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New) 팬택의 길 '루나'가 보여줬다

[데스크칼럼]중저가 제품 전문 개발회사

홈&모바일입력 :2015/10/08 15:53    수정: 2015/10/08 16:02

우여곡절 끝에 팬택이 회생할 듯하다. 세 차례 매각 시도가 불발되며 청산 위기에 내몰렸으나 결국 쏠리드-옵티스 컨소시엄이란 새 주인을 만났다. 인수 잔금은 지불이 끝났다. 채권자들로 구성된 관계인집회와 법원의 인가가 남았지만 큰 문제없이 매각이 최종 마무리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제 새 주인과 옛 직원이 만나 의기투합함으로써 과거의 영예를 되살릴 일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뉴(New) 팬택의 앞날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스마트폰 시장 경쟁이 극도로 격화돼 있는 상황이어서 활로를 찾는 게 여전히 쉽지만은 않을 수 있다. 어쩌면 팬택이 망하기 시작한 시점보다 지금이 더 어려운 시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몸집과 욕심을 줄인 만큼 재기 가능성은 충분하다. 부활의 키워드는 ‘생산성’과 ‘가격전략’이다. 그 길을 먼저 제시한 게 ‘루나’다.

팬택이 국내 시장에서 2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던 시절 기자는 이 회사 고위 관계자에게 “출고가를 반으로 줄이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어차피 시장에서 제 가격을 받지 못할 바에야 생존선의 최저 이윤만 남기고 가격 경쟁을 펼치라는 뜻이었다. 명품 브랜드로 애플 및 삼성과 지속적으로 싸우기엔 역부족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경영회의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가 박살이 났다.

'팬택을 빛낸 별들에 관한 이야기' 사진전 장면

80~90만 원대의 출고가를 제시하고도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데 무슨 소리냐는 게 당시 고위 경영진들의 주된 비판이었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이해는 한다. 그러나 끝내 고가 전략을 고수한 결과는 더 비참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대로다. TG앤컴퍼니가 선보이고 SK텔레콤이 단독 판매하며 상한가를 달리는 루나는 그래서 2~3년 전에 팬택이 취했어야 할 전략이었던 거다.

팬택이 당시 이 전략을 취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생산성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판매량이 적기 때문에 경쟁사에 비해 부품 조달 비용은 크면서도 인건비가 적잖은 국내에서 만들기 때문에 생산비용은 결코 저렴하다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40만 원 대 중가 전략을 쓰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생산시설과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을 먼저 했어야한다.

생산 직원들이 들으면 피를 토하고 분노할 이야기지만 회사가 살려면 개발 전문으로 가면서 점차 외주 생산으로 돌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 애플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시장 지배력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당연히 애플과의 정면승부는 피하면서. 루나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틈새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집중 개발하고 생산은 해외에서 아웃소싱하는. 그러므로 뉴(New) 팬택은 청산의 벼랑에 서고 난 뒤에야 비로소 살 수 있는 한 가닥 길을 찾았다고 할 수 있다.

또 생산인력을 대부분 구조조정하며 어느 정도 조건도 갖췄다. 뉴(New) 팬택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의기소침해진 개발 인력을 추스르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훌륭한 상품 기획자들도 포함된다. 또 국내는 물론 진출 가능한 나라의 이동통신 서비스 회사와 통할 수 있는 뛰어난 영업 인력을 당장 스카웃해야 한다. 루나의 예처럼 초기에는 이통사 요구를 수용한 맞춤형이 좋다.

제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이 이통사와의 협업이다. 애플이나 삼성이 들어주지 못하는 이통사의 요구를 찾아내 같이 기획해야 한다. 집중적으로 공략할 포인트는 소비자가 수긍할 만한 가격대의 제품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각 이통사의 특화된 서비스나 기능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개발팀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를 갖춰야 한다. 많은 개발인력과 높은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혁신 제품에 대한 욕심은 당분간 버리고 가성비가 뛰어난 다수의 제품군을 내놓는 전략이 우선시 돼야 한다. 기본 개발 소스는 여러 제품에 재활용하고 각 제품별로 해당 이통사의 특화 기능을 집어넣는 효율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주력 제조사를 견제해야 할 입장인 이통사들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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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물론 쨍하고 빛이 나거나 영원히 지속될 길은 아니다. 그러나 팬택 뿐만이 아니라 구글이나 애플처럼 SW와 플랫폼으로 기술과 시장을 이끌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드웨어에 집중된 사업을 펼치는 곳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길이다. 하드웨어로서의 스마트폰은 결국 PC 산업의 전철을 받게 될 거고 최후엔 가격 경쟁만 남게 된다. 스마트폰이 PC와 다른 점은 유통 과정에 힘 있는 이통사가 있다는 점 뿐이다.

(이 글은 스마트폰에 한정해 쓴 것이다. 인수 주체인 쏠리드 및 옵티스와 협업해 시너지를 낼 다른 사업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