체 3천725명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졌으며 이중 2천986명이 참여했다. 이외 1만8천330명의 지난해 건강검진자료,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재직한 2만5천548명과 108명의 암환자 자료도 조사했다.
검증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아주대학교 예방의학교실 장재연 교수는 “수만명을 전수조사했다”며 “과거에 비해 광범위하고 심도있게 오랜기간을 거쳐 가려져 있는 부분을 최대한 조사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독성물질, 기준치 넘은 사례 없어
검증위원회 조사는 다양한 작업환경과 여러 조건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지만 독성 물질 노출 정도는 기준치를 크게 밑돌았다.
2천296물질 중 발암성, 돌연변이원성, 생식독성이 있는 물질은 총 18종이 확인됐고 상대적으로 독성이 높은 화학 물질은 에틸벤젠(3%), 크레졸(4.2%)이지만 공기중의 노출 정도는 없거나 기준치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노출평가 결과는 운전자 작업환경의 경우 노출기준 대비 10~50% 사이 물질이 0.2%, 10% 이하 3.1%, 나머지 96.4%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정비 작업자는 기준치 대비 10~50% 수준의 노출 물질이 0.7%, 10% 이하 물질은 6.4%, 93.9% 물질은 불검출로 나왔다.
과산화수소, 포름알데하이드, 황산 등은 노출정도가 낮은 수준이었으며 비소, 니켈, 납, 벤젠, 크롬, 포스핀 등 다른 발암물질은 공기 중에 검출되지 않았다.
이번 조사는 전자파, X레이 노출도 포함했다. 전자파는 전기를 취급하는 직무자의 전반적인 노출수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권고 수준보다는 낮았다. X레이 노출강도는 노출 기준 2% 수준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1996년 가동에 들어간 가장 노후한 8인치 웨이퍼 공장인 청주 M8, 이천 P&T 등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역학조사 결과 암발병 인과관계 찾지 못해
역학조사 결과도 SK하이닉스 사업장의 암 발병률이 일반 근로자 대비 높다는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갑상선암 발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역시도 건강검진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증위원회는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신병휴직자 자료에 있는 암환자 108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는데 갑상선암이 전체 암환자 중 56.5%인 61명으로 가장 많았다.
생산직과 사무직을 비교한 평가에서 갑상선암 위험도는 생산직 남성은 1.2배, 여성은 1.6배 높았다. 다른 암들은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직원 갑상선암 발병률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대비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양쪽 자료는 조사 기간이 달라 단순 비교는 어렵다.
검증위원회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와 SK하이닉스 2010년부터 2014년 자료를 비교했다.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은 갑상선암으로 진료 받을 확률이 남성 2.6배, 여성이 1.3배로 높다고 평가했다.
산업검증위원회 보고서는 “SK하이닉스에서도 2003~2006년에는 갑상선암 환자가 8명이었으나 2007~2010년에는 67명, 2011~2014년에는 105명으로 급증했다”며 “이와 같은 현상은 건강검진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검증위원회는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갑상선암의 진단이 높아진 현상이 SK하이닉스에서도 나타난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암환자는 발생 건수가 적기 때문에 표준화발생비나 통계적 유의성이 1~2명의 환자에 의해서도 민감하게 달라져 일반질환에 비해 분석결과 안정성이 떨어졌다.
여성 비호지킨림프종(0.8배), 위암(남성 0.8배, 여성 0.5배), 대장암 (남성 0.6배, 여성 0.9배), 유방암(0.7배), 난소암(0.7배) 등은 일반 노동자 대비 발병률이 낮았다.
이외 질병은 남성 대사증후군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사무직 대비 생산직 발병이 높은 질병으로 여성 방광염, 안구증상, 비염 증상 호소율이 더 높았다.
■검증위, “인과관계 없어도 보상지원체계 구축” 권고
검증위원회는 “직업병 의심 사례에서 작업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면서도 “새로운 지원체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사회 차원의 보상을 제안했다.
검증위원회는 조사를 마치며 SK하이닉스에 보상원칙을 제시하고 산압안전보건 개선안도 작성해 제출했다.
보상 원칙은 ▲인과관계 유보의 원칙 ▲필요에 기반을 둔 지원의 원칙 ▲공평의 원칙을 통해 보상지원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지원대상자는 1999년 10월 현대전자, LG반도체의 합병 이후 근무력이 확인된 자로 최소 1년 이상 생산직에 근속한 노동자다. 퇴직자는 퇴직후 10년 이내에 발병한 경우에 한해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자녀 질환도 포함했는데 부모 중 1인이 임산 3개월 전부터 출생 사이에 제품 제조사업장에서 근무한 사실이 있는 경우 19세 되기 전 발병한 자녀를 대상으로 했다.
지원보상은 암과 관련 1회 현금지급을 원칙으로 치료비, 직간접 비용을 지원하도록 했다. 산업안전보건은 ▲화학 물질 및 직업환경 66개 ▲건강영향관리 25개 ▲산업안전보건 및 복지제도 분야 36개 등 총 127개 개선과제를 도출했다.
장 교수는 “이번 조사는 노동자 보호가 첫 번째 목적이었고 기존 체계랑 산업재해 보상과 똑같은 것은 아니다”라며 “복지 차원에서 최대한 보상을 확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질병과 작업장의 직접 상관관계에 대해서 “알 방법이 전혀 없다”며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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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이날 검증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 후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SK 하이닉스는 “전현직 임직원 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까지 지원, 보상 대상에 포함함으로써 산업보건 지원보상 시스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겠다”며 “빠른 시간 내에 노사와 사외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 지원보상 위원회를 결성하여 관련 질병 지원, 보상 절차를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