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앱 "델-EMC 합병해봤자…"

연례컨퍼런스 개막 현장서 경쟁사 '빅딜'에 회의적 평가

[라스베이거스(미국)=임민철 기자]넷앱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들이 경쟁사 EMC와 델의 인수합병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시선의 논평을 남겨 눈길을 끈다.

12일(현지시각) 델이 EMC를 670억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은 공교롭게도 넷앱이 공들여 준비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막을 올린 연례컨퍼런스 '넷앱인사이트2015' 개최일에 맞춰 공식 발표됐다.

스토리지 시장에서 '거인'이란 별칭을 부여받은 경쟁사 EMC와, 서버 시장에서 업계 1위인 HP를 추격 중인 델이 한 몸이 될거라는 소식에 '세기의 빅딜'이라는 묘사가 따라붙었다. [☞관련기사]

델과 EMC가 합체할 경우 단순 전망만으로는 당장 개별 제품 영역에서 개별 경쟁하던 기업들보다 기업들이 원하는 통합시스템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데 유리해질 수 있다. 크고작은 IT업체들이 양사 합병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다.

이를테면 델의 서버, 네트워크 장비,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인프라 관리 솔루션 등에 EMC의 주요 스토리지, 자회사 VM웨어의 가상화, 버추스트림의 클라우드 최적화, 피보탈의 빅데이터 솔루션 등이 경쟁사 대비 유리한 조건의 통합시스템 제품으로 제안되는 그림을 예상 가능하다.

두 회사의 합병이 데이터센터 인프라 업계 이슈의 중심이 되면서, 넷앱인사이트2015를 향할 수도 있었던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토리지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 온 넷앱 입장에선 애초에 이 영역에 관심을 둔 '제한된' 청중에게만 소식을 전해야 하는 입장이라, 지어놓은 밥에 재가 떨어진 격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넷앱 임원들이 델과 EMC의 합병에 후한 평가를 내릴 이유는 전혀 없다. 리 캐스웰 넷앱 제품, 솔루션, 서비스 마케팅 부사장은 12일(현지시각) 델과 EMC의 합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거래는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수반한다 그리고 양사의 임원진, 제품담당자와 영업팀, 파트너의 기존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 서로간에 중복되는 제품과 서비스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리 캐스웰 넷앱 제품, 솔루션, 서비스 마케팅 부사장.

그런데 따지고 보면 넷앱이 영 근거 없이 비방한 것만도 아니다. 자사 주요 이벤트에 초를 친(?) 경쟁사의 움직임에 내비친 비평 치곤, 이성적인 지적이다. 델과 EMC의 스토리지 솔루션은 시장서 경쟁 관계였고, 중복되는 품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넷앱은 이전부터 인수합병이나 다른 영역으로의 사업 확대에 조심스러웠다. 신기술이 필요할 때 타사를 사들이기보단 자체 개발하는 방식으로 스토리지 영역의 전문성 강화에 주력해 온 편이기도 하다.

통합시스템을 원하는 시장 요구에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시스코와 VM웨어의 기술을 활용한 '플렉스포드' 처럼,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지 않는 파트너의 기술을 보태는 방식으로 움직여 왔다. 캐스웰 부사장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넷앱은 고객의 환경을 효율화한다는 점에선 아주 일관된 입장을 취해 왔다. 클라우드기업, 네트워크회사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같은 애플리케이션업체, (EMC 자회사인) VM웨어 등과도 지속 협력해 왔다."

이런 파트너십 중심 전략은 이번에 넷앱인사이트2015 현장에서의 핵심 키워드인 하이브리드클라우드와 이를 실현하는 데이터패브릭 전략을 뒷받침한다는 게 그의 메시지다. 발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넷앱은 IT업계서 고객사에 최적 조합의 기술을 제공하는 역량과 입지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 들에게 더 많은 역량을 공통 아키텍처로 실현할 수 있는 '데이터패브릭'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려 한다."

캐스웰 부사장은 이렇게 경쟁사 인수합병 전략의 단점과 자사 파트너 협업 전략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대비시켰다. 이제 막 공식화한 타사 동향에 대한 논평 치곤 오히려 준비된 발언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특히 고객 중심은 넷앱인사이트2015 현장에서 조지 쿠리안 CEO가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쿠리안 CEO 역시 델-EMC 합병과 관련해 역시 회의적인 뉘앙스로 남긴 발언이 회자됐다.

호주 출신 IT산업 전문 방송인 겸 작가인 폴 월뱅크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쿠리안 CEO는 델-EMC 합병에 대해 '고객의 필요가 아니라 낡은 사업모델을 떠받치기 위한 행보'라 평가"했다고 전했다. [☞원문출처]

다만 넷앱 임원들이 공개 발언으로 논평했다는 사실 자체는 경쟁 구도의 재편을 불러 올 빅딜을 깡그리 무시할수만은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MC와 델의 합병이 오히려 시장에서의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넷앱의 관측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