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 중국…
올해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많이 들린 단어다. '반도체 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급부상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마저 중국에 추월당하면 한국 제조업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론이 팽배하다. 한편으로 중국은 우리 반도체 업계가 공략해야할 거대 시장이기도 하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성장산업포럼’은 장비, 소재, 설계기업, 정부,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향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모인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의 발표도 대부분 중국 관련 내용으로 채워졌다.
중국 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은 지난해 기준 490억달러 규모다. 전년도 400억달러에서 20% 이상 증가했다. 올해 58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 대만과 대등한 수준이다.
■분야별 세계 20위권 중 4~5개는 중국업체
중국 반도체는 성장률에서 세계 시장을 압도하며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와는 경쟁관계로 급부상하고 있다. 각종 지표에 이같은 상황이 잘 나타나 있다.
중국 반도체 생산능력이 빠르게 증가하며 규모면에서 우리나라, 대만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 됐다. 장비업계 대표로 나선 이오테크닉스 성규동 대표는 “반도체 분야 생산규모는 한국, 대만이 750억달러 규모로 평가받는데 중국이 80% 정도까지 따라왔다”고 설명했다.
중국 반도체 매출도 성장세다. 지난 2013년 405억달러에서 올해 575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2020년 중국 반도체 매출은 1천430억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중국 반도체 산업협회는 반도체산업 매출이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업체는 성장하고 있지만 일부 분야는 이미 우리를 추월했다. 전 세계 팹리스 20위권 내 중국업체는 스프레드트럼, 하이실리콘이 있다. 파운드리 SMIC는 이 분야 4위다. 파운드리 분야 20위권 내 중국업체는 5개다. 국내 자본의 파운드리 업체는 동부하이텍이 유일하며 이 시장 9위다.
중국은 패키징, 후공정 분야도 강세다. JCET는 패키징, 후공정 분야 6위까지 올라섰다. 이 분야 20위권 내 중국업체는 JCET를 포함해 3개가 있다.
중국반도체 성장 배경은 대규모 투자다. 대규모 투자 뒤에는 국가적인 지원이 있다. 중국은 200억달러 규모의 국가 반도체 펀드를 마련했다. 펀드 참여업체는 중국개발은행, 차이나모바일, 중국연초총공사, E타운 캐피탈 등 8개 업체다.
중국 반도체 업체는 이 자금을 받아 인수, 합병, 공장 투자 등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다. 자금은 소자업체 뿐만 아니라 장비 등 인프라 업체에도 흘러간다.
중국 장비업체인 한스레이저는 증자를 통해 41억위안(한화 7천3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하고 9천300억원 규모에 달하는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장비업계가 같은 방식으로 마련하기 힘든 돈이다.
칭화유니그룹은 공장 하나 짓기 위해 800위안(한화 14조원)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 자금을 쉽게 마련해 통 크게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다.
■규모, 가격경쟁력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데
중국 반도체 업계는 정부 지원 속에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저가 경쟁을 하면 우리나라 업체는 도산하지만 중국업체는 수익을 낼 수 있다.
동진쎄미켐 이준혁 대표는 “슬러리 분야 중국업체는 미국업체 대비 15%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며 “국내 포토레지스터 업체는 중국 저가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이 90%에서 50%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반도체는 자국 시장에서 더욱 쉽게 저가 전략을 펼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 소재업체 제품을 일정량 이상 구매하면 수입대체보조금이라는 명목으로 구매금액 일부를 보존해주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수출보조금, 수입대체보조금, 세금감면 등 여러 보조금이 있다”며 “중국 업체는 이익 없이 팔아도 정부 지원으로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중국은 거대 시장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경계만 할 것이 아니라 공략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중국 IT컨설팅 전문업체 CCID에 따르면 중국은 전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55%를 소비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다. 우리나라 팹리스 업계 중 중국에서 매출을 내는 업체들은 상당수 있다. 삼성, LG전자 등 대기업 시장진입에 실패했거나 진입했다고 하더라도 다변화를 위해 노릴 수 있는 시장이 뻔하기 때문이다.
터치 반도체 지니틱스 손종만 대표는 “중국에 회사 존폐가 걸렸다”며 “인도 시장을 타진했으나 인도는 워낙 산업이 열악해 중국 부품을 수입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도시장을 보고 더더욱 중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느꼈다”고 덧붙였다.
중국 팹리스 시장은 대만 업체가 강세다. 미디어텍이 대표적이며 터치 분야에서도 포카텍, 엠스타, 구딕스 등이 활약하고 있다. 미국 시냅틱스도 대만업체에 밀려 출하량 기준 3위에 머무르고 있고 지니틱스는 13위다.
■"한국, 20년 역사 속 세계 100위권 팹리스 단 3개"
중국, 대만에서 눈을 돌려 우리나라 중견, 중소 반도체 업체들을 보면 영세업체들 비중이 높다. 장비업계에서 1조원 매출을 넘기는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팹리스는 더욱 열악하다. 팹리스 1위 실리콘웍스가 이제 연 매출 5천억원을 바라보고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실리콘웍스도 LG 자회사로 중소 팹리스라고 부르기 어렵게 됐다.
손 대표는 우리나라 팹리스 현실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는 “20년이 넘은 산업 역사 속에 세계 100위 안에 드는 팹리스는 단 3개뿐”이라고 말했다.
상황은 어려운데 정부의 반도체 지원사업은 향후 지속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EDA(설계툴) 지원사업은 지난 2013년을 끝으로 예산이 끊겼다. 중국 진출을 돕는 중국 SoC 지원사업은 내년으로 예산이 끝난다.
팹리스 업계는 선전에만 있는 정부 지원센터를 베이징, 상하이로 늘려달라고 하지만 2017년 이후 예산은 장담할 수 없다. R&D는 더 심해서 내년 신규로 잡힌 반도체 분야 R&D 예산은 아예 없다.
정부는 메모리가 잘 되니 반도체 업계는 지원이 필요 없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일부 실무진은 반도체 산업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지만 이로는 역부족이다.
김정화 산업부 전자부품과 과장은 “정부는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며 “반도체는 수출이 계속 매달 증가하는데 이런 업종이 없어 무척 감사하지만 한편으로 시스템반도체 분야, 메모리, 중국 추격 등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추격으로 반도체 업계가 정말 어렵고 걱정이 많다”며 “과거 중국 초나라가 한나라와 전쟁에서 계속 이기다가 마지막 전투에서 지면서 중국 패권 향배가 결정됐듯이 우리 반도체도 마지막 한번 전투에 지면 전쟁의 결론이 날 것으로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김기남 사장 “중국, 한국 반도체산업에 매우 위협”2015.11.11
- 삼성 반도체 영업익 5년만에 최대 기록 경신2015.11.11
- 사람의 두뇌 같은 ‘삼차원 인공지능 칩’ 첫 개발2015.11.11
- 20년 후, 대한민국 미래 도전기술 20選2015.11.11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 속에 한국의 반도체는 5년뒤, 10년뒤를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은 거대한 자금으로 반도체를 육성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정부 주도로 조성한 반도체 펀드 규모가 1천500억원이었던 것에 반해 중국은 15배가 넘는 23조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지원 대상 기업을 찾고 있다. 김 과장은 “절대액을 중국이랑 비교할 수 없다”며 “현장 당사자들이 더 치열하게 노력해달라”고 정부 지원의 한계를 인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