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대표 오웬 마호니)과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가 3년간 이어온 불편한 동거를 드디어 끝냈다. 국내 게임업계 양대 기업의 협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두 회사는 이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지난 2012년 6월 최초 주식 거래부터 지난 15일 넥슨의 엔씨 주식 전량 처분까지 그간 양사가 벌여온 치열한 공방을 돌이켜본다.
■ 실패로 끝난 협업 시도
넥슨의 수장 김정주 NXC 대표와 김택진 엔씨 대표는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동문이다. 대내외적으로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던 두 대표는 국내 게임업계가 황금기를 누리던 지난 2012년 손을 맞잡았다.
목표는 미국 대형 게임사 일렉트로닉아츠(EA) 인수. 양사는 당시 거듭된 하락세로 시가총액이 4조 원까지 떨어진 EA를 인수해 세계 게임 시장을 재패하자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를 위해 김택진 대표는 자사 지분 14.68%를 8천56억 원에 넥슨에 넘겨 현금을 확보했다. 넥슨은 엔씨 최대주주가 됐다.
하지만 EA가 실적을 회복하면서 양사의 협력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EA 인수가 실패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구상했던 협력 프로젝트까지 수포로 돌아갔다.
양사는 지난 2012년 N스퀘어라는 조직을 신설하고 공동으로 개발자를 투입해 ‘마비노기2’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캐주얼 게임에 강점을 가진 넥슨과 무게감 있는 대작 위주의 엔씨는 게임 철학에서부터 평행선을 그려나갔다.
불협화음을 거듭하던 마비노기2 개발은 자연히 공중분해 됐고 N스퀘어는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다.
■ 경영권 둘러싼 분쟁 점화
그러던 지난해 10월 조용해 보이던 양사 사이에 분쟁의 불씨가 붙었다. 넥슨이 엔씨 지분 0.38%를 추가 매수해 지분율을 14.68%에서 15.08%로 늘리면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마지노선이 바로 15%다.
엔씨는 넥슨이 경영권을 침해하려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더욱이 넥슨은 사전 논의 없이 독단적으로 지분을 매입했으며 매입 후 공시 직전까지 5일 동안 매입 사실을 엔씨 측에 함구했다.
넥슨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넥슨은 지난 1월 28일 공시를 통해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 목적으로 변경하며 세간의 의혹을 현실화했다.
넥슨은 지난 1월 당시 “당사는 지난 2년 반 동안 경영 참여 없이 엔씨소프트와 다양한 협업 기회를 모색해 왔지만 단순 투자자로서 역할이 제한된 기존의 협업 구조로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민첩히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며 경영 참여를 본격화했다.
넥슨은 주주제안서를 통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비등기 특수관계인의 보수 내역 산정 기준 공개, 비영업용 투자 부동산의 처분, 전자투표제 도입 등 다소 민감한 내용들을 요구하며 엔씨를 압박했다.
김택진 대표의 9.9%와 엔씨 자사주 8.9%를 합치면 넥슨 18.8%보다 3%포인트 높았지만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표 대결로 갈 경우 향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엔씨는 넷마블게임즈(대표 권영식)과 손을 잡고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엔씨는 지난 2월 17일 넷마블과 전략적 제휴를 선언하고 상호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엔씨가 넷마블 지분 9.8%를 3천800억 원에, 넷마블이 엔씨 지분 8.9%를 3천900억 원에 인수했다.
최대주주는 그대로 넥슨이었지만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의결권 있는 우호 지분으로 돌리면서 김택진 대표가 발휘할 수 있는 의결권이 더 강해졌다.
넥슨은 “최대주주인 넥슨과 상의 없이 자사주를 매각하고 대규모 지분 투자를 해 유감스럽다”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크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같은 달 27일 열린 엔씨 주주총회에서도 김택진 대표 재선임 등 안건 전반에 찬성했다.
■ 끝내 결별
이처럼 EA 인수, 공동 게임 개발, 경영 참여 등 당초 넥슨이 엔씨 지분을 매입했던 목적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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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넥슨은 지난 15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보유 엔씨 지분 330만6천897주 전량을 매도하기로 결정했다. 가격은 1주당 18만3천 원, 총 6천51억6천200만 원으로 정해졌다. 16일 김택진 대표가 이 중 44만주를 취득했다.
넥슨은 “엔씨에 투자한지 3년이 지났지만 시너지 효과가 창출되지 않았다”며 “자산효율성 증대와 주주가치 실현을 위해 엔씨 주식을 모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